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의 요청에 따라 본 고장에서 출생한 목월 시인에 대한 정종암 문학평론가의 평론을 3회에 걸쳐 게재키로 한다.
그는 인용 및 참고문헌은 본문에 표했을 뿐, 별도의 주석을 달지 않았다. 이 평론을 기화로 기존의 목월 시 연구 서적이나 자료에서 중구난방인 목월의 출생년도, 출생지, 조모, 사랑 이야기, 가계도 등을 바로 잡고자 한다.
본 작품을 인용 시는 e,mail; jja-news@nate.com으로 동의나 허락을 구해야 한다" 고 밝혔다. 또한 그는 신춘문예 등으로 등단한 문학계 3관왕 작가답게 "남산공원의 '나그네' 시비를 보고 목월 시인의 궤적을 밟으면서 이에 대한 문학평론을 쓰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편집자 주>

바다로 기울어진 사래 긴 밭이랑

아들은

골을 타고

어머니는 씨앗을 넣는다.

어느 시대이기로니 

근심없는

태평성대만이 있으리요마는 

밭머리에

환한 무명(無名) 꽃나무.

-중략- 

해는 한낮으로 달아오르고

음력 삼월 초순의

눈부신 조망(眺望)을

사래 긴 밭이랑 끝에 남빛 바다의 잔잔한 고임.

<바다로 기울어진>부분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어머니를 중심으로 자연과 잘 동화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밭머리에/ 환한 무명 꽃나무' 에서 더욱더 느껴진다. 목월이 자연에 잘 동화된 삶은 지상의 낙원을 추구하는 유토피아(Utopia) 내지 목가적 이상향인 아카디아(Acadia)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시적 화자는 '어느 시대이기로니/ 근심없는/ 태평성대만이 있으리요마는' 이라는 연에서 넌지시 자신의 고향에서 자란 유년시절이 태평성대였는 것을 토로하고 있다(박종길.향수의 미향 -목월시의 전개- 문학과 지성사.1971.9.581쪽). 목가적이기도 한 이 시에서뿐만 아니라 고향에서의 삶은 목월이 성인이 되고서도 그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평생 향수의 미학으로 나타나고 있다.

3. 목월의 사랑 그리고 연인

대구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일했던 박준필의 맏아들인 목월은 23세 때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20세인 유익순과 결혼했다. 소년시절을 보낸 곳은 초등학교와는 약 6km, 분황사탑과의 거리는 1km 남짓한 곳이었다. 목월의 사랑이 소년시절에 5~6세 연상의 여인을 흠모했다는 설도 있으나 초등학교 때부터 이성에 눈을 떴다.

이웃집의 2년 아래 김씨 성을 가진 소녀였다. 그 소녀는 할아버지 때부터 가업인 지물포를 경영하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다. 소녀를 흠모하면서 자란 목월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앞산에 올라가 그녀와의 사랑이 맺어지도록 새벽기도를 올릴 정도로 조숙했던 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바랐던 그 소녀와의 연은 닿지 않았다. 그 소녀는 15세 때 결혼을 하였기 때문이다. 어찌된 연유인지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에 안착했다. 이에 새롭게 흠모하였으나 사별한지 1년만에 재혼을 했지만 곧 죽었다. 이로써 그녀와의 사랑은 끝이 났다. 이에 목월은 그녀와의 애틋한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

슬픔의 씨를 뿌려놓고 가버린 가시내는 영영 오지를 않고...

한 해 한 해가 저물어질 고운 나무에는 가늘은 핏빛 연륜이 감기었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중략-

이제 소년은 자랐네

구비구비 흐르는 은하수에 슬픔은 흘렀건만...

먼 수풀 질(質) 고운 나무에는 상기 가늘은 핏빛 연륜이 감기네.

(가시내사 가시내사 가시내사)

<연륜>부분

산문 형식의 본 시에서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목월은 봉황대와 분황사탑을 바라보며 수많은 왕릉의 푸른 잔디 위의 초롱초롱한 별빛 아래에서 별다른 친구도 없었고 마땅한 놀이도 없어 더 진한 사랑의 가슴앓이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나머지 그 사랑도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플라토닉 사랑(Platonic love)으로 끝이 났다.

목월이 소년이나 청년시절이 아닌 유부남이었던 그의 나이 30대 말에 또 한 여인이 다가왔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연정을 품었던 여대생 H는 어느 날 목월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많은 나이차로 처음에는 그 사랑을 거부했었다. 그러나 목월은 서울 용산구 원효로 4가에 처자식을 두고 제주도로 도피하는 애정행각을 벌였다. 미남형인데다 지적인 목월이었지만 당시로서는 홀애비나 노총각이 아닌 유부남이었던 목월에게 그러한 사랑이 다가올 줄을 예상이나 했을까. 제주도의 어느 여관에 여장을 푼 그 여인은 밥을 짓고 세탁은 물론 과자도 만들어 주었다. 예쁜 여인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몸이 허약한 탓으로 병원에 업고 다녔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벗 삼아 사랑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목월이 제주도에서 인근 중학교의 교사였던 양중해 시인과 술잔을 맞대며 가정을 잊고는 시낭송회까지 개최하는 등의 여유로움까지 부렸다.

