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균 고성문화언 향토사연구원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던 것 같다. 이웃에 혼자 살던 사침이 영감이라는 노인이 죽었다.
목이 남달리 길어서 구부정한 자세에 황새영감이라는 별명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 불쌍한 노인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 아이들이랑 함께 상여를 따라 지금의 내산리 사적지 서쪽에 위치한 공유산(공동묘지)에 구경 갔다가 돌아올 때는 유난히 노을이 고운 저녁이었다.
나는 35호분 방천에 무릎을 안고 앉아서 저녁노을에 반해 있었는데 그 때 막 황새 한 마리가 동쪽에서 서쪽노을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평소의 그 모든 고통을 유연한 날개짓으로 훨훨 털어버리며 석양을 향하여 날아가던 황새, (황새영감) 차츰차츰 작아지다가 마침내는 한 점이 되어 가물대다가 사라졌다. 그 때부터 나는 석양과 죽음을 동일시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죽음에 대해서는 나이 어려서부터 자주 생각했던 것 같다. 인간은 왜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나도 죽을 수밖엔 없는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과연 저승은 있단 말인가. 있다면 이승의 부모형제는 다시 그런 인연이 되고 친구들은 또 친구가 되며 친척은 친척이 되는가.
죄 지은 자는 지옥에 간다던데 정말 그럴까. 옆자리 급우 연필 훔친 일, 학우사 문방구 과자 훔친 일..
나는 지옥가고 말겠구나. 결국 나도 죽을 수 밖에는 도리 없고 그 뒤는 아무도 모른다는 결론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모든 이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만이 가득 남는 것이었다.

오늘도 나는 석양을 바라보다가 문득 소가야 인들을 생각해본다. 내산리 사적지 주변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신라나 백제의 경계선도 넘어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겠지.
간혹 전장에서 돌아온 그들의 자식이나 형제, 또는 지아비로부터 저 너머 먼 곳엔 백제가 있고 고구려가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멀리 해가 져서 묻히는 땅이 있다고 여겼으리라. 죽음을 예감한 코끼리가 그들의 공동묘지를 찾아가듯 영혼이 찾아가야 할 저승을 그 쪽에 두었으리라.

인간은 십장생에도 못 든다. 생명을 거두어가는 그 절대한 힘은 무엇인가. 무릇 인간이 죽음 앞에서 스스로의 무력함에 한없이 절망하고 한탄한다. 인간이 밤을 두려워하는 것도 주검의 세계이기 때문이리라. 하긴 달도 별도 있지만 그것은 모두 살아있는 빛이 아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없었다면 무속신앙이나 그 뒤를 이은 각종 종교가 발생했을까.
고분이나 유물을 대하면서 수없이 많은 부장품들을 보게 된다. 규모에 있어서의 거대함이나 많은 부장품들은 무엇을 얘기하여 주는가. 그것은 그들이 믿었던 내생에 대한 철저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현생보다 내생에 더 큰 비중을 두었기에 장례야말로 거창한 행사 중의 행사였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