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파-란 유리알 같은 가을! 가을은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 수식어가 붙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더위도 추위도 없는 청량한 가을밤에  풀벌레 소리 들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해 등불을 밝혀놓고 독서를 한다는 독서의 계절입니다.
 유난히도 긴 장마와 폭우가 잦았던 2011년 신묘년, 그 지루한 여름도 사시의 순환에는 어쩔 수 없이 꼬리를 감추고 중추가절 등화가친 독서의 계절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이런 좋은 계절에 부족한 마음에 양식을 보태고자 우연히 서가에 꽂혀 잠자던 사기(史記)를 뽑아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사마천(司馬遷)과 사기의 탄생에 대하여
‘사기(史記)’이름만 들으면 왠지 딱딱하고 어렵고 한문투성이의 케케묵은 옛날 역사책을 연상하였지만, 사기를 조금 읽어보니 곧바로 그것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사기는 정말 장엄한 인생론이며, 흥미진진한 대하소설이며, 역사문학이며 삶의 지혜를 찾는 이를 위한 비장의 보물창고와 같은 책이라 하겠습니다.

 사기의 저자는 중국 한나라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입니다. 저자 사마천은 ‘이릉의 화’로 인해 불행하게도 남성을 거세당하는 궁형이라는 치욕을 받은 인물입니다. 사마천이 궁형을 받게 된 계기인 ‘이릉의 화’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서기전 99년에 한나라 장군 ‘이릉’은 흉노족 토벌에 나섰다가 패하여 흉노에게 투항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한 무제(漢武帝)는 크게 노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정의 대신들도 이릉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평소 이릉을 뛰어난 장군으로 여기고 있던 사마천만은, 홀로 나서 이릉을 변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한 무제는 이광리 장군에게 공을 세워 출세하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원수로 여기는 흉노 정벌에 앞장서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광리는 특별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릉 장군은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사마천은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홀로 나서 충언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릉을 위한 진실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불행과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에 한 무제는 사마천이 자신이 사랑하는 부인 이씨의 오빠 이광리 장군을 비난 한 것은 결국 한 무제 자신을 비난하려는 것이라고 오해하여 사마천을 처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무제는 사마천에게 세 가지 형벌을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첫째는 허리를 잘리고 죽는 길, 둘째는 50만 전 가량의 금전을 바치고 자유로운 몸이 되는 길, 셋째는 선비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남성을 거세당하는 궁형을 당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마천에게는 50만전이라는 거금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치욕을 피해 죽음을 택할 것인가. 하지만 사마천에게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온 생을 바쳐온 역사서 또한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선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궁형을 자청하게 되었습니다. 피눈물 나는 치욕과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치욕을 오직 사기의 완성을 위해 감수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삶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새로이 하여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난 했던 그의 삶의 역정은 오히려 역사서인 사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사기를 단순한 역사서 이상인 고전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기의 내용에 대하여
 사기는 편년체인 공자의 춘추처럼 연대별로 발생하는 사건을 순서대로 기술하는 일반적인 역사서와는 다른 기전체 역사서입니다. 여기에는 제왕의 즉위 연대에 따라 편년체 형식으로 기술하는 ‘본기(本紀)’뿐만 아니라, 제후들의 역사를 그린 ‘세가’, 춘추 전국시대를 살아 간 수많은 영웅, 호걸, 간웅, 선비를 비롯한 도적, 협객, 자객, 점쟁이, 건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열전(列傳)’, 그리고 당대의 생활상을 분야별로 그린 ‘서’ 와 역사적인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전체(紀傳體)’ 란 단어는 본기(本紀)의 기(紀)와 열전(列傳)의 전(傳)을 따서 된 단어입니다.

 사기는 삼황오제로부터 한나라까지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풍부하고 흥미진진한 내용과 독특한 형식을 지닌 최고의 역사서라고 생각 됩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많은 분들이 한번 쯤 읽었으면 합니다. ‘사기’를 읽지 않고서는 중국 역사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는 말처럼 ‘사기’는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통과해야할 책이요, 역사학의 신기원을 이룬 세계인의 고전이자 동양 지혜의 정수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