국가안보의식 강화에 뜻을 같이한 33명의 동갑내기, 1956년 병신생 친구들은 안보현장 견학을 하였습니다. 한국자유총연맹고성군지회 허광도 사무국장 주선으로 2011년 9월 16일에 표표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목적지는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판문점을 비롯한 도라전망대, 북한군이 남침 야욕으로 판 제3땅굴 등이었습니다.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는 코스모스가 가냘픈 허리에 단발머리 청초한 소녀를 닮은 꽃잎들을 바람결에 하늘거리던 날이었습니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우주의 정연한 질서입니다. 무질서하고 혼란된 세계가 카오스라면, 코스모스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는 우주의 정연한 질서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화폭에 도시적으로 그린 것을 만다라(曼陀羅)라고 합니다. 코스모스는 신이 처음 만든 꽃이라고 합니다. 흰 꽃은 소녀의 순박함을, 붉은 꽃은 소녀의 순애를 나타냅니다. 가느린 자태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는 가을날의 센티멘탈한 서정을 자아내는 대표적인 가을꽃입니다.
 맑은 하늘에는 별들이 등불같이 총총히 빛나고, 아직 대지는 여명 속에 아직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새벽에 기상하여 5시 30분경에 출발지인 1호광장에 갔습니다. 판문점까지는 머나먼 거리이기에, 강행군을 하여야 가능한 1일 견학 코스라서 관광버스는 예정대로 6시 정각에 출발하였습니다.

격동의 세월 속에 보낸 군복무시절을 회상하며
▶ 무장간첩 소탕을 위한 대간첩작전 수행
 목적지로 달리는 차창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군복무 시절로 시간여행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체감온도 섭씨 영하 25℃, 칼날같이 살을 에이며 파고드는 찬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검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방책선(철책선)을 지키던 추억과 함께 실탄을 쏘면서 목숨을 걸고 수행한 대간첩작전에 임하였던 일들이 주마등 같이 기억에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를 몇 달 남겨놓은 제대말년이었던 1979년 10월 5일. 이 날은 우리 민족의 대명절 중추가절 추석날이었지만, 전방부대 군인들에겐 힘들고 위험한 날이었습니다.
 방책선(철책선)을 뚫고 침투한 무장간첩을 소탕하기 위한 대간첩작전이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1953년 휴전협정으로 한반도는 남북으로 두 동강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분단된 경계선은 북위 38도선이 중심 기점이었습니다. 아울러 상호 불법 침략 방지와 휴정협정 성실한 이행을 위해 그곳에는 동서로 약 155마일에 달하는 방책선(철책선)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협정을 어기고, 우리 자유대한민국을 교란할 목적으로 무장간첩이 침투한 것입니다. 그것도 국민 모두가 즐거워야 할 추석 대명절 전날 밤에 두더쥐처럼 땅굴을 파서 침투했던 것이었습니다.
 10월 5일, 추석날 이른 아침 5시 예고없이 출동준비 비상훈련이 하달되었고, 5분 안에 완전군장 출동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자 곧이어 비상출동명령은 해제 되었습니다. 이것은 군기를 다잡기 위한 훈련이었습니다. 모두는 군장을 체하고 대대연병장에서 진행될 중대별 대항 체육대회 참가 등으로 추석 명절을 즐기고자, 아침식사 중이었습니다. 그 때 또다시 비상출동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전방부대가 지키는 대암산이 있는 곳의 방책선 땅 밑으로 침투한 무장간첩 3명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완전 군장으로 출동하여 가장 험악한 지역인 중동부전선, 대암산과 백석산을 연한  ‘983고지 피의 능선’에 투입되었습니다.
 필자가 근무한 군부대가 있는 양구군의 주민들은 정갈한 색동옷차림으로 조상 차례를 지내고 온가족 나들이로 추석의 기쁨을 누리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하여 배고프고 힘들고 피곤함을 달래면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이행을 위해, 무장공비 소탕을 위해 대간첩작전에 임한 것입니다.

