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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혁림
정해룡 시인의 칼럼 '돈자모티'(돌아 앉은 모퉁이)
2011년 05월 30일 (월) 09:33:11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호수보다 더 호수 같은 통영 앞바다에 닻을 내린 배처럼 떠 있는 ‘미륵도’. 이 미륵섬의 정중앙에는 어머니 젖가슴처럼 무수한 예인(藝人)과 문학인들을 잉태하고 길러낸 미륵산이 봉긋이 솟아나 있다.

그 산자락 남향 볕바른 봉평동에는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전혁림’의 숨결이 뜨거운 작업·전시공간이 청적백(靑赤白)의 색채가 아름다운 조화로 세워지면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통영시 봉평동 1892, 270여평 대지에 3층 건물로 자리잡은 ‘전혁림 미술관’은 미륵산 용화사 광장으로 거의 다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 자리잡고 있다.

5월 24일 이 미술관의 주인이었던 전혁림 화백이 돌아가신지 1주기를 맞아 그의 미술관 맞은편에 그가 작품활동 틈틈이 휴식을 취하던 수령이 몇 백년을 훌쩍 넘긴 당산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를 기리는 화비(畵碑)제막식이 있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나는 화비 건립을 축하하는 ‘축시’를 낭송했지만 시인을 기리는 시비(詩碑)는 많이 봐왔으나 화비는 생경했었기에 관심이 많았다.

누구에게나 각자 좋아하는 화가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중에서 프랑스의 위대한 화가 ‘르느와르’와 순 우리네 토종 화가 전혁림을 좋아한다. 둘다 극한의 인간적 고통을 이겨낸 불멸의 정신 때문이다.

‘르느와르’는 빛의 화가다. 따뜻한 색감, 화려한 색상, 여유와 평화, 모든 것을 감싸 안은 빛, 이러한 대상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행복’이란 교향곡을 화폭에 연주하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풍겨주는 그의 그림들에 비해 정작 그는 불치의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려 휠체어 없이는 거동조차 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에 시달린다.

그런 그의 곁을 지키던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타자의 행복으로 승화시킨 그는 분명 위대한 화가다.

‘전혁림’은 누구인가? 그는 색채의 화가다. 그가 그저 그런 평범한 화가였다면 세상의 주목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통영의 피카소’, ‘색채의 마술사’, ‘바다의 화가’로 불리는 이면에는 그가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쏟았는지를 유추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전혁림은 1915년 통영 무전동 128번지에서 태어나 통영수산학교를 졸업하고, 전공과는 다른 미술의 길을 선택한다. 미술전문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않고 오로지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여 한국화단의 거목으로 우뚝 선 독보적인 인물이다.

특히 미술이라고 하면 ‘중앙’화단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고 학연이나 유행에 민감해야 하나 오불관언, 그는 설산의 눈처럼 1977년부터 고향에 은둔하면서 묵묵히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와 풍경을 노래해 왔다.

통영 앞바다의 색채를 주요 모티프로 삼아 독특한 화면구성과 색채사용으로 한 일가를 이룬 그를 화단에선 ‘한국적 추상화의 시조’로 평가한다.

현대사의 격동기와 다양한 문화 변동기를 거친 그는 분명 이 시대의 위대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부산미술전(1938년)에 ‘신화적 해변’, ‘월광(月光)’등의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지방작가들의 흔한 보수적 성향에 비하여 거의 유일하게 현대미술의 전위적(前衛的)조형 방법으로써 표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로 인해 실험의욕이 자기 영역의 확대를 시도하여 발랄한 생명감의 발산에 빠져든다.

그는 광복의 감격과 곧이어 닥친 여러 시련 속에서도 유치환, 윤이상, 김춘수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창립(1945)하고 6.25 이후 부산에서의 유랑 생활을 거쳐 국전에 특선했다.

피난지 부산의 화단은 전혁림을 화가로서의 토대를 굳혀주었다. 1950년대 앵포르멜이 주류를 이루는 비정형 회화를 부산에 최초로 선보이기도 한 부산 근현대 미술을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였기에 현실적 어려움이 많아 교편생활 하기도 한다.

1977년 고향으로 돌아올 당시 유일하게 간행된 미술지 (계간미술)에서 12명의 미술평론가들에 의해 ‘과소평가된 화가’로 오지호, 백남준과 함께 전혁림이 선정된다.

그는 특이한 체질의 화가다. 보통 일반적으로는 나이가 들면 기력도 쇠잔해지고 창작의욕도 시들해져 대개 손에서 붓을 놓기 일쑤인데 그는 어찌된 셈인지 아흔이 넘어서도 “구십, 아직도 젊다”라는 말을 남기며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한 것에서, ‘단 하루도 내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 것에서 그의 위대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숨은 ‘진주’다. 그의 그림 속에는 신라적 솔거의 소나무와 미륵반가사유상이 들앉아 있고 고구려 강서고분도의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춤을 추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그의 그림에서 코발트 블루의 빛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중앙화단〉과의 거리를 두고 미술계의 폐단인 학연 등에 연연하지도, 일시적인 유행에 타협하지도 않으며 고향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와 풍경을 부단히 노래한 전혁림에게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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