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주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부귀를 누리는 사람이 남을 업신여기느냐,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남을 업신여기느냐”라는 뜻이다. 이렇게 물은 사람은 위나라 위문후(魏文侯)의 태자 격(擊)이였다.
그는 당연히 부귀한 사람이니 남을 업신여길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또 상대도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질문을 받은 전자방(田子方)이란 사람이 말하기를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긴다고 큰 소리쳤던 것이다. 이는 위세가(?世家)를 비롯해 많은 기록에 나와 있는 유명한 이야기다.
  위문후는 전국(戰國) 초기의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에게 몸소 글을 배웠고 도가(道家) 계통의 인물인 전자방을 스승과 친구처럼 대우했다.
위문후는 그가 임금이 된 지 17년 되던 해에 중산(中山)이란 나라를 쳐서 점령하고 본국과 떨어진 곳이라 하여 특히 태자로 그곳을 지키게 했다. 태자는 많은 장병을 거느리고 대신들과 만조백관의 환송을 받으며 대궐을 떠나 임지로 향했다. 그는 도중에서 전자방의 수레와 마주쳤다. 아버지가 존경하는 선비인지라 태자는 자기의 풍모를 보일 겸 먼저 수레에서 내려 길가에 서서 그의 수레가 오기를 기다렸다.
  전자방은 당연히 수레에서 내려 태자의 노고를 차하해야만 했다. 아니, 태자의 그 같은 태도에 황공함을 당연히 느껴야만 마땅했다. 그러나 그냥 지나가 버렸다. 전자방은 임금도 임금으로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만 위문후를 단순한 좋은 친구로 상종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 같은 그의 눈에는 나이 젊은 태자가 어른에게 그 정도의 경의는 보내야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태자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자기가 수레를 탄 채 지나가고 전자방이 수레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는 것이 원칙인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노인과 선비를 대접한다는 뜻에서 크게 양보를 해 보임으로써 상대의 호감을 살 생각이었을 뿐이다.
  너무도 생각 밖의 일에 태자 격(擊)은 모욕감과 함께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전자방의 수레를 멈추게 하고 이렇게 물었다.
  “부귀한 사람이 사람을 업신여깁니까, 아니면 빈천한 사람이 사람을 업신여깁니까(富貴者驕人乎 具貧賤者驕人乎)”
  전자방은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이 “그야 빈천한 사람이 사람을 업신여기지. 제후(諸侯)가 사람을 업신여기면 그 나라를 잃고, 대신이 사람을 업신여기면 그 집이 망하게 된다. 그러나 빈천한 사람은 하는 일이 뜻에 맞지 않고 하는 말을 써 주지 않으면 멀리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태자 격은 다시 말이 없었다. 전자방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고삐를 들었다.
  위문후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전자방을 더욱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부귀가 마음에 없는 선비는 역시 이런 멋으로 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