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태조 이성계의 장군시절 황해도 곡산부 치마곡에서 말을 달리며 사냥을 하다가 용연(龍淵) 이라는 샘에 이르러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아름다운 그 고을의 처녀(신덕왕후)에게 물을 청하니 물을 떠서 물위에 버들잎을 한 움큼 띄워서 드렸다는 고사는 우리가 널리 다 아는 이야기다.
신덕왕후는 말도 잘 타고 활도 잘 쏘는 무예에 출중한 여걸(女傑)이였다. 그 총명함에 이성계장군이 청혼을 하게 되는 등 태조와 신덕왕후에 얽힌 비사(秘史)와 전설이 많은데 그 중 한편만 소개하고자 한다.
신덕왕후는 향해도 곡산 제일의 갑부(甲富)요 고려조의 고위직인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강윤성(康允成)공의 여식(女息)으로서 강공(康公)은 딸이 성년이 되었기에 훌륭한 배필을 찾고 있던 중 당시 이성계 장군을 만나고 보니 그 인물됨이 일국의 영웅이요 국왕이 될 용모가 출중한 사람이다. 그러나 장군은 이미 고향에 처(妻)가 있고 자식까지 있는 것을 다 알면서도 강공과 부인 그리고 여식이 함께 생각하기를 장군이 후일에 군왕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가상하면 두 번 장가를 든다고 해도 흉이 되지 않는다 하며 가족끼리 의견을 모으고 장군에게 혼인 할 것을 청하였고 장군도 그 미모와 총명한 그의 따님을 보고 흔쾌히 청혼을 하게 되었다.
이성계 장군은 혼인 의식의 절차에 따라 사주(四柱)와 혼서지(婚書紙 평생을 약속하는 글)를 친필로 써서 신부에게 보내어 청혼을 하니 강윤성공은 혼서지와 폐물을 딸에게  보이며 장군의 글씨를 칭찬한다. 그런데 딸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혼서지를 살펴보다가 낯을 붉히면서 이 혼서지는 거짓말을 하였으니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하는지라 그 아버지 강윤성공이 놀라 그 연유를 물으니 혼서지는 일평생을 약속하는 중대한 증서인바 장군은 이미 처자가 있사온데 ...
혼서지의 문구에 본래부터 판에 밝힌 말로 복기장성 미유항려 (僕旣長成 未有抗儷: 본인이 장성하였으나 아직 짝이 없다) 하였으니 이는 거짓말이니 문구를 고쳐 짝이 있으나 어질지 못하여 (雖有抗儷不賢 수유항려불현)이라 써야 합니다. 하고 주장하니 그 아버지 강공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이 총명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까지 영리 할 줄은 몰랐었다. 딸의 말은 옳은 말 이었으나 장군의 초취(初娶)부인 어질지 못하여 다시 재취(再娶) 한다는 말이니 장군께 좀 미안한 말이라고 딸에게 말 하였으나 딸은 “사실을 은폐하여서는 안되며 혼서지에 그렇게 쓰지 않으면 앞으로 당당한 아내의 권리를 주창(主唱)하지 못할뿐더러 자식을 출산하여도 전실 자식들에게 눌려서 행세를 못하고 첩의 자식이 될 것입니다” 하고 단호히 말하였다.
그리고 장군이 거느린 군사들도 혼사를 치른 뒤 같이 떠나라 하십시오. 군사가 다 증인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처녀 아버지 강공이 그대로 전하니 이성계 장군은 비로소 황연히 깨달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총명한 여자요, 장차 큰 몫을 할 사람으로 확신하고 마음속으로 탄복을 하였다. 장군은 즉시 과연 제가 잘못생각을 하였으니 영애(令愛)의 말대로 혼서지를 다시 쓸 것을 약속하고 새로운 종이에 수유항려(雖有抗儷)이나 불현(不賢)하여라고 써서 처녀의 아버지 강공에게 전하였다.
과연 3천군사와 황해(黃海) 감사(監司)등 구름같이 몰려든 축하객들과 3일간 잔치를 치르고 군사를 거느리고 장군은 백마를 타고 신부는 가마에 올라 위풍당당하게 개성(開城:고려의 수도)으로 행하니 만인이 칭찬하고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항해도 곡산 고을이 생기 후 전무후무한 큰 경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