  ‘983고지 피의 능선’은 현재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동족상잔(同族相殘) 6.25 한국전쟁 때 아군과 적군 모두가 총탄을 맞고 흘린 핏물이 고지와 능선을 벌겋게 물들인 격전지입니다. 북한의 불법적인 남침으로 발발한 3년 동안에 걸친 6.25 한국전쟁, 특히 53년도의 휴전협정을 앞두고 북한 인민군과 우리 국군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이 고지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공방을 벌렸습니다.
 그 결과 수목들은 모조리 화염에 불타고 쌍방의 시신들은 산을 이루고 흘린 핏물은 바다를 이루어 이 고지는 검붉게 물들었기에 피의 능선이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시산혈해(屍山血海). 아비지옥(阿鼻地獄)의 비참한 전투 현장입니다. 이 고지를 피의 능선으로 부르게 된 것은 1951년 8월~9월 국군 제5사단(후에 미 제2사단투입)과 북한군간의 전투상황을 목격했던 미군 종군기자들이 ‘피로 얼룩진 능선’이란 뜻에서 983고지의 격전상황을‘피의 능선’으로 보도하면서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국군과 인민군들이 죽었는지. 그들은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부모나 형제간을 죽인 원수지간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단지 우리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한민국 국군이고, 저들은 공산주의에 물든 김일성을 위한 조선인민군이라는 사유 하나로 동족을 죽이고 죽이는 사투를 한 것이었습니다.
 동족의 가슴에 총탄을 쏘며 죽고 죽이는 아비지옥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런 전선에 투입되어 23일 동안 악전고투를 해야만 하는 고난의 세월이었습니다. 싸늘한 한기가 뼈 속까지 파고드는 산속 야전에서, 속내의 한번 갈아입지 못하고 목욕은 세수 한 번 못하여 얼굴은 굴뚝새요, 손발은 까마귀요. 검은 때가 낀 피부는 온통 옴투성이로 변했습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 아무 불평없이 우리는 목숨을 걸고 무장공비를 소탕할 대간첩작전을 수행했습니다. 오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대간첩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값진 전과도 있었습니다. 필자가 근무한 육군 제2사단 소속 17연대에서 방책선으로 접근 북상을 시도하는 무장간첩 한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던 것입니다.
 육군 제2사단 17연대는 매우 유명한 부대입니다. 6.25 한국전쟁 때 해병대와 함께 제일 먼저 서울에 진입하여 수도 서울을 수복하면서 중앙청에 태극기를 휘날린 역사와 전통을 지닌 용맹무쌍한 자랑스러운 부대입니다.

▶ 긴박했던 10.26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광주민주화운동  
 하지만 이런 대간첩작전도 끝이 났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비극으로 기록된 1979년 10월 26일에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불행하게도 서거하신 것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탄에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군의 최고통수권자였던 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한 급박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는 국가안보를 위한 긴급조치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 다음 날인 10월 27일 새벽에 작전지를 철수해야만 했습니다. 북한 남침에 대비한 급박한 비상조치였습니다. 대간첩작전에 동원된 모든 군부대는 긴급히 최대로 빠른 이동 수단을 강구하여 군부대로 철수했습니다. 부대원들은 날마다 전운이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잠도 밥도 제대로 자고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잠도 오지 않고 밥도 먹히지 않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었습니다. 모든 부대 장병들은 긴장된 비상사태를 예의 주시하며 지냈습니다. 하루하루의 일과는 주야간 사격과 수류탄 투척 훈련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1분간에 550발의 총알이 발사되는 M60공용화기와 개인화기인 M16자동소총에는 실탄을 장전했고, 가슴에는 수류탄을 매단 채 군화도 벗지 못하고 잠을 자면서 언제라도 출동할 태세를 갖춘 삼엄하고 고난에 찬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북한의 남침 징후가 없는 가운데 전국이 안정되어 안도하는 때에 또다시 긴장감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박대통령 서거 이후 최규하 대통령 권한 대행체제에서 전국이 안정되면서 평온을 찾는가 싶더니 또다시 광주민주화운동(그 당시에는 광주사태)이 일어나 전국이 불안하고 혼란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당시 광주지역에는 “무정부상태가 선포”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국군도 살얼음을 밟는 형편에 놓였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시간은 흘러 지나갔습니다. 삼엄하기 짝이 없는 비상계엄령아래서 엄동설한으로 얼어붙었던 시국도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봄으로 가는 시간의 추이 속에 풀리면 안정이 전국에 찾아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역을 얼마 남겨 놓지 않는 제대말년 시점에 필자가 겪은 격동기의 군복무기간 이었습니다. 그 후 멈춤 없이 돌기를 계속한 국방부 시계 덕분에 필자는 1980년 6월 12일자로 영광스런 만기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적군이 쏘는 총알이 날아드는 전방부대에서 몸 건강하게 전역한 것이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군복무 기간 약 3년 동안에 괴로움과 즐거움을 같이 하던 전우들 중에는 훈련과 대간첩작전에서 큰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건강과 명복을 함께 기원합니다. 
 이런 것을 회상하면 후방에서 느끼는 안보인식과 155마일 철책선에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이 체험하는 안보의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자유와 평화와 번영도 행복도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는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12시 20분경에 서울을 지나 파주시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자 한국자유총연맹고성군지회 허광도 사무국장은 우리가 가는 최종목적지는 민간인출입통제선(이하, 민통선)을 지나 비무장지대에 있는 판문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습니다. 우리 일행 중 단 한사람이 단 한 잔 소주를 마셔도 엄격한 음주 단속에 걸려서 전체가 입장할 수 없다는 사실과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당부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국도를 따라 있는 임진강변에는 철책선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동족간 분단현실이 눈으로 보였습니다.

