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은 일찍부터 우리 민속에서 인내와 지혜의 화신으로, 민속신앙의 업신, 당신으로 인간의 숭배와 질시를 함께 받으면서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2013년 계사년 설날을 맞이하여 뱀에 얽힌 민속을 간단하게 개관해 보고자 한다.
 계사는 육십갑자 중에 을사, 신사, 정사와 함께 뱀띠해이다. 뱀은 십이지의 여섯 번째로 동양의 역서(책력)에 따르면 부처님이 입적하기 직전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찾아갔던 12가지 동물가운데 여섯 번째에 해당한다. 뱀(巳)자는 중국의 자전인 설문에 의하면 또아리 뱀의 형상으로 일어나는 기운을 의미한다.
 뱀은 시각으로는 오전 10시이며 방향으로는 동남방을 이르며 달(月)로는 음력 사월에 해당한다.

 ▲ 설화속의 뱀
 뱀과 관련된 설화는 옛날부터 많이 구비전승 되고 있고, 삼국유사 등 기록에도 여러 가지 뱀 이야기가 실려 있어 뱀에 대한 민의 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 민담에는 상사뱀이나 뱀 신랑 이야기들이 많이 구전된다. 상사뱀 이야기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젊은 중을 사모하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처녀가 있었다. 이 여자가 죽어서 상사뱀이 되어 그 중을 계속 따라 다녔다. 중이 피해 다니다가 범종 안에 숨었는데 뱀이 그것을 알고 범종을 칭칭 감았다가 한참 후에 풀고 사라졌다. 나중에 보니 그 중이 녹아서 물이 되어 버렸다. 이 이야기에서 뱀이 얼마나 집념이 강하고 끈질기며 억척스러운가를 알 수 있다.
 다음은 충남 부여에서 채록된 뱀신랑 이야기이다. 자식없는 할머니가 자식얻기를 빌어서 뱀아들을 낳았다. 이웃의 부잣집 셋째 딸이 그를 보고 와서 칭찬한다. 뱀아들이 그 딸에게 구혼하여 결혼을 한다. 혼인을 하자 신랑은 허물을 벗고 잘생긴 선비가 되었다. 그 후 과거를 보러가면서 허물을 태우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언니들이 질투하여 허물을 태워 그 신랑은 못돌아 오게 된다. 이에 셋째 딸은 중이 되어 신랑을 찾아 떠나서 지하국까지 도착한다. 거기서 뱀 신랑과 셋째 딸이 상봉해 다시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조를 보면 혁거세가 죽은 지 7일만에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져서 국인들이 화장 합장하고자 하니 큰 뱀이 쫓아와 방해해서 결국 흩어진 유체를 각기 장사지내고 오능 또는 사능이라고 했다. 또 수로왕의 이야기에서도 도적으로부터 무덤을 지키는 뱀이 나온다.
48대 경문대왕조에는 왕의 침전에 저녁마다 무수한 뱀이 모여들어 궁인들이 놀라 쫓으려 하니 왕이 뱀이 없으면 편안히 잘 수 없으니 쫓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매양 왕이 잘 때에는 뱀이 왕을 덮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후백재 견훤조에 구렁이와 교접한 처녀가 견훤을 낳았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에서 보면 뱀은 사자의 수호자이며 수호신의 구실을 하고 있고 견훤 설화에서처럼 뱀과 관련되어 태어난 사람은 귀인이나 신이라는 민의 관념을 엿볼 수 있다.

