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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발달 (분청사기)
고성문화원 향토사연구원 황선균
2013년 01월 04일 (금) 11:58:00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분청사기는 14세기 후반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16세기까지 만들어진 그릇을 말한다.
 분청사기란 분장한 회청색의 사기라는 뜻인 분장회청사기를 줄인 말이며 분청이라는 약칭을 쓰기도 한다.
 분장회청사기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미술사연구의 시조인 고유섭 선생이 삼오라는 일본인들이 붙인 명칭에 반대하여 1940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회청색의 사기질그릇의 표면에 백토를 입힌 것이 분청사기다.
 조선시대 초기 사람들은 분청을 의도적으로 만든것이 아니며 이 분청사기는 고려왕조의 운명과 함께 쇠잔해버린 청자가 새왕조의 새문화 기운을 타고 새환경에 적응하는 건강한 아름다움으로 변신한 것이다.
 즉, 고려말기의 기형, 문양, 유색, 태토 등 조잡하고 흐트러진 상태의 상감청자가 조선왕조로 넘어와 신생국가의 참신한 기운과 유교적 사회 기풍을 타고 새롭게 정제되고 변모된 것이다.
 유색은 회색이 기본이며 그 위에 약간의 청색이 감돌고 있는 회흙색이 많고, 기형은 대담한 곡선의 변화를 주는 것이 있어 흥미롭다.
 이 분청은 결국 고려 상감청자의 조선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분청은 청자와 백자의 사이에 있는 것이다.

 ▲ 제작시기(시대상황)
 분청사기의 제작시기는 그 시작이 고려말의 쇠퇴한 청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초기인 15,16세기에 그 전성기를 맞게 되고 하한은 임진왜란에 두고 있다.
 초기의 분청사기는 태토와 유약에 있어서 말기의 상감청자와 같아서 불순물이 많이 포함되어 짙은 쥐색을 띠며, 그 위에 녹색 또는 갈색, 탁한 회청색 등의 짙고 어두운 색조의 유약이 입혀져 있다.
 그러나 세종때부터 안정기에 들어서 점차 유약과 태토에 불순물이 많이 제거된 상태가 된다.
 분청의 최절정기는 15세기 전반으로 이때 중국 명백자가 수입되는 한편 세조, 성종년간으로 들어가면 백자 관요가 경기도 광주에 생기면서 중앙에서 필요로 하는 그릇은 백자로만 조달받게 된다. 따라서 각 지방에 흩어져 있던 300여개소의 분청사기 생산은 약화되어 가고 17세기에 들어가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백자화 되어간다.

▲ 분장기법(특징)
 분청사기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은 분장기법과 문양이다. 분장기법이란 회색 혹은 회흑색의 태토로 그릇을 만든 후에 정선된 백토로 표면을 씌우는 것을 말하며 분장방법에 따라서 각각 문양의 효과가 달리 나타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종류로 분류된다.
 ○ 상감분청
 고려청자 상감기법의 연속으로 음각 문양선 안에 백토나 적토를 넣고 번조하면 백색과 흑색으로 문양이 나타난다.
 ○ 인화분청
 시문하고자 하는 무늬의 도장을 만들어 그릇 표면에다 찍어 무늬를 낸 후 움푹 패인 곳에 백토를 메꾸어 넣는 기법이다.
 ○ 박지분청
 그릇 전체에 귀얄로 백토를 바르고 시문하고자 하는 문양을 그린 후 문양 외에 배경을 긁어내면, 문양의 백색과 배경의 회색이 드러나 백색과 회색의 대비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박지기법이라 한다. 이 기법은 세종 때 이미 세련되었으며, 활달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란, 모란당초, 인화, 인화당초 등의 문양은 그 당시 사람들의 훌륭한 기량을 보여준다.

 ○ 선화분청
 백토를 바르고 문양(고기, 말, 꽃) 등을 선각으로써 나타내는 것이며 박지수법(조각)의 또 하나의 각화라고 할 수 있고 실제로 박지와 선화가 같이 병용되고 있다.
 ○ 철회분청
 백토를 바르고 그 위에 자토(붉은 흙)로 추상적인 초화문, 어문 등을 그린 것이며 결국은 자토상감을 붓으로 한 것이라고 하겠다. 선화에서도 그렇지만 이 철회문들은 상상을 벗어나는 현대감각의 추상으로 그 경지는 민화와 통하는 독창적인 세계라고 하겠다.
 ○ 백토분청
 아무장식없이 백토만을 바른 것이며 여기에는 ‘덤벙’이라 해서 굽을 잡고 백토니(질퍽한 백토물)속에 거꾸로 덤벙 담갔다가 들어내 그릇의 아랫부분에만 청자색이 남아있는 형식과 귀얄(붓 또는 솔)에 백토를 묻혀 단길에 칠해버린 형식의 작품이 있는데 전자는 전자대로 멋이 있고, 후자는 그 자유분방한 붓자국이 멋있어서 유명하다.
 이와 같이 분청사기의 분장기법을 살펴보았는데 이중 상감, 박지분청은 세종년간에 발달하였으며, 인화분청은 세조년간에 절정기를 맞았다. 그리고 철회, 덤벙, 귀얄분청은 성종년간에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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