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을 맞아 해설을 나온 해설사는 밤새 안내 프로그램을 얼마나 익혔던지 유창한 말솜씨와 박학한 유학 실력이 어우러져 듣는 관광객을 송두리째 휘어잡고 있었다. 흔히 관광은 아는 것만큼 느끼고 감동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역사와 유적들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해설사의 언어구사력이 우리 고장에도 저런 해설사가 더러 있었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보기도 했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우리나라에 주자의 학문을 전해준 이 고장 출신인 안향의 사당을 세워 백운동서원이라 불렀던 것을 우리나라 선비의 표상이기도한 퇴계 선생이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으로 가꾸고 다듬어서 학문을 갈고닦고 또 걸출한 선비들을 배출하게 하였다 한다.

영주시에 위치한 동양대학교 최성해 총장은 우리나라 유학의 시원지인 이곳에 동양대학을 설립하면서 인성이 사라져가는 현대교육의 부족한 점을 선비정신과 연계한 인성의 계발을 교육의 지침으로 삼아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는 해설도 곁들어 들려주었다.

선비라는 말은 서양의 신사숙녀나 기사도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신으로 알려져 있고 또 흔히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선비’라는 말이 중국의 한문에서 연유한 말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말로 몽골이나 북방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으며 유교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선시대 이래로 선비는 사대부에 통칭되거나 학덕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여 왔다. 옛날 역사를 추정해보면 선비란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의 화랑도 고려의 선랑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최치원 선생의 난랑비 서문이나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등을 종합해 보면 문무를 겸전한 이상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본 소수서원의 가장 인상 깊었던 정경은 수령 500년쯤 됨직한 은행나무였다. 향교나 서원에서는 은행나무를 행단이라 하여 학문을 연마하는 곳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은행나무의 특징이 자체로 벌레를 방역하는 능력이 있어 벌레들이 달라붙지 않아 학자들이 수행하기에 용이하고 은행 열매 또한 희고 고운 빛깔이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며 기르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곳의 행단은 너무 오래되어 살아있다는 느낌보다는 억지로 버티고 있다는 연민이 드는 것이 서원의 기능이 쇠퇴하여 유풍이 사라지는 요즈음 세태를 아쉬워하는 것이리라.

소수서원을 뒤로하고 봉황산 중턱에 자리한 부석사로 향하였다. 길가에서 팔고 있는 풍기사과의 붉은 빛깔이 너무도 아름답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줄기의 예사롭지 않은 자연이 저렇게 고운 빛깔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다. 부석사의 풍광은 역사적으로 내 노라 하는 예술가들이 이미 덧붙일 수 없을 만큼 찬사를 쏟아내었다.

신라가 아직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기 전에 의상대사가 화엄의 세상을 꿈꾸며 세웠다는 사찰의 역사와 우리 전통한옥의 우수성을 간직한 천년고찰인 배흘림기둥 등이 멀리 소백산의 영봉들과 어우러져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은 글재주 일천한 내 솜씨로 표현할 수 없어 방랑시인 김삿갓의 ‘부석사’ 시로 절경의 느낌을 대신한다.

 

평생 기회가 없어 명승지를 못 보았더니/ 흰머리 늙어막에 안양루에 올랐네

강산은 그림처럼 동남에 펼쳐지고/ 천지는 부평처럼 밤낮으로 떠 있는 것 같구나 

세상만사가 빠른 말처럼 흘러가고/ 우주에 내 한 몸 오리처럼 헤엄친다네 

백년인생 명승지를 얼마나 볼건가만/ 세월은 무정하게 나는 이미 늙었구나

平生未暇踏名區/ 白首今登安養樓/ 江山似畵東南別/ 天地如萍日夜浮 

(안양루는 극락의 뜻, 안양루의 한글 번역을 필자 자의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