 ▲ 민속신앙속의 뱀
 흔히 눈에 띄는 동물 중에서 평상시에도 신격을 지니고 민간에서 가장 신앙되고 있는 것은 뱀신이다.
 민속신앙에서는 업, 지킴이, 또는 집구렁이라 하여 가옥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면서 집을 지키는 것이 뱀이라고 믿고 있다. 집안에서 이 집뱀이 사람의 눈에 띄거나, 밖으로 나가면 가정의 운수와 가옥의 수명이 다 된 것으로 믿는다.
 지역에 따라 업, 업위신으로 지칭되는 뱀신은 재물신으로 가재와 가복을 주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뱀은 마을의 큰 고목에도 있다고 믿으며 큰 연목, 바위나 산속에도 있다고 보는 지신적 성격을 지닌 동물이다.
 제주도에서는 뱀은 사신이며 재신이라는 관념이 지금까지 일반 민간에서 내려오고 있으며 무속 속에서도 비중을 차지해 칠성본풀이에서도 뱀 신앙을 살필 수 있다.
 제주도 표선면 토산리의 ‘토산당’은 본향단으로 뱀신을 당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 당의 뱀심을 잘 모시는 가정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여러 가지 영험담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당의 채통을 이어온 집안에서는 그 집의 뒤뜰 같은 곳에 조그만 주젱이(엉뚜께 주저리)이나, 아니면 기왓장 따위로 굴속 모양의 뱀신 집을 만들어놓고 ‘칠성눌’이니 또는 ‘뒷할망’이니 해서 제를 지내고 뱀신을 위하고 있다.
 서사무가인 칠성본풀이에는 절에 불공을 드려서 낳은 귀 한 집 외동딸이 중의 자식을 잉태해 돌함에 담겨 버려졌는데 이것이 제주도에 표착, 그 딸이 뱀으로 변해 일곱딸 뱀을 낳았고 막내딸은 부군칠성(밭칠성), 어머니는 고팡(곳간)의 쌀독에 들어가 안칠성이 되었다는 무가의 사설이 있다. 이 칠성을 모신 집은 매년 철갈이라는 고사를 지내고 기제사 때에도 제물을 올린다.
 뱀신의 다른 일면은 뱀이 배척당하고 피하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뱀을 잔인하게 죽였을 때 그 뱀이 죽은 후 뱀(巳)신이 되어 반드시 복수하는 귀사(뱀귀신)의 성격을 띤 것으로 생각된다.
 또 불교에서 애욕과 유혹의 화신으로, 기독교에서는 금단의 열매를 따 먹게 한 유혹의 사탄으로 배척한다.
 우리 정월 민속에 첫 뱀날에는 머리를 빗거나 머리카락을 불에 태우지 않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집안에 뱀이 들어온다는 속신이 있다. 또 상사일에는 빨래를 하지 않고 바느질도 하지 않으며 땔나무도 옮겨 놓지 않는다. 뱀이 많은 전남지방에서는 상기일에 뱀을 예방하기 위해서 뱀 입춘문을 써 붙인다. 뱀구멍에 연기를 불어넣는 뱀지기를 하기도 하며 긴 나무 끝에 머리카락이나 솜뭉치를 달아매고 불을 붙여 뱀구멍에 대면 그 연기가 구멍에 들어가서 뱀이 나오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뱀은 민간요법에서 약용으로 쓰인다. 약용으로 쓰는 뱀은 주로 살모사, 능사, 칠점사, 독사, 독뱀 등이 있다. 뱀은 정력강장작용을 하고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하강작용이 있으며 일체의 허약성 체질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이처럼 뱀은 각기 차원이 다른 두 가지 측면으로 신앙된다.
 그 일면은 지신, 죽은 사람의 영혼, 가신, 명부의 수호신 다산의 상징으로 숭배되고 또 다른 일면은 원귀로서 두렵고 징그러운 존재로서 인가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배척하는 민속이 있다.

 ▲ 민속예술에 표현된 뱀
 그림이나 조각 공예품 등 민속예술에서는 뱀을 찾기가 힘들다. 이것은 아마 예술 소재로 뱀이 적합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덤의 수호신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와 신라토기, 민속극에 가끔 뱀이 고구려 고분 삼실총의 세 번째 방 동벽과 남벽에는 뱀을 목에 건 장사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장사도에는 뱀이 힘센 장사의 목을 감고 팽팽하게 힘을 뻗치고 있는 모양이고 교사도 그림은 뱀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얽혀 있는 형상이다. 이 두 벽화에서 뱀은 무덤의 수호신 구실을 한다. 그 외에 고구려 천왕지신총의 지신도에서도 뱀을 찾아볼 수 있다.
 뱀은 1년에 한 번 새끼를 낳는데 한 번에 백여 마리를 부화하는 다산성이다. 무덤에 넣은 신라토기에 다산의 상징으로 죽은 목숨을 재생케 하는 힘을 지닌 존재로 생각되는 뱀이 조각되어 있다.
 이 뱀이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모습이 토우에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민속 인형극 꼭두각시 놀음의 첫째마당 박첨지의 넷째거리가 ‘이시미’거리다. 이 이시미가 뱀처럼 생긴 추상적 동물로서 머리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몸뚱이에는 긴 자루를 달고 울긋불긋한 비늘이 그려져 있다. 입을 벌리면 입 안에 붉은 혀가 있다. 가상적 존재인 야유의 영노나 하회별신굿의 주지처럼 이시미도 뱀의 형상을 하고 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뱀은 아주 깨끗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지혜로운 동물이기도 한 반면에 징그럽고 사악한 동물로 가능한 한 멀리하고 꺼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민속에도 뱀에 관한 인식은 양면성을 지니고 거기에 관한 풍속이 전해오고 있다.
 우리 민속에서 뱀은 죽은 사람의 원귀. 명부의 수호신, 간교한 지혜와 애욕, 다산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민속신앙에선 업신, 당신으로 모셔지며, 민속예술의 주제 민간요법의 중요한 약재로 쓰인다. 반면에 징그러운 요물로서 배척당하는 상사일의 풍속도 있다.
 뱀은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똑바로 전진할 뿐이다. 기민하고 슬기롭게 상황판단을 잘하는 뱀처럼 뱀해인 계사년에도 모든 이가 자기 발전과 혁신의 한 해가 되기를 빌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