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상 정 고성미래신문 논설워원

캄캄한 속에서 빛이 나온다. 닫쳐진 것이기에 열릴 것이다. 천지개벽 설화를 실지로 보는 듯하다. 신비만의 세계 하나가 문득 거기 넙흐러져 있구나! '거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직각으로 저 늪을 형언하기 위하여 생긴 말임은 의심이 없을 것이다.

1926년 동아일보가 일제에 짓밟힌 민족의 정기를 되찾고자 최남선을 백두산에 파견하여 백두산 천지에 대한 감동을 적은 ‘백두산근참기’에 남긴 글이다.

필자가 백두산에 올라 그 신비하고 황홀한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하고 고심하다가 비로소 민족의 영산에 대한 감격을 실제의 체험으로 이해하고 옮겨 적어 보았다. 2744ｍ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망무제의 산야가 끝없이 펼쳐지는 모습이며, 9.17 ㎢의 너른 호수에 깊이 384ｍ의 푸르고 맑게 보이는 천지호수 속에는 신룡이 들어 있다고도 함이 우연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하늘 못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백두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가슴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행사에서 단체관광으로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백두산의 변화무쌍한 날씨 탓으로 천지의 신비한 모습을 제대로 보고 온 사람들이 드물다. 천지가 제 모습을 다 드러내는 날이 연중 27일밖에 안된다고 하니 예사로 준비했다가는 허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필자는 단번에 정상에 올라 깨끗하고 신비한 정경을 볼 수 있었으니 정말로 운이 좋았다.

지난 7월 28일 백두산관광을 희망하던 친구 4명이 모여 김해공항에서 오후 4시에 위해시로 가 우리 일행을 안내해줄 가이드를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연태공항으로 이동하여 연길로 가는 비행기를 가라타고 자정이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쉴 수 있었다. 연길은 조선족자치구로 우리가 흔히 연변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연길에서 버스로 4시간 30분을 달려 백두산에 도착하였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이름하고 관광지를 조성하여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휴가철을 맞아 관광지는 더욱 붐비고 백두산을 정상을 오르는 셔틀버스 승강장은 무슨 전쟁터를 연상하는 것 같았다. 하루에 입장하는 관광객이 3만 명이 넘는다고 하며 정상으로 오르는 봉고차가 줄잡아 200대가 넘었다. 수면고도 2257ｍ의 천지의 물이 줄어들지 않고 지하 깊은 곳으로부터 샘물이 솟아나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천지연을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는 중국 관광객을 보면서 우리 땅을 되찾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북한의 관광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고 북한을 드나드는 외국인들은 평양을 거쳐 육로로 가면 3박4일, 백두산 기슭의 삼지연 공항으로 직행하면 1박2일로도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한데 비행기도, 자동차도 없던 조선시대에 백두산을 관광했다면 어떠했을까?

박권(1658~1715)이 쓴 <북정일기>를 보면 3월24일 한양을 출발하여 7월13일 돌아오기까지 여정이 자세히 보인다. 청나라에서 조선과 청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자, 접반사로 임명된 박권이 두만강변까지가 청나라 사신과 함께 백두산을 답사한 것이다. 한성우윤으로 있던 박권의 여행기는 조선 양반의 여정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말을 타기도 하고, 때로는 가마를 타고 가는데 하인 수십 명이 나무를 베어 산길을 내고 다리를 놓기도 한다. 철원·함흥·북청·삼수 등 그가 지나는 고을마다 수령들이 인사를 오고 저녁에는 기생이 낀 잔치가 열린다.

그런데 정작 백두산을 눈앞에 두고 ‘연로한 조선 양반이 험한 산길을 가겠느냐’는 청나라 사신의 만류에, 접반사 박권과 함경감사 이선부는 산에 오르기를 포기했다. 역관과 하인들만 청나라 사신 일행과 동행한다. 이때 국경 획정을 잘못함으로써 우리 땅을 빼앗기고 국경분쟁의 실마리를 남긴 여행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함경도 경성의 유학자 박종의 <백두산유록>은 특히 눈길을 끈다. 1764년 경성부사 신상권 일행과 백두산을 등산했는데, 위험하다는 여러 만류를 뿌리치고 산정에 올라 감격하는 열정이 보인다. 5월14일 경성을 출발해 돌아온 6월2일까지 왕복 거리가 1322리요, 걸린 날짜는 18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북한은 6.25 한국전쟁 참전을 계기로 조중협상에서 천지의 1/3을 중국에 양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넙흐러져, 너그러이: 마음이 넓고 감싸 받아들이는 성질이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