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형갑 고성미래신문 지면평가 위원

뜨거운 불씨를 지피던 태양이 내 더운 심장을 태우더니 어느새 가을의 진한 상념은 다가오는 추석과 함께 쏟아지는 모정의 그리움에 묻혀 있습니다. 어머니의 흔적처럼 내 고독한 창가에 생명 깨어지며 구슬피 내리는 가을비는 이놈의 번뇌를 희롱하듯 절규하며 도망치다 내 가슴 속 깊이 젖어, 만고의 우수만을 씹으며 갈가리 찢겨진 가슴으로 고향 밭두렁을 찾습니다. 무겁게고개 숙인 가을은 보고픔의 염원을 묵상합니다. 출퇴근길 오가며 바라보는 밭가에 또렷이 묻어오는 어머님의 모습은 내 서러운 생각을 젖게 하고, 생과 사의 모정의 비정 속에 애통한 삶의 잔인함을 긁어내더니 참을 수 없는 억수 같은 울음을 견뎌내지 못하게 합니다.
덩그렇게 혼자남아 오갈 데 없는 야윈 마음이 밭고랑에 무릎 꿇습니다. 내 남은 보고픔에 불사를 영혼에 다져진 마음의 산은 어머님을 향한 사유(赦宥)의 등불을 밝히며 쓰린 마음을 주물럭거립니다. 살아생전 어머님의 유일한 한 장의 사진을 꺼내놓고 꺼억 꺼억 울음을 삼키다 흐르는 눈물에 소리쳐 불러도 대답이 없고 죽도록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북받치는 서러움을 견딜 수 없게 합니다.

귀밑에 흰 눈이 내리고 얼굴에 거미줄이 늘수록 이젠 내게 젖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사실주의자인 이 자식도 이런 사실이 두렵습니다. 실로 벌거벗은 세월의 여로에서 엉클어진 인생 속에 탕진한 막내의 목마른 부르짖음은 무심한 세월을 태워 양귀비꽃보다 더 붉었고 벼랑의 한 떨기 물망초가 되더니 허망의 삶속에 사래질합니다. 어머니! 죄 많은 불효자가 쓰린 가슴속에서 흐르는 절절한 눈물을 씹어 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자식이 차마 괴롭고 힘들 땐 어머니를 찾는 자식을 어여삐 안아주시던 어머님이 이젠 곁에서 뵐 수 없다니 망망대해에 홀로된 우둔한 마음이사 지천명을 넘어 알았습니다. 제 마음을 알아주시던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내 어머니! 세월가면 가실 줄 알았지만 작별인사도 못하고 보내셨으니 어찌 막내의 통곡소리가 구천인들 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 불효자가 애를 먹인 탓인지 아직도 귓전에 생생히 들리는`갑아!`하는 목소리, 포근한 어머님의 숨결, 따사로운 손길이 밭고랑 곳곳에서 배어나옵니다. 그런데 이제 제사상에서나 뵐 수 있다니 불효자는 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님 육신이 땅속에 묻히던 날, 그날은 땀방울 삼베적삼에 눈물이 범벅되어 오장육부와 뼈 속까지 비통함에 나뒹굴었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아버님처럼 차마? 왜? 이 막내를 못 보시고 눈을 감으셨습니까? 이별의 슬픔을 감추시려고 몰래 가셨습니까? 아니면 누가 임종을 지키려는 막내와의 연락을 두려워했습니까? 아니면 그 무슨 말 못할 사연이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한줌의 흙을 덮어드리고 등이 떠밀려 비애의 눈물로 오열을 삼키며 흔들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은 영원히 막내 곁을 떠나셨습니다. 권세도 명예도 아기자기함도 새털 끝 하나 없는 가난한 仁同張氏 종가집안 맏며느리로 어린나이 가마타고 시집오신 우리 어머니, 가난과 싸우시며 3남1녀의 뒷바라지와 그렇게 약주를 좋아하시던 홀시아버지 밑에 평생을 바치시고, 이제 자식의 효성으로 행복을 누리실 때가 되었건만,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자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삶의 앎을 주시고 기어이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생전에 불효자식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공허한 소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후회스런 일들이 아련히 겹쳐지면서 묻어둔 내 가슴의 핏물이 솟구칩니다. 막내의 걱정에 병까지 얻으신 처절한 모습, 그나마 이젠 세상 어디에서도 어머님의 큰 손길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자나 깨나 막내가 염려스러워 한시름 놓지 못하신 어머님의 마음, 생전에 헤아리지 못한 이 자식은 마다한 공부의 후회와 보고픔에 가슴팍에서 포탄이 터집니다. 무심치 못할 이 세속 어설픈 몸뚱이 하나에 매달려 어둠을 뱉어내며 살아가는 이 자식도, 어머니 없는 세상이 너무나 질긴 그리움의 씨름으로 느껴집니다. 한평생 고생 속에서 가난을 금같이 먹고사신 가련한 어머니, 살아생전 서울 한번, 여행 한번 못가보신 어머니! 고집스러운 생활력으로 새벽 일찍 논밭으로 한 뼘의 땅이라도 곡식을 심고자 하신 어머님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중학교 때 고성장날이면 리어카에 참외랑 수박이랑 온갖 채소들을 가득 싣고 월평리에서 구 시장 둥구나무 아래 권 약국 앞까지, 어머님은 앞에서 끌고 제가 뒤에서 밀며 정동말띠고개를 넘어가던 날들이 그땐 그렇게 친구들보기 부끄러웠지만, 지금, 지금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그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오늘의 가을비는 정거장 없는 막내의 울부짖음으로 어머님과 불효자의 못다 핀 애탄의 서글픔을 저~흰 옷자락 가을비에 닿게 하였습니다. 어머니! 이 막내 비록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세월 앞에 섰어도 부서져 아픈 것들이야 운명으로 고이 접어두고 이제 어머님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제가 팔베개 해드리며 모시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막내의 얼룩진 마음을 천상에서나마 굽이 살피시고, 이승에서 못다 이루신 복록을 저승에서나마 극락왕생 누리시길 간절히 빕니다. 못난 자식들 걱정일랑 이제 놓으시고 어머님은 어머님의 철학대로 저승에서나마 어머님의 소원대로 찾아 가소서. 어머니와 불효자의 이별은 무상의 인생사에서 언제나 상존하는 것, 쓰린 날을 접어 겹겹이 동여매고 언덕바지 산길에 남은 내 정신을 불태웠습니다. 그 푸름 금간 가슴 어루만지며 우수를 새김질하는 가을비에, 내 가슴 속에 그님만을 붙잡고 아픔으로 살아간다고 상서 띄우며, 가을비야말로 숙연히 머리 숙이는 불효자의 눈물이며 어머니의 가슴 진액이라고 구멍 난 내 유년을 보듬어 지천명을 때린다. 부끄러움이 한껏 밀려와 고개가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