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부 고성문화원 이사

어느 듯 찌는 듯이 무더웠던 여름은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 왔습니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도 지나고 맑고 투명한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도 지나감에 따라 조석으로 써늘한 한기가 스며드는 중추, 시원한 가을인가 합니다. 가을 참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은 아름답고 풍성한 계절입니다. 가을은 자연과 조상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계절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는 사색의 계절이자, 독서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렇듯이 가을은 수식어가 가장 많은 계절인가 합니다. 결실의 계절, 수확의 계절, 풍요의 계절, 감사의 계절, 등화가친(燈火可親) 독서의 계절,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등으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필자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청량한 가을밤이면, 독서를 통하여 언제나 변함없는 친구인 책과의 대화를 하곤 합니다. 그들이 말해주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참으로 유익하고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넘나들며 다양한 시대와 나라와 독특한 환경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책은 매우 좋은 친구입니다. 특히 세월이 흘러가도 노후 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고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혜로운 삶을 길을 알려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책들을 상우(尙友)라 합니다.
 오늘은 고전으로 유명한 상우인, 나관중이 쓴 삼국지(三國志)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의병고인지계(疑兵藁人之計)로 무중생유(無中生有)의 전략을 멋지게 구사한 제갈공명(제갈량)의 기발한 기지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적벽대전을 앞두고 주유가 제갈공명에게 화살 10만개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내일의 격전을 앞두고 하룻밤사이에 10만 개의 화살을 만들자면 활촉과 활대가 있어야 하고, 숙련공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화살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그 많은 10만개의 화살을 짧은 시일 내에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 쓰는 방법이 궁여지책(窮餘之策)입니다.
제갈공명은 부하들에게 배 20척과 볏짚으로 만든 고인(藁人, 허수아비) 백 개씩을 실으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배를 띄워 일제히 진격의 북을 둥둥둥 울리며 적군을 향해 노를 저었습니다. 큰일 났다. 안개 속으로 몰려드는 촉나라 군대의 선단이 접근해 오자, 조조는 당황하여 명령을 내렸습니다. “쏘아라! 화살을 아끼지 말고 쏘아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쏘아 죽여라!” 조조의 수륙양군(水陸兩軍)이 마구 화살을 쏘아 댔습니다.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이 볏짚으로 만든 허수아바 군인들에게 셀 수도 없이 꽂혔습니다. 안개가 개어 고인군들이 물려갈 때까지 활을 쏘아댔습니다.
배마다 화살을 가득 싣고 돌아온 제갈공명은 하루아침에, 잠깐 사이에 10만개가 훨씬 넘는 화살을 마련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의병고인지계 무중생유의 비결입니다.
“이 보게 삼국지 친구! 만약에, 제갈공명이 고인군을 태운 선박을 보냈을 때 조조가 미리 알고 불화살을 쏘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제갈공명은 불바다가 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전개된 적벽대전은 상상도 못했을 지도 모른다. 조조를 속이고 화살을 얻으려고 의병고인지계를 사용한 제갈공명은 천문과 지리와 인사에 통달한 뛰어난 군사(軍師)로서, 전략과 전술에 대한 지식정보력이 위나라 조조 보다는 한 수 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멋진 이야기다.” 라고 말해줍니다.

지혜의 보고인 고전과 양서는 변하지 않는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언제나 변함없는 상우인 책과의 대화를 한 번 권고 해봅니다. 동서고금의 시공을 초월하여 넘나드는 이야기를 듣고 즐기면서 마음의 양식도 쌓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