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부 고성문화원 이사

그리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고향생각에 잠겨있는데, 홀연히 저 멀리 산 위에서 퉁소 소리가 바람을 타고 아득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폐부를 파고드는 듯이 애절한 퉁소 소리였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 눈에서 눈물이 절로 솟아오를 지경이었습니다. 초군의 병사들은 가슴이 메어 오는 슬픔을 느끼며, 퉁소 소리에 정신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퉁소의 가락에 맞추어 여기저기서 초나라 민요풍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데,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구월의 가을은 깊어 들에는 서리가 날리고/ 하늘은 높고 물은 말라가는데 기러기 떼 슬피 울어 예네!/ 싸움은 마냥 고달파 밤과 낯이 모두 괴로운데/ 적은 세차게 몰아쳐 와서 모래 언덕에 백골을 쓰러뜨리네./ 고향을 떠나 어언 십 여 년 부모와 생이별 나누었으니/ 처자식인들 얼마나 외로우랴 가도 가도 독수공방을/ 메말라 가는 고향의 밭은 그 누가 가꿀 것인가?/ 이웃집엔 술이 익었으련만 누구와 더불어 마시랴!/ 늙은 부모는 문간에 기대어 가을 달만 처량히 바라보고/ 어린 것은 굶주림에 울어 간장이 끊어질 노릇이네/ 말이 바람에 울부짖음도 또한 고향이 그리움일지니/ 나그네길이 아무리 오래기로 어찌 고향을 잊어버리랴!/’

슬픈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한없이 계속되어, 초군 병사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옥퉁소를 불고 노래는 부르는 사람은 장량과 그의 부하들 이었습니다. 퉁소의 가락에 맞추어 슬픈 노래는 이렇게 계속되었습니다.

‘한번 싸우면 창검에 휘말려 죽되/ 뼈와 살은 곤죽이 되어 개천가의 풀을 덮을 뿐이니/ 혼백은 허공중에 떠돌 뿐 갈 곳 조차 없으리로다./ 장하던 그 마음 마냥 쓸쓸하여 황량하기 이를 데 없으니/ 기나긴 가을밤에 고향 생각뿐이로다./ 급히 고향으로 달려가면 죽음을 면할 수 있으리라/ 이 노래는 너를 살리려 함이니, 어찌 하늘의 소리가 아니랴/ 너 하늘의 뜻 알았거든 주저할 바 아니로다./ 한왕은 덕이 높아 도망가는 군사를 죽이지 않으리니/ 고향에 돌아  가겠다면 말대로 보내준다./ 비어 있는 진영 지키지 마라 군량은 이미 떨어 졌도다./ 머지않아 포로가 되면 옥석이 함께 다치리로다.’

장량이 계명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옥통소를 높고 낮게 불에 따라 수백 명의 가수들은 숲속에 숨어 이상과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때로는 만학이 구천에서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철석간장을 속속들이 녹여 내는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달빛은 밝고 바람은 차가와, 퉁소 소리와 노랫소리는 오장 육부를 자꾸만 파고들어, 초군의 병사들은 고향 생각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노랫소리에 심취한 초군의 병사들은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저희 끼리 중얼거렸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신선을 보내어 퉁소를 불게하심이 분명하다. 우리가 굶주림을 참아가며 비어있는 군영을 지키고 있다가는, 한군이 몰아쳐 오기만 하면, 모조리 죽어버릴 것이 아닌가.” “그야 물론이지. 그렇게 되면 부모도 처자도 영원히 못 만나게 될 것 아닌가. 우리가 끝까지 버틴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과 다름없단 말이야, 마침 달이 밝으니, 모두들 고향으로 달아나 버리자.” 그러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좋은 생각이야, 우리가 도망쳐 가다가 붙잡히기로, 한왕은 우리를 죽이지 않을 것이야, 그러니까 모두들 달아나기로 하자!”
사태가 이렇게 되니, 초군의 병사들은 앞을 다투어 달아났습니다. 초군의 병사들은 처음에는 남의 눈을 속여 가며 한 사람 씩 두 사람씩 달아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수효가 점점 불어 가자, 나중에는 10명씩 20명씩 공공연하게 떼를 지어 달아났습니다. 그리하여 밤이 삼경에 이르렀을 때는, 그처럼 충성심이 강했던 친위대의 병사들마저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항우의 마지막 남은 8천의 군사는 10분의 1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장량의 옥퉁소 소리는 그렇게도 무서운 영향력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를 뒤늦게 안 항우는 이미 대세가 기울어졌음을 깨닫고 막사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술에 취한 그는 사랑하는 여인 우희와 자신과 생사를 같이한 애마 추를 생각하며 시를 지었습니다. 또한 마음속으로부터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우러나와 그 시를 노래로 불렀습니다. 노래 소리는 비정하면서도 처량했습니다.
“힘은 산을 뽑을 듯하고 기세(氣勢)는 천하를 뒤덮는데/ 때를 잘 못 만나 추야 너마져 발걸음을 멈추는구나!/ 네가 가지 않으니 어쩌란 말이냐!/ 우희야, 우희야! 너를 또한 어찌하란 말이냐!”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에서 항우는 약속을 지킨 자신의 행동 때문에 재난을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맹목적으로 약속을 지키는 것이 결코 지혜로운 행동이 아닐 수 가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데도 때에 따라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