▶ 눈으로 보는 북한의 남침 야욕 그 현장인 제3땅굴
 그런 가운데 차는 민간인출입통제선(이하 민통선) 관문, 육군 제1사단 전진부대에서 운용하는 검문소에서 입장절차를 거쳐 임진각 휴게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차가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었습니다. 메뉴는 구수하면서도 단백한 맛을 내는 순두부국 정식이었습니다. 다들 꼭두새벽에 나와 장장 8시간을 달려왔기에 허기지고 배가 곯은 터라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예정된 판문점 입장시간이 오후 3시 30분이라서 모두들 반주 생각이 간절했지만 참을 수박에 없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예정대로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 견학 길에 나섰습니다. 견학에 앞서 먼저 관광지로 꾸며진 제3땅굴의  DMZ영상관에서 제3땅굴의 발견 등에 관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1975년에 발견된 제3땅굴은 서울에서 불과 44km거리에 있는 위협적인 땅굴입니다. 남침용 땅굴은 1971년 9월 25일 “하나의 갱도는 10개의 핵폭탄보다 효과적이다”이라는 김일성의 교시로 1972년 5월부터 공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년 후 1974년 11월 15일 경기도 파주시 고랑포 비무장지대 내에서 최초로 남침용 땅굴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것을 제1땅굴이라고 합니다.
 제1땅굴은 휴전선 남방한계선을 불과 800m 남겨놓은 지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땅굴의 위치는 서울에서 불과 65km 거리로서, 그 규모로 보아 1시간에 1개 연대이상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는 규모의 땅굴이라고 합니다. 제1땅굴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관계로 외부에 개방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땅굴 발굴 수색 중 북한의 방해 매설물로 인해 한ㆍ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그 이후 1975년 3월19일에는 제2땅굴을 발굴했습니다. 제2땅굴의 규모는 제1땅굴보다 큰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강원도 철원 북방 13km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이 땅굴은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광장까지 갖추어 놓았고, 출구는 세 갈래로 분산시켜 놓았습니다.

 1시간에 3만 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으며, 차량ㆍ야포 등과 함께 탱크까지 통과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합니다. 제2땅굴 수색 중에도 북한의 방해대책 강구로 한국군 7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견학하는 제3땅굴은 1978년 10월 17일에 물과 수증기가 솟아나는 것을 보고 시추공을 뚫어 발견한 것으로서, 제2땅굴과 거의 같은 규모입니다. 판문점 남방 4km지점 비무장지대 안에 발견된 이 땅굴은 아치형으로 1시간에 3만 여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규모입니다.
 제3땅굴은 제1, 2땅굴보다 휠씬 더 위협적이라고 합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