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풍속에는 매년 2월 8일부터 2월 15일까지 누구를 막론하고 흥륜사(興輪寺)에 모여서 복회(福會:탑을 에워싸고 돌며 염불을 외우는 것)를 하고 있었다.
 원성왕(元聖王) 1년(서기 785년)에 김현이라고 하는 사나이가 있었는데 이 분도 흥륜사에서 탑을 돌고 있는데 어느 듯 밤이 깊어 삼경(三更)이 되어 탑돌이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어떤 절세미인의 고운 처녀 한 사람이 염불을 외우며 탑을 돌고 있었다. 젊은 남녀가 그만 탑을 돌다 말고 둘이 좋은 사이가 되고 말았다.
 마침내 김현은 처녀가 사양하는 것도 듣지 않고 처녀를 그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 처녀의 집은 외딴 서산(西山)기슭에 있었다. 그 집에는 늙은 어머니 비슷한 노파가 있을 뿐인데 김현을 눈치 채여 보며 같이 뫼시고 온 분은 누구냐 하며 묻는다. 처녀도 더 숨길 수 없음인지 김현과의 지내온 이야기를 하니 노파는 좋은 일이였지만은 그렇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러나 이왕지사를 어떠하랴 지금 세 사람 너 오빠가 돌아올 터이니 보았다가는 큰일이 날 터이다 하며 김현을 한쪽 방구석에 감추어주는 것이었다. 한참 지나 문 밖에서 범(호랑이) 세 마리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 시킨다. 김현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으니 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며 마침내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사람의 말소리로 변하는 것이었다.

 노파는 말하기를 “너희들이 공연한 인간의 생명을 몹시 해하였음으로 하늘에서 벌을 주겠다고 하더라” 하고 말하니 범들은 고개가 수그러진다. 노파는 다시 말을 이어 그의 딸인 처녀 호랑이를 보고 다음과 같이 지시 하였다.
 “셋 오라버니 범이 이 땅을 떠나 회계한다면 그 천벌을 내가 받겠노라” 하니 범들은 좋아서 머리를 끄덕이고 꼬리를 흔들며 어디로인지 가버렸다.
 이때 처녀는 우연한 인연으로 김현을 보고 당신의 사랑하심을 입었사오나 사실인즉 “첩은 사람이 아니옵니다. 그러하오나 하룻밤이라 하올 지라도 정든 당신이오니 면면(綿綿)한 한(恨)을 풀 길이 없습니다. 지금 셋 오빠의 죄는 하늘이 미워하시는 지라 우리 일가의 앙화(仰禍)는 첩이 당할 각오가 되어 있사옵고 언젠가 한번은 사람의 손에 잡힐 몸이오니 원컨대 랑군(郞君)의 칼에 죽어 그 높으신 은의(恩義)를 갚고자 하옵니다. 첩은 내일 사람이 모인 거리에 가서 사람을 해 할 터 이옵고 이로 인하여 국가에서는 벼슬로써 상주어 범잡이를 할 터이니 그때 랑군은 서슴치 마시고 첩을 쫓아 성북(珹北) 숲 사이에 오시면 첩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현(金現)은 “사람에게는 사람다운 길이 있다 벼슬이나 탐이 나서 그대의 죽음을 판다고 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이것만은 그만 두기로 하오” 하니 처녀호랑이는 “낭군의 정은 뼈 사이에 잠긴 듯 하오나 지금 첩은 천명이 다 되었사오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은 낭군의 경사(慶事)인 동시에 첩의 일족(一族)의 복이요, 이 나라 사람들의 기쁨이올시다. 첩 한 몸이 죽음으로써 다섯 이익(利益)이 있을 것이오. 첩은 벌써 굳은 결심이 있사오니 원컨대 첩이 죽은 뒤 절이나 하나 세워주시면 낭군의 은혜를 못 잊겠습니다.”

 이렇게 주고 받고 마침내 울면서 이별 하였는데 과연 그 이튿날 성안에 맹호(猛虎) 한 마리가 나타나 요동치고 있으나 누구하나 감히 잡을 생각을 하는 자가 없었다. 원성왕인 임금은 범을 잡는 사람에게는 작이급(爵二級)의 벼슬을 주겠다고 선포(宣布)하였다. 김현은 직시 응모(應募)하였다. 왕(王)은 김현의 용기(勇氣)를 칭찬하여 벼슬(嫂爵)을 내렸다. 김현은 단검(短劍)을 가지고 어젯밤 약속한 숲속에 들어가니 과연 범은 어젯밤 여자로 변하여 좋아하며 현의 손을 붙잡고 “어젯밤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오셔서 이 세상에 미련은 조금도 없습니다. 오늘 첩의 발톱에 상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 부상자에게는 흥륜사의 장(醬)을 바르고 또 그 절의 라발(螺鉢)소리를 들으면 나을 것입니다.” 하고 유언을 하자마자 현의 단검을 빼어서 스스로 목을 베고 넘어졌다. 지금까지의 고운 여자는 한 마리의 범으로 화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또 상처 난 사람들도 그 유언대로 하니 그 상처가 말끔히 나았다. 지금도 그 방문(方文)을 쓰고 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김현은 서천(西川)옆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호원사(虎願寺)라 하였고 김현은 항상 호원사 범망경(梵網經)을 읽었으며 그 후 김현은 임종시(臨終時)에 자식들에게 호원사 보호에 정성을 다하라 하였다. 이 호원사는 지금도 보전하고 있다. 과연 이와 같은 사건(事件)이 있었다는 것은 현대인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