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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눈이 멀어 제국을 망가트린 여후
논설위원 심상정
2012년 11월 16일 (금) 11:29:32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한고조(유방)의 황후인 여후의 자는 아후 이름은 치(BC 241~ 180) 산양 출생 여씨라고도 한다. 이다. 고조가 죽은 후 어린 아들 혜제(BC 195~188 재위)가 제위에 오르자, 권력의 야망을 품은 그녀는 황족들을 무시하고 외척을 주요자리에 앉혀 자신의 위치를 강화했다. 혜제가 죽자, 그녀는 다른 아들을 제위에 앉혔다. 그러나 어린 황제가 자신의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하자, 그를 감옥에 가두고 또 다른 아들을 황제로 임명했다. 그녀가 죽은 뒤, 외척을 위주로 했던 그녀의 정책은 고위 대신들의 연합세력에 의해 무너졌고, 그녀에게 불만을 품었던 황족의 왕자들은 외척들을 몰살시켰다. 고조의 직계 친족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고조의 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문제가 제위를 계승했다.
 여후는 유방을 도와 패업을 달성하고, 유방이 황제가 된 후 황후로 봉해졌다. 하지만 이때부터 여후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미 나이가 들어 자색이 사라지니, 정치적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유방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후궁에 있는 수많은 미녀들 가운데서 유방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후궁은 젊고 아름다운 척부인이었다. 유방은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고, 그녀는 유방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녔다. 얼마후, 척부인이 아들 유여의까지 낳자 황제의 총애는 극을 달했다.
 한때 장자인 유영을 태자에서 폐위 시키고, 유여의를 태자로 책봉하려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후가 여러 대신들의 반대를 이끌어 내, 어쩔 수 없이 생각을 거두었던 것이다. 여후는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면서, 마음속에 증오심을 불태웠고, 척부인에게 복수 할 기회만을 엿보았다.
 
 한고조 12년(기원전 195년) 4월, 유방이 병사하자 태자 유영이 황위를 계승해 혜제가 되었고, 여후는 황태후가 되었다. 그리하여 전권을 장악한 여후는 이제 척부인에게 복수할 때가 왔다고 여기고, 곧 척부인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댔다.
 5월에 유방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여후는 기다렸다는 듯이 척부인을 체포하여 머리를 온통 깎고 칼을 채웠으며, 붉은 죄수복을 입혀 궁녀를 가두는 감옥에 가두고, 온종일 쌀을 찧게 했다. 옥중에 갇힌 척부인은 멀리 조나라 왕으로 가 있는 아들 여의를 생각하며 애끓는 눈물을 한 없이 흘렸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이렇게 한탄 했다.
 “아들은 왕인데, 어미는 죄인이 되어 온종일 쌀을 찧고 죽음과 벗하네! 하지만 삼천리나 떨어져 있으니 어미의 처지를 어이 알까.”
 여후는 척부인의 통곡 소리를 듣고 더욱 화를 내며
 “네가 정녕 아들에 기대어 살려고 하는 게냐?”
 라고 호통을 쳤고, 유여의를 없애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후는 세 차례나 사람을 보내 여의를 장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여의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여후는 포기하지 않고 척부인의 필체를 위조해 거짓 편지를 써서 여의에게 보냈다. 이제 갓 열세 살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던 여의는 곧장 장안으로 달려왔는데, 혜제가 여후의 속내를 알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이복 아우가 모후의 손에 죽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가 없어, 장안으로 돌아오는 여의를 마중나가, 친히 궁으로 데려와 자신과 함께 기거하도록 했다. 그러자 여후도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혜제 원년(기원전 194년) 12월 초하루, 혜제가 일찍 일어나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간 사이 여의가 늦게 일어났는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여후가 이 틈에 사람을 보내 여의를 독살하였다. 혜제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여의가 죽은 지 몇 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여후는 또 가장 잔인한 수단으로 척부인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척부인의 두 귀를 불로 지지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였으며, 두 눈을 파내고 사지를 잘라 변소에 버렸다. 몸둥이가 돼지우리에 버려진 척부인은 온종일 분뇨 속에서 뒹굴며 고통에 신음했다. 여후는 또 척부인에게 거의 변태적일 정도의 심리적인 보복을 가했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오랫동안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증오와 질투심을 일시에 폭발시킨 것이다. 여후는 척부인 모자를 동정하는 혜제를 데려다가 척부인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혜제는 이미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된 척부인을 보고 비통하게 통곡하더니, 곧 몸져누워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혜제는 사람을 시켜 여후에게
 “이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며, 소자는 태후의 아들로서 다시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나이다.”
 라고 전하게 했다.
 몇 년 후, 혜제는 매일 술에 취해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그 자신마저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6년 후 갓 24세였던 혜제가 세상을 떠났으니, 여후는 자신의 정적을 잔혹하게 죽였을 뿐 아니라, 간적접으로는 자기가 낳은 아들까지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진나라의 시골에서 태어나 부엌데기나 시켜달라고 시집왔던 여씨가 유방을 도와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겨 한나라의 황후가 되었으나 여인의 질투와 권력에 집착하여 씻을 수 없는 역사를 만들고 말았다.
이 여후의 전형으로 인해 한신ㆍ장량ㆍ소하 등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공신들이 숙청되거나 한나라를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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