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오 코레아 그는 누구인가?
 루벤스가 그린 ‘한복입은 남자’가 화제를 모은 것은 83년 12월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이 작품이 선을 보이면서였다. 10호 크기의 이 그림은 짙은 회색의 초크로 그린 소묘화로 양쪽 광대뼈 부근에 엷은 붉은 색깔을 칠했다. 도대체 이 작품을 어떻게 루벤스가 그렸을까. 작품의 주인공인 한복입은 남자는 누구일까. 현재 작품이 소장된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말리브에 있는 J. 폴 켓티박물관으로 83년 당시 32만 4천파운드(6억8천만원 상당)에 팔렸다. 드로잉 작품만을 진열하고 있는 코너에 ‘한복입은 남자’에 대한 수수께끼는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채 선비타입의 주인공은 여전히 낯선 이국의 박물관에서 두고 온 조국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이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알기 위해 우선 ‘한복입은 남자’가 누구인가를 규명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품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때 노예로 이태리로 팔려간 코레아라는 한국인이다. 서구 제국주의 침략이 극성을 부리던 16세기 말엽 일본의 나가사키에는 세계 각처에서 몰려든 노예상인과 선교사들로 항상 붐볐다. 서구의 노예상인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영화 ‘미션’을 다시 기억해 보기로 하자. ‘미션’은 이베리아 반도의 한 노예상인이 사제가 되어 오히려 그가 사고 팔았던 원주민을 위해 순교한다는 내용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고 파는, 그래서 가장 인간답지 못한 노예상인이 회개해서 사제가 된 후 자신이 세운 원주민 교회의 신자를 말살하려는 정치집단과 앞서서 싸우다가 끝내는 순교하는 ‘미션’은 선교와 제국주의 침략이 공존하는 식민주의 시대의 강대국 비리를 잘 담았다. 이곳에 등장하는 사제는 예수회 소속으로 임진왜란 때 소서행장을 따라왔던 종군신부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가 속한 교파이다. 이 시기에 이태리에서 온 프란체스코, 카를렛티는 그의 아버지 안토니오 카를렛티와 함께 1597년 5월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다.

 최근 일본에서 발간된 카를렛티의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그 해는 정유재란이 일어나 수많은 조선 백성들이 일본에 끌려 왔을 때였다. 마침 카를렛티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서인도 제도와 남미를 거쳐 필리핀에 상륙했다가 나가사키로 온 것이다. 카를렛티 부자는 일본에서 10개월동안 머물면서 침략전쟁으로 들끊던 일본을 구경하고 조선땅에서 끌려온 남녀와 어린이들을 구경한다. 카를렛티는 동방견문록에서 임진왜란을 ‘풍신수길은 매우 평화적이고 자기자신을 자극한 바 없는 외국 조선을 파괴하고 그 희생 위에 있다. 일본에서의 자기패권을 확립하기 위한 침략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객관적인 평가는 임진왜란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고와는 그 도를 달리한다. 나가사키에서 카를렛티는 유럽의 시세에 비해서 20분의 1가격에 불과한 조선소년 5명을 12스큐를 주고 산다.(최근 임진왜란을 노예를 얻기 위한 침략이라는 학설이 대두되고 있음)
 카를렛티 부자는 조선소년들을 데리고 1598년 3월 마카오로 향발, 이듬 해 12월 인도의 고아에 도착한다. 당시 고아는 포르투칼식민지로 노예시장이 번창했고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대낮에도 매춘부가 득실거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이 곳에서 카를렛티의 아버지는 객사를 하고 만다. 아버지를 잃은 카를렛티는 한국소년 4명을 버리고 한 사람만을 데리고 이태리로 떠난다. 1601년 인도 고아를 떠난 카를렛티와 한국소년은 남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섬에 들렸다가 스페인-네덜란드 전쟁을 만나 네덜란드배에 억류를 당해 1년 동안 구류생활을 한다. 카를렛티의 고향인 이태리의 피렌체에 도착한 것은 1607년 7월 일본을 떠난 지 8년만이었다.
 카를렛티는 조선소년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안토니오라로 했고 성은 한국의 이름인 코레아라고 했다. 카를렛티는 조선사람을 최초로 유럽에 이주시킨 장본인이다.

