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영찬 고성JC특우회 회장

눈밭 언저리 까치밥 한 장 홀로 남은 달력이 불쌍해 보인다. 이룬 것 없이 허망하게 보내버린 12월의 끝자락이 초라하다. 또 다시 굵은 힘줄 모아 2014년을 맞겠다고 맹세하지만, 올해 같은 내년이 될까 두려움이 앞서고, 한해를 채웠지만 나이 말고 내놓을게 아무것도 없다.
 12월이면 그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실타래같이 얽히고설킨 일상에서 하루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간절함이 더한 달이다. 마누라, 두 딸은 데리고 간다지만, 함께 사는 개 한 마리가 문제다. 몇 해 전 지인으로부터 분양받은 작고 뽀얀 개가 앙증맞고 예쁘다. 적어도 한 해 전까지만 해도 예쁘긴 했다. 이젠 계륵 같은 존재다. 똥, 오줌, 털, 뭐하나, 득 되는 게 없다. 개도 이런 맘을 아는지 내 곁은 오지 않는다. 개의 평균 수명이 12년이라고 보면, 현재 5살 정도니까 앞으로 7년을 더 데리고 살아야 한다. 3달에 2번 이발을 하는데 2만 4천이지만 개는 4만 5천이다. “My life as a dog!" ‘개 같은 내 인생’이라는 영화만도 못한 삶이 아닌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총리이며 현인으로 일컫는 안영이 초나라에 사절로 갔다. 초나라 대신들은 키가 작은 안영을 조롱하고자 큰문을 닫고 작은 문으로 들어오라며 “제나라 총리! 그대, 안영은 신장이 작으니 이 문으로도 넉넉히 들어갈 것이요.” 하니. 안영 태연히 웃으며 “그 문에는 사람이 못 다니고 개나 드나들 문이다. 내가 人國에 사절로 왔으면 人門으로 들어가겠지만 구국(拘國)에 사절로 왔으니 拘門으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며 그 문으로 들어가려니 초국대신들이 황망히 큰문을 열고 안영을 맞이하였다 한다.
초국대신들이 개 같은 인생이 될 뻔 한게 아닌가.
 안영이 풍기가 문란한 어떤 고을을 3년간 부임하여 다스렸고 큰 성과를 보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이 왕에게 안영을 헐뜯는 상소가 빗발쳤다. 왕은 안영의 관직을 박탈하려 했기에 안영이 왕께 이르길, “제 잘못이 어디 있는지 압니다. 그러니 3년 만 더 말미를 주십시오. 저를 비방하던 자들이 모두 저를 칭찬하게 될 것입니다.”
 3년 뒤, 아니나 다를까 왕은 안영을 칭찬하는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하며 상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안영은 상을 거부했다. 
처음 3년은, 강철 같은 심정으로 사심 없이 엄격하게 법을 집행함에, 사악한 무리에게 타격을 가하여 깡패 따위들이 원한을 품게 되고, 권세 자들을 두려워 않고 매사 공평무사하게 처리하자 이들이 안영을 원망했으며, 친구들이 이런저런 청탁을 해도 사사로운 정에 매이지 않았다. 그러니 친구마저 원망했으며, 고위층 인사들에게 규정을 벗어난 대우를 하지 않자 그들 불만이 원망으로 왕까지 이른 것이다.
 나중 3년은 그저 물 흘러가듯이 그냥 되는 대로 내버려두면서 대충대충 신경을 썼다. 그랬더니 지난번 욕했던 이들이 모두 칭찬을 한다. 게다가 왕께서 상까지 내리려 한다.
 일의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처음 3년은 상을 받아야 마땅하고 후의 3년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거늘, 우리는 대게 이런 경우를 “개 같은 일이다.”라고 말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