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균 고서운화원 향토사연구원

내가 처음 고분 발굴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꼭 10년 전이었다.
이맘때이었던가. 낮이면 숲속에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저녁이면 아직 모내기가 한창인 들녘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귀 따가울 정도로 요란한 쯤이였다. 창원문화재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고분발굴조사에 호기심 삼아 무작정 반장 자격으로 동네 어르신 및 선배들을 대동하고 따라나섰다.
그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적어도 그 때 당시의 생각에는 그랬었다. 고리장(高麗葬)(?)을 파고 깨어진 토기조각을 솔로 털어내고 그것도 부족하여 이번에는 각 방향으로 트렌치를 형성하여 화판위에 지질 문양을 그리는 연구원들의 지시에 따라 바둑판무늬처럼 벽면에 못을 박아 하얀 실을 옭아매었다. 그러한 일련의 작업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에서 직접 무덤 속을 넘나들며 비로 쓸고 호미로 긁고 연구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니 무언가 가슴 한 구석에 섬뜩 닿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조상들과 내가 연결 될 수 있는 숨결이었다.
토기의 파편들을 주어모아 이리도 대보고 저리도 맞추어 보면서 하나의 완전한 모습으로 되찾았을 때는 이미 나 자신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그곳엔 다만 선인의 맥박만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도면으로 옮기는 조희경 선생은 구석구석에서 앞서간 분들의 치밀함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하루해가 석양에 넘어가면 학예연구원과 같이 동네 식당에서 소주한 잔 곁들이며 흘러간 유행가를 구성지게 불러보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가을에 고분 36호 발굴을 하면서는 끈기를 배울 수가 있었다.
한 겹 또 한 겹 마치 시루떡을 벗겨내듯 매몰토를 제거하며 점점 유적층에 다가갔다. 그러나 쉽사리 유구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지표로부터도 꽤 깊게 내려왔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천둥번개와 억수 같은 소낙비가 쏟아졌다. 학예연구원들과 같이 수백 킬로그램의 천막을 치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제는 흘러 들어오는 물과 싸워야만 했다. 진흙탕에 물통과 싸워야했다. 같이 작업하는 선배님들도 나의 지시에 불평 없이 따라주었다. 옷은 흙과 뒤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나와 주어야 할 유구는 소식이 없었다. 매일같이 같은 일이 반복되니 지겨워졌다. 쉬는 날이 그리워졌다. ‘제발 비 좀 왔으면..’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늘을 본다. 나의 지시를 받는 선배들은 고분발굴 전문경력을 갖고 있었다. 십 수 년씩 되는 전문발굴 인력자들이라 학예연구원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궁금한 나머지 이곳저곳에 트렌치를 형성하라고 지시하면 땅의 형질을 보고 쓸데없는 곳은 왜 파느냐고 도리어 화를 내는 선배들을 설득시켜 작업을 시작하면 연구원들은 나에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서리가 내리고 첫눈이 하얗게 내린지도 오래였다.
초가을의 얇은 옷은 두꺼운 털외투로 바뀌고 발굴현장에 부는 찬바람은 유난히도 매서워 털모자를 눌러쓰도록 만들었다.
혹시 유적이 이미 파괴되고 남아 있지 않는 것일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결국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에 의해 주곽, 부각은 전부 훼손되고 많지 않는 유물이 발굴될 때에는 적지않은 실망도 했다. 얼마만인가 몇 번이나 의심하던 유구가 발굴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중도에서 그만두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며칠 뒤 박종익 실장이 현장에 와서 칭찬을 했다. 연말이(망년회) 며칠 남지 않았다. 조희경 연구원의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학예사 몇 분과 같이 경북안동까지 조문을 다녀왔다.

또 한해가 지나 뻐꾸기 울 때 나는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고성군문화재 특별관리인이 되었다. 고성군 문화관광체육과 문화재담당 채수천 주사를 도와 내산리 고분군 매입 및 보상문제에 주민들과 행정기관 협의 주선과 사적지내 묘지개장 업무에 앞장서 각 성씨 문중에 사적지 보존에 관한 협조를 당부했다. 하지만 천오백년 전의 소가야 부족장 및 왕의 무덤이라는 설이 난무한 명당 중의 명당이다 보니 주민들이 도통 말을 듣지 않아 설날이나 추석에는 채수천 주사와 함께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산소를 찾아오는 참배객을 만나기 위해 명절을 들판에서 보내기 일수였다. 노력한 결과에 내산리 사적지 매입 업무는 약 98%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계약직이 해체되고 사적지 관리자는 없어지고 말았다. 항간에는 군비도 아니고 문화재청 예산으로 특별관리인 급여를 지불하는 줄 알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문제는 원주민들이 들판에 농작물을 재배하려고 훼손을 시키는데도 아무도 감시를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만약 전문 도굴꾼이 마음먹고 도굴을 하면 땅 속에 묻힌 유물은 다시 돌아올 수 없고 몇 천 년 고이 간직되어온 선조의 손길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랜 동안 쌓여온 세월은 어떠한 댓가를 치루더라도 보상되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7일 영산강 유적 나주 옹관고분을 우리 향토사연구소 회원들이 답사했다. 이미 발굴된 고분을 미화작업하여 아름답게 단장하고 400억의 예산으로 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는 나주시 문화관광과 학예사 겸 문화재 계장의 해설은 27년 동안 문화재계를 지켜 오늘의 나주시 반남고분군, 복암리 고분군을 영산강 고대 문화의 중심지답게 정비 사업을 이뤄낸 걸 자랑스럽게 힘찬 목소리로 해설을 하고 있다.
올 봄 내산리 사적지 주변은 온통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여 멀리서 바라보면 짙푸른 녹음 속에 사적지가 둥둥 떠 있어 마치 천상의 궁전같은 모습이다. 탐방길 가운데 논에는 잎넓은 풀잎에 빗물이 고여 있다. 빗물위에 꽃잎이 사뿐히 떨어져 앉아 천 오백년 전 연꽃이 지금에 이르러 다시 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겨울이면 찬바람만 머물다 가곤 하던 파고라(팔각정 정자) 동산에도 봄과 더불어 관람객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이제 좀 있으면 매미울음소리가 천 오백년 전 소가야 조상님의 옛 문화를 다시 펼쳐보라고 울어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