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가지가 뻗어나가면서 뿌리에서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뭇가지도 번성할수록 땅에서 멀어지고 물줄기도 흘러갈수록 그 근원에서 멀어져 돌이켜 갈수가 없다.
사람도 자녀 낳고 살다보면 그 자손들이 형제자매에서 번성하여 사촌, 육춘, 팔촌으로 점점 촌수가 벌어지며 아득한 남처럼 살아가게 된다.
어릴 적에는 부모 따라 사촌들과도 잘 어울려 놀았어도 우리사회에서 고학년이 되어가며 입시준비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각자 가정과 직장을 갖게 되면 부모, 동기 만나기도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처지가 되어 사촌, 육촌들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게 된다.
이처럼 점점 벌어지는 한 뿌리들이 집안 어르신들의 칠순, 팔순잔치나 자녀들의 혼사가 있으면 친척이라는 울타리로 모일 일이 생긴다. 이따금 이런 행사에 참석해 보면 집안이라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분주하고 바쁜 세상에서 자주 만나보지 못했으면서도 일단 모이면 이름으로 선,후대를 분별 할 수 있고 촌수를 따질 수 있고 외모의 닮음에서 세대 간에 서로를 보는 눈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내 부모와 비슷하게 생긴 어른들이 많고 내 자녀와 비슷한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릴 때 전혀 본 적이 없는 사촌의 자녀들도 그들 부모의 어린 시절을 똑 빼닮은 모습을 보며 너 누구의 아들이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외모들을 찾을 수 있다. 때론 부모와 너무도 닮은 모습에 엄마랑 혹은 아빠와 붕어빵이구나 하는 말을 하며 웃기도 한다. 어쩌다 부모보다 인물이 출중한 아이가 있으면 ‘너 주워왔구나’, ‘엄마, 아빠 전혀 안 닮았어’ 하며 기분 좋게 놀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각 집안의 모임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가계계승의 기본조건이었던 혈족의 표시인 성(姓)의 개념이 개개인에게 확실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새로운 가족법이 적용되는 사회에서 앞으로 우리의 집안이라는 개념은 달라질 것이다.
이혼·재혼이 흔한 일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엄마가 재혼해서 새아버지와 성이 다를 경우 사회적으로 부모가 재혼가정임이 알려지고 이것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며 아이의 성을 계부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만들어졌다.
자녀의 성을 이혼, 재혼에 따라 바꾸게 된다면 성이라는 개념에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문중도 사라지고 혈족이란 전통도 없어질 것이다. 집안이라고 모여서 이름을 물어도 진정한 핏줄로 내려오는 자손임을 구분할수없게 될 전망이다. 성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어 갈 것이다.
앞으로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아빠들을 보며 외모가 닮지 않았을 때 지금처럼 단순히 ‘엄마 닮았네’라고 말하기 어려워지는 사회가 올 것 같다. 그 말은 자연히 아내가 데리고 온 아이인가 라고 묻는 말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금처럼 재혼한 엄마들이 걱정하는 성이 다른 아버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외모 콤플렉스로 고민하게 되지나 않을까.
남성들에게 내 자식이란 개념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혼이 날로 급증하는 사회에서 아이 낳고 이혼 할 수 있는 확률은 점점 더 높아만 가고 있다. 만일 이혼한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재혼을 하여 새아버지와 성이 다르므로 해서 생기는 사회적 편견을 문제 삼아 새아버지의 성으로 바꾸어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품에서 떠나 성까지 바꾸어 생면부지의 가정에서 엄마 따라간 아이와 어떤 관계가 될 것인지. 단순히 전처의 아이라고 말 할 것인가.
대신 아이 딸린 이혼녀와 재혼을 하는 남성은 자녀의 복리와 장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성까지 내어주며 양육하고 공부시켜야한다. 이와 같은 제도라면 남성들에게는 이혼하고 재혼해서 살게되면 자신의 자식보다 아내의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사태가 세상에 만연하게 되면 사회혼란이 야기되지 않을까 주의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