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역사관이나 삶에 대한 철학이 뚜렷하지도 못한 주제로 훌륭하게 살았던 선생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낼까 하고 두려운 생각도 들지만 선생의 고향 후배로서 존경하는 선배의 위대한 삶을 고향의 후배들에게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선생의 삶에 대한 조그마한 모습이라도 그려볼까 한다.

 제정구 선생의 전반적인 삶을 다른 위인에 비교해 본다면, 김구 선생의 역사의식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선생이 역사를 바라보던 관점은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를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보고, 역사에는 시대(시간)라고 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생명이 시간의 지남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고 변화하는 것처럼, 역사도 인간이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변화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생명은 그 자체가 주체인데 비해, 역사는 생명의 흐름이라고 하였다. 생명을 가진 주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고 달라지듯이 역사도 인간들이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았다.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면, 밀은 가을에 씨앗을 뿌려야 제대로 싹이 트고, 꽁꽁 언 땅에서 겨울 추위를 견뎌야 제대로 된 수확의 결실을 할 수 있다. 물론 봄에 씨앗을 뿌려도 밀의 싹은 트고 자라날 수는 있다. 그러나 봄에 심은 밀은 그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영향을 무시한 생명체는 그 자체로 망가지거나 영원히 소멸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과 생명의 흐름을 보는 눈이 있어야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학자나 역사 선생님으로부터 이미 지나간 수많은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 숨어있는 생명, 그 자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돈과 권력에 굴복한 사람은 돈과 권력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들의 행동과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희망이라고는 기대할 수가 없다. 돈과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 아울러 무한한 희망이 그의 미래를 보장하고 있다. 

 김구 선생은 학벌도 집안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젊은 나이에 동학의 접주 노릇을 하다가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이 나자 먹고살 일이 막막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관상이나 보면서 살아갈 궁리로 열심히 관상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김구 자신이 자신의 관상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이목구비 그 어느 것 하나도 좋은 관상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자신의 고민을 다른 선비에게 하소연 하였더니, 선비는 하나하나로 보면 결코 좋은 관상은 아니지만 전체를 뜯어보면 상서로운 기세가 뻗혀있고, 힘이 가득 차있으며, 큰일을 할 수 있는 관상으로 큰 호랑이처럼 살면 된다고 일러 주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김구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살았기에 민족의 큰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제정구 선생 또한 독재에 항거하다 영어의 신세가 되었어도 조금도 조급해 하거나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하며, 오히려 감옥에서도 개인적인 시간이 돌아오면 요가를 즐기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자세로 살았다는 회고록을 들으면서 추모행사를 뒤로하고 내려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성인군자의 기상이다. 고향에서 참여한 참배객들 중에는 지역발전을 위한 선량 후보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왔다. 누가 이 지역의 현안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더 나은 삶과 희망을 안겨줄 지는 모르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그 누구도 내일을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제정구 선생처럼 역사를 바라보는 바른 눈을 가진 선량이 뽑혀서 내일에 대한 희망이라도 잃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기대해 본다.

 

※ 본고는 제정구 기념 사업회가 발행한 「가짐 없는 큰 자유」「가난살이」를 참고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