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영찬 대성초교운영위원장

군 전역 후 80년대 전주, 이리, 군산 등 전라도로 여행을 간 적 있다. 한마디로 “경상도보다 못 사는구나”였다. 30년 후, 며칠 전 복잡한 머릴 감싼 채 광양을 지나 여수시를 거쳐 돌산도, 금오도, 안도에 도달했다. 한마디로 “경상도보다 훨씬 낫다”였다.
 잘사는 유럽 어떤 나라도 이처럼 화려한 대교들이 섬마다 이어질 수가 없을 정도다. 두서너 집 사는 골짝마저 아스팔트 포장이다. 시멘트 포장도 고마워할 경상도 도서 지역을 볼 때 격세지감이며 상대적 박탈감조차 들 지경이었다. 우리나라 섬 어디로 가든 옥녀봉은 있고, 선녀들이 목욕하듯이 금오도에도 선녀들이 옷을 벗고 있었다. 아무렴, 선녀들과의 2박 3일, 30여 년 만의 휴식은 달곰쌉쌀했다.
 30년만의 휴식을 뒤로하고 현실 고성으로 담담히 돌아와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배신의 정치’가 무서우리만큼 처절하다. 유승민 부친상에 그 흔한 조화 한 점 허락하지 않는 완고함이 나라의 장래가 고무적인지, 암울한지 알 수가 없다.
 배신자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상대를 지칭함인데, 쉽게 말해 나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원래 배신의 방석을 깔고, 배신의 이불 덮고, 배신의 담장을 쌓아가는 것이 인간살이다. 아이는 아비의 기대를 저버리는 배신자, 내 청춘 내 순정 짓밟아 놓고 얄밉게 떠난 님도 배신자, 유비를 필두로 한 동탁, 유방, 조조, 여포 등 배신자의 대명사들이 삼국지를 주름잡는다. 굳이 사방팔방 나열하지 않아도 인간살이 근본은 배신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근간 고성에는 배신으로 피눈물 흘리며 몸서리쳐져 잠 못 이루는 낙선자가 부지기수다. 믿었던 사람이 상대 후보 선거운동하고, “알았다”하고 뒤로 험담 일삼고, 이놈 저놈 돈 받고 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배신. 선거의 겉포장은 ‘민주주의의 꽃’이지만 쥐어짠 액기스는 ‘배신의 꽃’이다.
오죽하면 “사돈 표는 있는데, 내 표는 어디 갔소?”라 했겠나.
“세상 다 그런 것이다”라는 패배주의를 양산하려는 게 아니다. 평생 살면서 아픈 곳 한두 곳쯤은 있어야 건강의 소중함도 알고 오래 살듯이, 배신이 마냥 더럽고 추잡한 것만 아니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달력 나이만 먹다가 못 본 것들을 친족 선거로 인해 심리적 나이를 먹게 됐고, 소위 ‘나잇살을 먹게 됐다.’ 모든 현상의 배신은 내게 있고, 내가 주축이기에, 나로 인한 파생이다. 이것들을 소화하지 못하면 공동체에서 이탈하고 만다. 공동체에서 이탈은 곧 사회적 나이를 거부하는 것이기에 병적 증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돌산 이순신대교 아래 흰 물살은 이빨 드러낸 여우의 배신 같았다. 서둘러 통과하고 싶었다. 대교 멀리 도도히 뜬 거대 함선의 나열은 공동체의 안온함이 배여 있는 듯했다. ‘그곳으로 가고 싶다’ 정갈한 의식을 치르듯 다리를 지나 찻장 너머로, 대교 아래로 모든 복잡다기를 던져 버렸다. 수평적 공동체에 거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