그렇게 젊은 여대생과의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목월의 부인 유익순은 여비는 물론 그녀의 한복까지 마련하고 찾아 왔다. 그리고 그후 목사였던 그녀의 아버지도 딸의 행방을 알고는 제주도로 찾아온 것이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대구로 돌아 갔다. 목월도 끝내 서울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두고 제주도에서 가깝게 지냈던 양중해 시인은 혼자만 남긴 채 떠나는 두 연인을 두고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하략>-" 고 변 훈의 곡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1952년 11월로 추정되는 이러한 사건을 두고 목월은 그녀와의 사랑을 아래와 같이 시를 읊었다.

기러기 울어대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 낮이 기울며는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우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별의 노래>전문

보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목월의 사랑, 여인은 처녀였고 목월은 처자식을 둔 가장이었다. 그러기에 언젠가는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마냥 그 사랑을 내칠 수 없었던 것으로 목월 자신도 그 애틋한 사랑에 눈물을 지새우는 밤을 보냈을 것이다. 위 시의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밤엔/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우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란 연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나고 있다. 언젠가 그녀의 병실에서 밤을 밝힌 목월은 "나는 그것이 사랑이거나 연인이라거나 그런 의식은 없었다. 그 설레이는 암담한 시대에 내 마음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지주(支柱)요. 그녀의 곁에 있으면 바다같은 편안함과 충족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녀는 나의 전부였지만 인간관계로써는 벗어났다." 고 피력한 바 있다(이숙향.가곡의 고향.한국문헌.1998).

사랑하면서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운명의 장난이었음을 알고 체념하는 듯한 목월의 심정이 묻어 나온다. 6.25전쟁의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그녀가 목월의 마음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였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녀와의 목월의 사랑이 로망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불륜이었을까. 로망이였을까. 목월 자신의 내면적 세계에서와는 달리 에둘러 위와 같이 표현하고 있지만 아내 유익순에게는 상처를 안겨준 것만은 사실로 보여진다. 그의 부인은 목월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박목월.밤에 쓴 인생론.삼중당.1984). "우리의 결혼생활은 순탄했습니다. 그다지 큰 풍파를 겪지 아니하고 순조롭게 살았습니다. -중략- 그러나 꼭 한 번 남편이 30대말에 여성문제로 나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략-" 에서 보듯 요즘의 상황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목월의 부인이 그 애정행각을 로망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남편이 감정적으로 한동안 설레지만 종국에는 가정으로 돌아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다만 하나님만 의지해서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후 모든 물결이 잠들고 남편이 환한 얼굴로 돌아왔을 때, 나는 새삼스럽게 가정의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략- 남편은 나의 머리요, 몸의 구주시라는 주님의 말씀을 늘 새기며 그가 가정에서 멀어졌더라도 남편에 대한 나의 신뢰로 나에게 주어진 시련을 달갑게 받아 참음으로써 이겨낸 것입니다(앞의 책.75쪽)." 고 말했다.

목월의 부인도 독실한 기독교인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 그리고 여인이었다. 더구나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 뙤약볕에도 찬서리가 내리듯이 애정행각을 벌이는 가장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독일의 시인 릴케도 50대에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장미를 꺾다가 그만 가시에 찔려 지병인 백혈병이 있는데다 파상풍에 걸려 결국에는 사랑하는 연인보다 일찍 세상을 하직하는 중년의 사랑을 엿볼 수 있기는 한 면이 있다. 2002한일월드컵을 뜨겁게 달구었던 축구의 명장 히딩크도 20년 연하의 연인과 밀애을 즐기는 세상이기는 하다. 한국인의 정서 더구나 당시로서는 목월의 애정행각은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목월이 설사 선인(仙人)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삶에 완벽할 수 있었겠는가. 4개월간의 제주도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 갔으나, 곧장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울 효자동에서 2개월간 하숙을 하다가 결국에는 이전보다 더 충실한 가장으로 돌아가기는 하였다. 잠깐의 일탈이었지만 목월 부인의 지혜가 엿보인다. 그 이면에는 시어머니로터 전도받은 기독교 신앙의 힘이 컸다. 정면으로 그녀와의 혈투를 삼가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다리면서 가정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4. 절대자의 힘에 의한 시에서의 기독교적 사랑

목월의 어머니 박인재는 철두철미한 기독교를 신봉하는 이였다. 그의 며느리이자 목월의 부인 유익순은 애초에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결혼 후 기독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목월의 아버지도 기독교 신앙을 가졌는 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목월의 어머니 때부터 기독교 집안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목월의 어머니 박인재는 경남 양산의 물금면에서 경북 경주의 박준필에게 시집을 왔다. 그 이전의 대(代)에서는 기독교 집안이 아니었다. 이러한 면은 목월의 아들인 동규의 수필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앞의 책. 67~8쪽).

