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암 문학평론가.시사평론가

지난 주말을 이용해 고향을 향해 육중한 몸을 버스에 실었다. 죽은 자의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새해 들어 늦게나마 선조들께 인사하기 위해서였다. 첫 당도지가 30여 년 이상이나 지나 구경할 수 있는 달집태우기 행사였다. 토호들과 감투들이 마음껏 폼을 잡고 지나갔을듯한 시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수도 서울에 살아도 고향을 향한 정서는 항상 도사리고 있음이 현출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익일 남산에 올랐다. 그곳에 가면 학창시절 방학이면 파묻혔던 군립도서관을 맴도는 습관이 있다. 그 시절 그늘을 만들었던 늙은 버찌나무가 사라진 모습에 애석해 한다. 계단을 오르는 찰나, '박목월 시인 탄생 98주기 행사' 알림 현수막이 일손이 달리는지, 아니면 법의 사각지대이면서 자연환경의 조화에 친화적이라 생각하는지 아직도 철거되지 않았었다.
 
 물론 그 꿀단지(지방선거에 의한 권자)에 줄을 서 '그들만의 소왕국'을 만드는데 바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금년이 그의 탄생 '99주기'로 내년이면 '100주기'임이 분명하기에 경북 경주(월성)인의 조롱거리가 될 수 있음에 아연질색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잉태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우여곡절 끝에 탯줄을 끊었을 수도 있으나, 생전에 방문한 적도 없는 듯 한 그가 '내 고향이 낳은 시인이 아니란 사고'에 시비 앞에 서 본 적이 없어도 조금은 연구는 했었다. 필자처럼 조상이 뼈를 묻었거나 훗날 그가 묻힐 땅도 아니었고, 시상(詩想)은커녕 한 점의 시어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언젠가는 그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강연을 할 수도 있겠으나 어설픈 토호 시꾼(屍人) 사체를 만지듯 '내 작가네'고 깁스하면서 시단을 휘젓는 군(群)들의 시샘 때문에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게 뻔하다.
 
익일 선영을 찾았다. 친가는 물론 외가까지 매년 몇 차례 참배를 한다. 그 참배 길에 항상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현장을 본다. 소나무 몇 그루 심어진 곳에 잡초를 베고는 '생명환경의 숲'이란 천하에 둘도 없는 허무맹랑한 팻말에 씁쓸함을 안긴다. 농업과 법학을 떠나 '부동산 및 환경계획학'이란 학문을 접하고도 뇌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집안 형 말마따나 "니도 이곳을 안 벗어났다면 지게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조롱에도 부인할 수 없는 고향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무튼 필자가 태어나고 묻힐 고향은 서울에서 멀긴 멀다. 가끔 지도를 놓고는 "내가 대한민국 최남단인 변방 중의 변방에서 태어나긴 했다"라며 잉태되고,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을 찾는 습관이 상존한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고향의 선량(?)들이 꿀단지를 향한 선거전은 포항제철 용광로만큼이나 뜨거웠다. '출사표'란 시원(始原)이나 아는지, 모르는지 다들 캠프가 정해진 모양새에 방문 요청들이 있어도 외면했다. 그래도 집안과 지인들이 토하고, 서울에서의 여론과 일종의 취재원으로부터 정보는 평소에도 제법 접한다. 그에다가 정치1번지인 여의도 샛강 변에 상주하면서 정치부 기자들과 거의 생활하기에 정치판이 돌아가는지는 아는 편이다. 또한 매체에 정치평론을 하려면 임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필자가 질풍노도와 같이 할 말은 거의 다하고 사는 편인데도 국회의원 예비후보 때 선거전에서 크게 느낀 게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약자였을 때가 '유권자 앞에 선 (예비)후보시절이었다'는 경험칙이다. 뺨을 때릴 자세고 면전에서 홍보용 명함을 갈기갈기 찢어도 꿀 먹은 벙어리 신세나 진배없었다. 그런데도 벌써 당선자처럼 구는 도의원 예비후보도 있었다. 생물인 게 정치라 추풍낙엽 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함이 애석할 정도였다.
 
 더욱더 더러운 주둥아리와 금도(禁道)는 선거 때가 아니라도 예로부터 이렇다. 불구자에게 '병신'이란 조롱과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남의 부부간을 탓하고 개입하는 거라 했거늘. 심지어 상대 캠프 수장의 와병설을 넘어 확인도 안 된 채 '암 걸렸다'는 유언비어였다.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못하고 정치를 떠나 선배에 대한 예우 없이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또 보자. 수시로 논할 수도 있겠지만, 최고 큰 꿀단지의 접근에는 절대 강자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은 여론의 향배가 분명했다. 농군으로 어렵게 향학열을 불태운 신사인 듯한 후보,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듯한 후보, 역대 수장의 더러운 폐해를 고스란히 이어받을 후보 간 3파전에 정치와 우정조차 구분 못하면서 가방끈을 뽐내는 듯한 후보와 야권후보가 추격한다는 게 대체적이었다.
 
 고려 말 길재는 중국 시풍을 이어받기보다는 자주적이었다. 그가 이랬던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온데 간 데 없다"고. 그러나 인걸만 온데 간 데가 없는 게 아니라, 근대화의 물결에 산천도 유구하지 않아 남산에서 바라본 고향은 많이도 변했다. 그런데 유독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어깨들의 혈투와 같은 지방정치 꼬락서니다. 편 가르기에, 돈 자랑에 그것도 모자라 선거철만 되면 무법천지로 변해 관변단체 회원조차도 아니면 민초들이 소외된다는 점이다. 차라리 그 편은 공정사회 구현에 기여하고, 돈은 소외받는 이를 위해 평소 시에 베푸는 게 어떨까. 가방끈이 길면 뭐 하리까. 더구나 시골군수 선거에 가방끈이 길어 그 가치가 퇴색된 슬픈 자화상을 허물고 알량한 감투를 겸허하게 쓰며 함께하는 고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