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형갑 고성미래신문 지면평가위원

자기는 지는 해라고 말한 어느 사무관의 말을 되뇌다,
군수는 서산에 붉은 노을·석양?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지는 해는 더욱 찬연한 빛을 발해 황홀하기까지 하다. 은은한 노을빛 속에 3선 군수의 타 오르는 남은 의지(意志)를 구상할 수 있는 이번 7월의 인사는, 퇴임하는 서기관 진급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여명(餘命)을 비춰줄 참모는 어느 자리에 누가? 라는 기대 속에 군민들의 특별한 관심이 집중된다. 오죽하면 군수가 ‘청탁자는 불이익’을 준다는 발언까지 했을까. 좁은 지역이라 이 사람 저 사람 다 아는 사람이요. 저쪽 사람에게는 그동안 서운하게 한 일은 없을까.
군수도 사람이다 보니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공정한 집무에 만감이 교차하겠다. 사실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이나 기득권 세력은 존재하기 마련이라 ‘청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사회,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정도의 차이가 심하지만, 누구나 일정수준의 기득권 세력이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타인을 배제한, 나만 살겠다는 안면몰수의 의식이면에는, 사적인 유대감의 결속이 사회적 엘리트의 지위를 보장하고, 힘을 가지게 할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존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직설하면, 내가 속한 인적네트워크집단의 결속이 어떤 통로로든 사회적 지위 상승을 가져 올 것이라는 기대로 인하여, 울타리 밖의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는 비사회적인 심성을 가지고 그러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적인 유대감이 공고해진 까닭은 무엇일까?
제일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인사권자를 ‘선거’를 통해 선출했기에 공신들이 있을 것이고, 다음으로 인사 과정에서 ‘청탁’이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에 있다. 굳이 경쟁을 하지 않더라도 청탁인과 피청탁인 사이의 사적인 유대감을 통해, 한 자리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오가는 것이 청탁이다. ‘청탁’은 어느새 관습화된 공고한 사회적 현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청탁은 이러한 사적인 유대 결속의 연장이며 결과라기보다는, 청탁 자체가 근절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의 만연이 사적인 유대감의 사회화를 허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청탁’이 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당위적이고 도덕적인 주장이라 할지라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필요한 위치에 적합한 인력이 투입되는 것이 원칙인줄 알면서도, 규정을 무시하고 빠른 샛길을 찾는 것이다.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아는 사람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부언하는, 어느 잘난 사업가 친구의 논리는 변명에 불과하다.
개인이 아는 범위는 아무리 데이터베이스가 광범위하게 짜여 있다 한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평가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주관적인 처사의 근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그 누구도 청탁의 고리를 끊기 힘들 것이다. 관습이 제도처럼 굳어져 있는데 그 제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 누가 인사권을 행사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시 기존의 권력엘리트를 모두 사회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다시 판을 짜고 새로운 규제 정책을 시행한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라면 가능할지도? 그래서 개혁이 혁명보다 힘들다는 말이 있다. 필부는 가방끈이 짧지만 자주 만나는 서울대 출신 친구들이 많다. 이들과 언젠가 우리사회의 논란이 되었던 서울대 폐지론을 얘기해본 일이 있다. 많은 대학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고위 관직과 학계를 독점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현상이라고 비난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서울대에 들어가야 하며, 벤처 기업·엿장수를 하더라도 서울대 출신이면 프리미엄이 있다는 식의 생각에 심정적으로라도 공감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한 문제의식이 서울대라는 존재 자체의 부정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치자.

그러나 서울대가 폐지된다고 해도 또 다른 서울대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오! 이었다. 오직 내가 아는 사람만이, 나와 친숙한 이만이 나의 주변에 있어야 한다는, 공사(公私)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의식(意識)이 있다면 서울대 아니라 그와 유사한 특권조직을 없애더라도, 그 결과는 재탕에 재탕을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양산할 뿐이다. 외부로부터 우리의 울타리를 지키고 내 밥그릇을 챙긴다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외풍을 많이 타는 나라에서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당연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태생적 이유를 근거로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타인을 배척하고 공동의 적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결국은 이기적으로 울타리만을 고수하겠다는 요상한 동어 반복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학자들의 책을 읽다보면, 현재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전 근대인이 많다. 근대적인 의식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근대적 의식을 한 마디로 규정할 지식은 부족하지만, 적어도 나와 남을 합리적으로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을 포함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 친구가, 나의 가족이, 나의 동창과 선후배들이 나를 위해 특권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영원히 우리를 전근대에 머물게 할 것이다〈사적인 친분은 사적인 것에 머물고 공적인 영역으로까지 이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결국 유식을 빙자한 필부의 결론은, 군수의 7월「인사 청탁자 불이익」발표를 바라보면서, 우리군민들이 가장 근본적으로 생각해야할 것은, 우리에게 지방자치의 주인으로서 사회의식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는 막연한 의미의 공동체가 아니다. 한 지방자치단체의 유지를 위해서는 특권계층의 생존만 보장되어서는 안 된다.『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가며, 사회가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공존』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12년을 갈무리하여 힘차게 타오를 여명은 구름에 가릴 것이며, 공정한 탕평인사에 대한 소신조차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모두가 공사(公私)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식이 확립된 연후에야, 황야에 홀로선 석양의 군수는, 가슴에 뜨거운 불씨를 지피고, 행복한 내일을 위한 고성전진프로젝트를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군수귀하! 악마처럼 달려드는 ‘청탁’을 절규하듯 뿌리치려는 소신(所信)에 존경을 보낸다. 모든 일이 순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폐단이 적어질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면, 그 다음의 작업은 더 이상 신 고성건설이라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