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고성미래신문 논설위원

구만면 주평리 깃대봉에 올라 구만 들판의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성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고을이 화촌이라고 전해오는 옛말이 더욱 실감이 난다.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싸여 동서남북 그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수려한 산수가 그지없이 아름답다. 적석산의 높은 봉우리가 동녘에 해가 떠오르듯 높이 솟아있고 필봉에서 해 떨어지는 낙조의 모습이야 이 고을의 절경으로 그 어느 고장의 모습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 아름다운 고장에 조선 초기 대학자요 덕망이 높아 조정에서 추앙을 받던 묵재 노필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산수에 풍류를 즐기면서 후학들을 기르면서 유유자적 살아가고 있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묵재 선생은 여생을 보낼 자리를 찾아 고심하다가 고향인 구만면 깃대봉 자락에 자리한 맑은 샘물을 마시고 너럭바위에 올라가 잠이 들었다가 어떤 신령이 나타나 그곳이 그대가 찾아 헤매던 명당이라고 알려주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구만의 넓은 들판을 둘러싼 산봉우리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가. 동으로 적석산 뾰족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 새벽에 일출의 모습을 하며 솟아있고 서쪽으로 필봉이며 사방 그 어느 쪽으로 둘러보아도  우뚝 솟은 산세가 예사롭지 않음을 보고 여기에서 인재를 양성하면 특출한 인물이 나와 이 고을을 전국에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며 후진을 길러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바위 위에 정자를 지어 취석정이라 이름하였다.  
취석정에서 활터도 만들어 호연지기를 기르기도 했는데 영남지방에서 좋은 활터로 이름이 나 많은 궁수들이 이곳을 찾아 궁도로 심신을 단련하기는 물론 궁술대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취석정 바위 밑에서 솟아오르는 옹달샘은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질 정도의 극심한 한발에도 일 년 내내 샘물이 줄어들거나 불어나지도 않았다 한다. 뿐만 아니라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냉수가 솟아나 활시위를 당긴 후 목이 말라 샘물을 마시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취석정에서 시를 지을 때도 샘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시상이 끝없이 펼쳐지고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글이 나왔다고 한다. 하여 이렇게 영험을 주는 샘을 마을 사람들은 주천(술샘)이라 하였고 은근히 취한 듯 취석정에 올라 풍류를 즐기며 유유자적하였다. 취석정 옆에는 묵재 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어른 다섯 아름이나 되는 큰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베어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그 자리에 밑둥치가 어른 두 아름이나 되는 은행나무가 옛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듯하다. 또 이 옹달샘에는 귀가 돋힌 큰 메기가 살았는데 이 메기가 사람의 눈에 보이면 나라에 큰 이변이 일어난다고 하며 8.15 해방과 6.25때에 나타났다고 한다. 언젠가 주민들이 양수기를 동원하여 물을 퍼 샘을 청소 했을 때 귀가 돋힌 뱀장어 몇 마리가 나타나 옛날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 했다고 한다.
취석정이 있는 주평마을은 적석산 준령을 경계로 회화면과 창원시 진전면과 접하고 있으며 소태산(깃대봉 437m)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로 효락리와 경계를 하고 있는 마을로 산록과 마을 앞에 형성된 들판은 경지정리가 된 비옥한 토질로 농산물의 생산이 풍부한 마을이다.
노필 선생(1464∼1532)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요 초명은 조동이고 자는 공서 호는 묵재로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문인이다. 처음부터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김종직의 문하에서 김굉필과 함께 학문에만 전념하며 안우·유호인·강흔 등과 교유하였다. 중종이 거듭되는 천재지변으로 뛰어난 선비를 천거하도록 각 도 관찰사에게 명하자 학행이 뛰어난 인물로 1508년과 1510년 두 차례에 걸쳐 천거되기도 하였다. 경상도관찰사 김안국은 우의가 돈독하고 불순함이 없으며 고인의 법에 따라 행동하고, 유림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선생을 천거하여 과거를 거치지 않고 특채되었다. 그리하여 내섬시주부·장흥고령·지평을 거쳐, 1519년 공조좌랑을 역임한 뒤, 경상도도사로 재직 중 기묘사화가 일어나 김안국의 일파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그 뒤 풀려나 고향인 취석정에 터를 잡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1538년(중종 33)에 신원되어 직첩을 환급받았다. 이 마을의 출신으로 이조판서가 되어 이름을 떨친 박덕순은 취석정이 배출한 인재로 알려져 있다. 현재 초계의 송원서원(松原書院)과 고성의 갈천서원(葛川書院)에 제향되었으며 고성의 3현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