 코레아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1561년 시베리아가 만든 세계지도에는 한반도의 위치를 중국의 밑에 반도모양의 돌출부를 그려놓고 그 끝에 섬을 그리고 그 곳을 코레도라고 표기했다. 그 뒤에는 코레아도, 코라이로 표기되거나 심지어는 ‘이리아스데코레’라고 해서 조선을 섬으로 본 것 같다. 코레아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밖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조선사람들과 종군신부로 조선에 왔던 세스페데스 신부 등의 보고서에 의해서였다.
 역사를 기술하는 데는 객관적인 사료가 필요하다. 더구나 임진왜란 때 붙잡혀간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은 세계각국의 노예로 팔려가고 일부는 일본에서 천주교 신자가 되어 순교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행적은 임진왜란 연구에 도움이 된다. 한 줄의 역사적 기록이 아쉬운 현 시점에서 16세기 말 동방에 왔던 한 유럽 노예상인의 글은 그런 뜻에서 매우 신빙성있는 사료가 된다.
 피렌체에 도착한 조선인 안토니오에 대한 기록은 ‘안토니오는 지금 로마에 체재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자유인이 된 안토니오는 추측컨대 피렌체에 머물러 있다가 로마로 내려간 것이다. 피렌체는 그 옛날의 노예시장이 있었고 르네상스가 꽃피웠던 도시이다. 아르노 강변에 자리한 피렌체는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로서 기원전 2백년경 에트루스키족에 의해 세워진 이래로 12, 13세기에 이르러서는 동방무역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같은 저력 밑에서 메디치 가문의 등장을 만나 피렌체는 본 고장이 되었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의 3대 천재를 비롯해 단테, 페트라르카, 복카치오, 마키아벨리 등을 낳게 된다. 안토니오 코레아가 피렌체에 도착하자 아마 이태리 사람들은 이 기이한 옷차림의 동양인에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고 화가들은 미지의 동양인을 모델로 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 모든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이태리 유학의 꿈을 지녔던 피터 폴 루벤스(1577~1640)가 피렌체에 유학을 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루벤스는 1600년경 이태리에 머물면서 베네치아, 로마 등지에서 고대 미술과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한다.

 특히 이태리의 바로크 화가인 M. 카라바지오와 카라치파의 영향을 받는다. 루벤스보다 6년 늦게 피렌체에 도착한 조선인 안토니오가 루벤스의 모델이 된 것은 결코 비약이 아니라 당연하다.
 23세때 이태리에서 와서 가장 왕성하게 공부를 한 8년 동안은 루벤스의 생애를 결정하는 중대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루벤스가 안토니오 코레아를 만난 것은 실로 동과 서의 만남이었고 안토니오는 최초로 유럽에 건너간 최초의 조선인인 셈이다. 이에 대해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편 최초로 구라파를 순방한 조선인으로는 역시 임진왜란 중 일본으로 잡혀갔던 본명 미상의 한 소년이 있다. 임진왜란 중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다수의 조선인 가운데는 독실한 천주교도가 많이 생기게 되었는데 때마침 세계를 일주하고 있던 이탈리아 전도사 카를렛티는 일본에서 조선인 포로 소년 5인을 노예로 사서 세례를 준 뒤 1598년(선조 31년) 일본을 떠나 그 중의 4인을 인도 고아에서 석방하고 1인만을 1606년(선조 39년)에 프로렌스로 데려가니 이 소년은 그 뒤 로마에 살아 그 곳에서 교무에 종사하여 안토니오 코레아로 불렸다.
 인생역전이라더니 이 기구한 운명의 안토니오 코레아는 루벤스의 작품 ‘한복입은 남자’로 변하고 미국박물관에 소장됐다. 궁금한 것은 그 뒤의 안토니오 코레아의 소식이다.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이름은 이태리로 건너간 한국소년만이 가진 이름이 아니고 임진왜란 때 종군신부 세스페데스의 보고서에서도 등장한다. 즉, ‘1622년 9월 2일 안토니오 코레아(A-ntonio de corea)는 자기 아내 마리아와 열 두 살난 아들 요한과 세 살짜리 베드로가 눈앞에서 목을 잘리는 모습을 목격한 다음 화형을 당했다.’고 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