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수 / 전 도의원

6월 27일 아침 8시20분에 고성을 출발한 버스는 전남 순천 곡성을 거쳐 필암서원으로 향하였다. 주변 풍광은 성하의 녹음이 울창한 가운데 온 대지가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느끼면서 간간히 펼치진 농경지의 잘 가꾸어진 작물이 올 가을의 풍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광주지역의 들판에는 옥수수를 많이 재배하여 우리 고장과는 차별화된 작부체계로 소득을 향상시키려는 농부의 노력이 역력하였다.

한편 달리는 차안에서는 이인성씨가 조선시대 관료제도에 대한 좌담을 벌여 첩지, 교지, 품계 등의 설명이 있었다. 11시경 필암서원에 도착하여 현지 관계자의 안내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서원 직강을 맡고 있는 박래호씨의 집례해설로 하서선생 영전에 분향하였다. 다시 강당에 모여 직강으로부터 선생의 사상과 철학 필암서원 운영에 대하여 산앙회보를 중심으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서선생은 조선 문묘에 배향된 동방 18현 가운데 도학(道學) 문장(文章) 절의(節義)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치우침이 없어 정조 대왕으로부터 동방의 주자요 호남의 수사(洙泗 공자와 맹자의 별칭)라고 추양을 받아 왔으며 그의 사상적 핵심은 “인륜 내면성의 본질을 극진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종 37년 홍문관 박사 겸 세자 사강원 설서(設書) 및 경연전경, 경연 검토관 등을 겸직하면서 군주를 어떻게 성군으로 만들어 이상적 도덕정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전통적인 유교의 이상 정치론을 표본으로 도덕을 강조하였다.
하서가 군주자신의 치심수기((治心修己)를 강조하는 궁극적 목적은 현실정치를 개선하려는데 있었다. 즉 현실정치에서 노출되는 수많은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었다.
하서가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군주는 능숙한 권모술수를 사용하기 보다는 도덕적 차원에서 물리적 힘보다는 객관적인 도덕률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명한 인재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백성의 생활을 보호하는 겸손한 위정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필암서원은 연중 개방하여 학자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하서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공직자, 기업인, 교직자 등 각급 단체 및 개인들의 참배와 강독이 일상화 되어있는 서원 본래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 서원중의 참 서원임을 보았고 우리 고성에 산재해 있는 여러 서원도 연중 제사 한번 지내고 일년내내 문 닫아 두지 말고 우리 실정에 맞는 활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필암서원을 뒤로 하고 인근 식당에서 막걸리 반주에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광주광역시 광산동에 위치한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선생의 유적이 있는 월봉서원(月峯書院)으로 이동하였다. 월봉서원은  1979년에 전남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서원임에도 해설자가 없어 아쉬웠다. 고봉 선생은 박학하여 31세때 주자문록(朱子文錄) 4권을 저작함으로써 유학에 새로운 이론을 개척하였고,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이기일원설비판(理氣一元說批判) 격물설(格物設) 등을 주장하였다. 특히 사단 칠정론을 퇴계선생과 8년간에 걸친 논쟁으로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라는 학맥까지 형성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선생의 저서 논사록(論思錄)에서 군왕의 통칙기준은 어디까지나 백성에게 있고 이의 실효를 거두려면 군주의 통치권 분산을 주창하여 용현론(用賢論) 내지 대신론(大臣論)을 주장하였다. 구중궁궐의 군왕 혼자서는 수만 가지 정사를 다 볼 수 없으니 현사(賢士)에게 각각 실권과 책임을 분담하여 공리국사(共理國史)가 불변의 원칙이라 주장 하였으며 이는 1인 독재 내지 전제를 방지 하려는 뜻이기도 하였다.

민심을 반영하기 위하여 언로를 개방하고 균민(均民)정치로 백성의 부유화를 주장하며 군주자신이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무거운 세금을 경감시킴으로써 재용의 혜택이 백성각자에게 골고루 돌아가 대동사회라 할 수 있는 복지사회 실현을 역설하였으니 선생의 경세관은 근대민주정치와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고봉서원 탐방을 마치고 담양군에 있는 소쇄원(瀟灑園)으로 이동하여 조선중기 원림과 선비들의 풍류와 낭만을 체험하였다. 소쇄원은 호남 사림의 교류처였으며 송순, 임억령, 김인후, 김윤제, 고경명, 정철 등이 정치 학문을 논하던 생산적 휴식처였다. 제월당과 광풍각이 있었는데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며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고, 광풍각은 손님의 사랑방이었다. 협곡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사방에 죽림, 교목, 관목, 화초류의 인공 혼효림이 우거진 정원에 간간이 스쳐가는 시원한 바람은 7월에 찾아온 나그네에게 신선이 된 느낌을 주는 듯하였다. 소쇄원은 담양군청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칠십 중반의 해설사로부터 제월당 내벽에 걸려있는 하서 김인후 선생의 소쇄48영의 노래를 중심으로 해박하고 상세한 해설에 일행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기도 했다. 

 소쇄원 탐방을 마치고 죽록원을 둘러 순천 선암사를 탐방하였다. 주차장에서 내려 아름드리 가로수가 우거진 숲길을 지나 한참이나 지나 일주문에 닿았다. 일주문에는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혜(莫存知慧) 라고 쓴 주련을 볼 수 있었다. ‘이 문에 들어오면 안다고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겸손하라는 뜻으로 불가에서도 유가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 없구나 생각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겸양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선암사를 둘러보고 난 뒤 김외곤 부부가 준비한 떡과 식혜로 즐거웠던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고성으로 돌아오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차타고 길나서면 가무음주에 흠뻑 취해 어디를 갔다 왔는지 무엇을 보았는지도 모르고 시간만 허비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 이회서당 하계수련회는 생명력이 꿈틀대는 싱그러운 녹음과 아름다운 산수경관을 감상하고 가는 곳마다 배우는 즐거움이 있어 멋진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