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문전성시는 문 앞에 시장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권세를 잡고 있는 사람의 집 앞이나, 부자로서 막강한 세력가의 집 앞에 찾아드는 사람들로 시장처럼 분비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애제(哀帝) 기원전 7년부터 10년까지 이때 한나라는 그 국운이 쇠약하여 이미 멸망 직전에 놓여 있었다. 애제는 스무 살에 천자가 되었는데 정치, 문화, 교육의 실권은 애제의 외삼촌, 외종 그리고 처남 심지어 사촌 처남까지 손아귀에 들어 있고 애제는 다만 황제의 실권 없는 빈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였다. 그는 7년 만에 갑자기 죽었다.
이 애제를 받들고 혼란에 빠진 정치를 바로잡아 보려고 노력하고 애쓴 신하가 있었으니 바로 그가 정숭(鄭崇) 이라는 대가의 학자이다.
정숭은 명문대가의 출신으로 대대로 황족과 인척관계에 있었다. 처음 정숭은 애제에게 발탁되어 상서복야(우리나라 국방부차관)에 임명되었는데 그 무렵은 죽은 애제의 외척들의 부정과 부패정치를 두고 볼 수 없어 애제에게 여러 번 대책을 건의했다. 애제도 정숭의 말에 귀를 기울기 했지만 결국 외척의 세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간신배의 말에 의해 차츰 정숭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 뒤 애제는 점점 자포자기 되어 나라 일은 일체 돌보려 하지 않았다. 정숭은 계속 애제에게 바른 정치를 간언하다가 나중에는 애제로부터 견책과 신문까지 받고 몸에 병을 얻기까지 했으나 굳건히 참고 견디었다 .이렇게 곤경에 빠져 병까지 얻은 정숭에게 중상과 모략을 만들어 낸 사람은 상서령(尙書令) 벼슬에 있는 조창(趙昌)이다. 조창은 애제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애매 무모한 고발을 하였다.
‘정숭은 왕실의 여러 황족들과 내왕이 빈번한 것으로 보아 황제를 무너뜨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를 불러서 취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고 아뢰었다.
애제는 조창의 간사하고 조작된 말을 그대로 믿고 정숭을 불러 형틀에 묵고 엄한 문초를 하였다. ‘그대의 집 문전에는 사람이 시장바닥 같이 모여 든다는데 무엇 때문에 황제인 나를 괴롭히려 하느냐’ 하고 엄하게 문책하였다.
정숭은 대답하였다. ‘신의 문전에 사람이 모여 드는 것은 신이 남보다 글을 많이 안다고 하여 글을 배우려고 오는 사람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글을 가르쳐 주는 것 뿐이옵고, 신의 마음은 푸른 물처럼 맑습니다. 바라옵건데 다시 한번 조사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듣자 애제 임금은 성을 내며 그를 옥에 가두고 철저히 취조를 하도록 명했다. 하지만 정숭은 끝내 옥중에서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정숭이 저술한 자서전에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 후 전한(前漢)은 패망하고 후한(後漢)의 임금이 등용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조 철종<1850-1863>때 외척(外戚)의 막강한 세력과 정치적 권력에 의해 나라의 근본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하여 고종황제 때 정치의 기본이 뿌리 채 요동치기 시작하여 일본의 간자에게 국모가 시해(弑害) 당하고 끝내 1910년 나라 전부를 일본에게 넘겨주었으니 이 얼마나 처절한 일인가? 이는 오직 부정부패를 방지하지 못하고 외국의 정세를 파악하지 못한데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