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고성군 공설운동장 내 역도경기장에서 고성오광대 정기공연이 성대하게 열렸다. 공연의 컨셉이 “동맹”이라 하기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길래 “동맹”이라 했을까? 궁금하고 설렌 마음에 공연장을 찾았다. 도착해보니 그곳엔 늘 고성오광대에서 이야기하는 어울림과 소통이 있었다. 첫 번째는 탈 고사였다.

 우리 민속이 가지는 겸손을 표현하려는 듯 사방지신들에게 오신 모든 분들의 발복을 빌어주고 신에게 경건하게 공연의 성공을 고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줄타기였다. 줄광대가 부채를 펴고 줄에 오른다. 줄광대 노랫가락에 관객은 박수를 치고 하나하나 기예를 선보이면 너나없이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혹 떨어질까 하는 걱정은 없어지고 웃음과 장단에 어느새 서로가 하나가 되어 공연에 빠져들었다.

 줄타기 이후에는 의전행사라기에 또 고리타분한 내빈 소개와 검은색을 즐겨 입는 높으신 분들의 축사가 줄줄이 이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고성오광대였다. 내빈소개는 아예 없었고 축사도 한분만 했다. 사전에 양해를 구했는지 아니면 내빈들이 스스로 객석에서 손만 흔드는 인사에 그쳤다. 행사의 본질이 희석되지 않은 것 같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특히 오광대는 그야말로 우리고장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띄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의전행사는 본지에서 수차례 언급한 바 있었는데 고성오광대보존회가잘 지켜가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각종 행사에 가보면 수많은 내빈소개, 축사, 격려사, 똑같은 인사말이 이어지다 보면 진작 행사의 본질은 없어지고 의전행사에 지쳐 지역민들이나 참여한 분들이 짜증을 내는 게 다반사인데 이날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런 점은 다른 단체에서도 공유했으면 한다.

 의전행사 후 고성, 통영, 거제 등 바닷가에서 풍어를 빌며 안녕을 기원하는 남해안 별신굿이 펼쳐지고, 무년의 소리에 하얀 종이배가 춤을 춘다. 대자연 바다에 맛서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지역 어르신들이 손을 합장하고 바라보고 있다. 이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순응과 겸손이 느껴짐은 아마도 세월의 편린일 것이다.

 그리고 진주ㆍ삼천포 농악이 이어지는데 젊은 풍물잽이들의 손놀림이나 상모놀이에서 가슴속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온다. 실내라 그 소리에 귀가 멍멍한데 뛰고 돌고 그러다가 다시 나아가고 일산분란하게 흘러간다. 이래서 농악을 군악이리고도 하는 모양이다.

 이제 마지막 고성오광대공연이다. 탈을 쓴 말뚝이가 양반을 꾸짖고 비비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리고 관객들과 사진도 찍는다. 공연이며 어울림이며 다 같이 소통하고 하나가 된다. 할미가 배를 씰룩거리고 작은 어미가 순산을 하니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상여가 나가는데 조금 전에 본 할머니가 또 손을 합장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과 죽음, 그리고 자식걱정과 온갖 세월의 풍상이 보인다. 
 
 밖으로 나와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고성오광대에서 준비한 무료 식당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밥이 기다린다.
 지인과 앉아 막걸리를 한잔을 기울이는데 공연단이 어느새 상여를 매고 밖으로 나와 관객과 하나가 된다. 아! 이것이 “동맹”이구나 이것이 나눔이구나! 공연을 관람하지 않은 사람도, 지나가는 사람도 누구나 국밥에 소주한잔 할 수 있고 풍물소리에 어깨를 흔들어보고 오광대 탈 짓에 웃을 수 있는 이것이 진정한 21세기 “동맹”이라 느껴진다.

 우리가 잊고 지나가는, 바쁘기에 망각하는 것들 중 진실로 지켜가야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고성오광대 포스터 카피에 나와 있는 “가장 고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문구가 가슴에서 요동친다. 내 고향 고성은 아마도 문화적으로는 참으로 복 받은 곳이라 느껴진다. 이날 공연은 우리고장 사랑이 듬뿍 담긴 남다른 흔적이 엿보인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