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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을 죽백에 드리운다’는 말은 ‘이름을 천추에 전한다(名傳千秋)’란 말과 같은 뜻이다.

 죽백은 대나무와 비단이란 말이지만 옛날에는 기록을 대나무쪽이나 비단 폭에 써 두었기 때문에 그것은 곧 기록이란 말이 된다. 그러므로 공명을 죽백에 드리운다는 말은 공을 세워 이름을 역사에 남긴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 등우전(鄧禹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등우는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를 섬긴 어진 신하로서 그는 광무제가 후한 왕조를 새로 이룩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공신이었다. 등우는 소년시절에 장안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유수(劉秀) 뒤에 광무(光武)도 장안으로 와서 공부하고 있었다.

  등우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사람들과 상종하는 일도 별로 없었지만 유수(劉秀)를 만나자 그가 비범(非凡)한 사람이란 것을 알고 친교를 청했다. 이리하여 서로 다정하게 지내다가 몇 해 후 두 사람은 각 각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새로 신(新)이란 나라를 왕망(王莽)의 폭정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도처에서 반기를 들었고 한나라 왕실을 다시 일으키려는 많은 영웅호걸들이 모여들었다. 이리하여 한나라 왕실의 후예로 반란군 대장에 추대된 유현(劉玄)이 왕망을 쳐서 죽이고 갱시장군(更始將軍)에서 다시 황제로 추대되어 장안에 도읍을 정했다. 이 유현(劉玄)이 바로 갱시제(更始帝)였는데 이때 많은 호걸들은 등우를 갱시제에게 천거를 했다. 그러나 등우는 끝내 사양하고 갱시제를 섬기지 않았다. 등우는 갱시제를 하찮은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에 유수가 황하(黃河) 이북 땅을 평정하러 떠났다는 말이 들려오자 등우는 즉시 북으로 황하를 건너가 업(?)이란 곳에서 유수를 만나게 되었다.

  유수는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나게 된 그를 몹시 반갑게는 대했지만 속으로 벼슬을 부탁하러 왔거니 했다. 그러나 며칠을 지나도 그런 눈치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므로 유수는 조용히 멀리 여기까지 자기를 만나러 온 까닭을 물었다. 등우는 분명히 말했다. “다만 명공의 위덕이 사해에 더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는 얼마 안 되는 일이나마 바쳐 공명(功名)을 죽백(竹帛)에 드릴 울 뿐입니다.”

  이 말을 듣자 유수는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등우를 군영에 머무르게 하고 동장군이란 칭호를 주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뜻을 합한 새로운 경영이 시작된 것이다. 그 뒤 두 사람은 왕랑(王郞)의 군사를 토벌하기 시작하여 먼저 낙양(洛陽)을 함락시켰다. 이때 유수는 지도를 펴서 등우에게 보이며 “천하에는 이렇게 많은 고을과 나라들이 있는데, 이제 나는 겨우 그 하나를 손에 넣었을 뿐이요”라고 탄식 했다. 그러자 등우는 “지금 천하가 어지러워 사람들의 고생이 극도에 달한지라 마치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명군(名君)의 출현을 바라고 있습니다. 예부터 천하를 손아귀에 넣는 데는 덕(德)의 후박(厚薄)이 문제였지 영토의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고 말했다.

  유수는 이 말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등우는 언제나 옆에서 이렇게 유수를 격려했다. 또 많은 인재들을 추천했는데 그가 사람을 보는 눈은 조금도 틀리는 데가 없었다.

  그 뒤 오래지 않아 유수는 광무제로서 천자의 위에 올랐는데 거기에는 등우의 힘이 컸다. 그가 말 한대로 광무제의 위덕은 사해에 더하게 되고 등우의 공명은 죽백에 드리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