할머니는 열성적으로 예수를 믿으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다시 아버지와 결혼해서 고향에 온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하셨다.

할머니는 막내딸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신학교에 다니는 청년을 사위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뿌리를 내리게 된 우리 집의 기독교 신앙은 다시 어머니에게로 이어져서는 내가 장성하여 결혼하자 며느리를 교회로 인도하였다. 물론 내가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기독교를 믿는 집안인가를 나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교회에 다닐 것을 약속해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후 내가 며느리를 보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략- 교회에 나올 것을 확실하게 약속하여야 결혼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중략- 이와 같이 4대에 걸쳐 한 가족의 삶에 흐르고 있는 기독교 정신의 맥락이 이어져 내려온 데는 할머니의 생활과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삼촌의 삶에서 생생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에서 엿볼 수 있듯이 어머니 박인재는 목월에게 기독교적인 시를 쓰게된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부산 인근인 물금이나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북 경주는 유독 불교신앙이 압도적이었음에도 기독교 집안에서의 성장 배경에서 그 신앙시를 찾을 수 있다. 목월 자신도 "신앙시는 단순하게 시를 빚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성실한 체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신 앞에 시인으로서 시인적인 방법에 의한 신앙의 고백이라야 한다. 시를 쓰는 그 자체가 신앙생활의 일부요, 신앙인으로서의 작가는 신앙시를 씀으로 자신의 신앙을 확인, 심화시키는 일이다(박목월. 1974.89~90쪽)." 라고 언급했듯이, 목월 자신에게 있어서 작품을 신앙생할과 일치하고 있다. 이로서 목월은 신에게 더 나아가면서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엘리엇트(T.S.Eliot)의 주장처럼 이러한 기독교적 신앙체험이 무의식 상태로 작품 속에 용해되어 있을 때 가장 바람직한 기독교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했듯이 목월은 기독교적 사상이 바탕이 된 순수서정시란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사랑 의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이때 낙원은 본질과 현상이 분리되지 않았던 곳, 기표와 기의가 일치되었던 곳, 하나님이 우리와 더불어 함께 하고 있었던 곳이 된다. 그곳은 진리가 존재하며 그 빛을 발하던 공간이 된다. 이 진리적 삶을 타락한 '지금-이곳' 의 현실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신학이 바로 구원의 현재화와 영속화가 되는 것이다(김윤환.박목월 시에 나타난 모성 하나님.2006.열린출판사.104쪽).

서정시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것은 그것이 지닌 미메시스(Mimesis. 모방)적 속성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메시스란 결국 본질, 곧 진리의 언어적 반영에 다름 아니다. 즉 언어적 질서를 통해 사물의 질서와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창조적 영성이 지닌 은유에의 의지와 관련을 맺고 있다. 창조적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은유에의 의지는 결국 피조물들의 평화회복을 기원한다.

목월은 특히 그의 후기 시에서 신에 대한 완전한 의탁과 순종, 신앙에의 전적인 수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목월의 마음은 경건함과 겸손함의 연속이다. 이러한 바탕으로 절대적인 믿음에 따르는 희망을 그의 시에서 많이 엿볼 수 있다.

침상머리의 스탠드를 켰다.

밝은 불빛에 떠오르는

흰 시이트를 덮은 침상은

나의 하루보다 구김살이 없었다.

간소하게 정결한 침상은

과연 나를 위해 마련되었을까.

송구스럽다. 송구스럽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만 허락된 잠자리.

스탠드 불을 끄기 전에 나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당신이 빌려준 잠자리에서

꿈자리나마 어지럽히지 말자.

<천사에게>전문

하루의 일상을 끝낸 후 맞이하는 침상에서 목월은 "흰 시이트를 덮은 침상은/ 나의 하루보다 구김살이 없었다" 는 목월의 하루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구겨지고 얼룩졌는가를 먼저 반성한다. 자신이 걸어온 시간의 자리마다에 배인 삶의 무늬는 고달픈 여정 그것이기에 "간소하게 정결한 침상은/ 과연 나를 위해 마련되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그 의구심은 이내 사라진다. 그것이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만 허락된 잠자리' 임을 목월은 알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복한 사람이자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될 사람이다. 그러기에 목월은 침상을 '당신이 빌려준 잠자리' 로 인식하는 것이다. 당신의 뜻대로 가난한 자로 산 하루이기에 당신이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일 것이다(김윤환.앞의 책.108~109쪽). 목월은 이러한 절대적 믿음에 그 바탕을 둔다. 그 믿음에 따르는 희망이 그의 작품에 언제나 드러나면서 더욱더 후기 작품에서 긍정적인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