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미래신문
최종편집 : 2022.9.30 14:38
뉴스 피플 기획ㆍ특집 사설ㆍ칼럼 포토 학생ㆍ시민(주부)기자 독자마당
> 뉴스 > 오피니언 > 칼럼
     
백초월 스님을 아시나요?
2014년 06월 13일 (금) 09:46:31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심상정
고성미래신문논설위원
국가보훈처는 ‘이달(6월)의 독립운동가’로 백초월 스님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님의 고향인 고성군 영오면 성곡리 금산부락에 있는 스님의 순국비를 찾았다.
 구국당인영백초월대선사순국비(龜國堂寅榮白初月大禪師殉國碑)라 새겨진 비문은 거북좌대에 용머리를 씌워 최고의 예우를 갖춘 모습이었다.
 모내기에 일손이 바쁜 철이라 그런지 비석 주변에는 잡초가 자라 무성하고, 스님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동네 사람을 만나기도 힘이 들었다. 
 스님은 1878년 2월 17일 경남 고성에서 부친 백하진과 모친 김해 김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수원 백씨 26세손으로 소년 시절인 1891년 지리산 영원사로 출가하였다. 해인사에서 경학과정을 마친 후 교종의 최고 단계인 대교사(大敎師) 법계를 받았다. 선생은 승려 신분으로 30대 초반에 큰스님의 반열에 오른 지식인이었다.
 한용운과 백용성이 3?1운동 민족대표로 인하여 일제에 피체되어 옥에 수감되자, 그들을 대신하여 불교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백초월 스님은 기독교와 천도교 등 여타 종교에서는 3.1운동에 적극 가담한데 반해 불교계가 무관심한 것을 개탄하면서 진관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을 돌며 항일 이념인 일심교를 전파하였다. 특히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인승려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번갯불 번쩍 할 때 바늘귀를 꿰어야 한다."며 독립운동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즉시 가담할 것을 종용하였다.  중앙학림(현 동국대학교)에 한국민단본부를 설치하여 상해 임시정부 및 독립군에게 제공할 자금을 모금하였다.
 또한, 선생은 1919년 단군 건국기념일에 의친왕을 포함한 33인의 서명으로 독립선언서를 반포하고,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3.1운동 1주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되었다.
 악독한 고문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선생은 여러 차례 체포되었으나 미치광이 행세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갔다. 이후 1920년 승려독립선언서와 의용승군제 추진을 통해 불교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편,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만주 침략의 발판으로 삼고자 용산역을 군인 및 군수물자 보급기지로 활용했다. 이에 스님은 전쟁터로 끌려가는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만주행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 격문사건을 주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선생을 비롯한 일심회 회원 등 80여명도 체포되거나 구금되었다.
 선생은 출옥 후에도 군자금 모금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다시 체포되어 청주교도소에 투옥되었고, 1944년 6월 29일에 그렇게도 그리던 독립을 1년 앞두고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는 1990년 스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고성미래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고성미래신문(http://www.gof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 163(2층)  |  대표전화 : 055)672-3811~3  |  팩스 : 055)672-3814  |  사업자번호 612-81-25521
등록번호 : 경남 아 00137(인터넷신문)  |  등록일 : 2011년 4월 7일  |  발행년월일:2011년 4월 20일  |  발행인ㆍ편집인 : 류정열
청소년보호책임자 : 한태웅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 및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2011 고성미래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of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