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신(韓信)과 소하의 활약
 유방(劉邦)을 도운 세 사람 중 한신은 가랑이 밑으로 기어 갔다는 고사(古事)로 알려져 있다. 젊었을 때 떳떳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무의 도식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을 무렵 길에서 불량배를 만났다. 그들은 “야, 이놈아 목숨을 던질 배짱이 있다면 나를 찔러봐. 그게 두렵거든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하고 시비를 걸었다. 한신은 잠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결국 땅바닥에 엎드려 가랑이 사이로 기어갔다는 이야기이다.
 참을 수 없는 인내를 해 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인내가 되는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고나 할까. 그리했던 한신은 백만의 대군을 자유자재로 지휘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용병의 재능이 뛰어났던 것이다. 그의 천재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이 배수진(背水陣)의 고사(古事)이다.
유방이 항우(項羽)와 혈전(血戰)을 벌이고 있을 때 한신(韓信)은 유방의 명을 받아 북방의 평정에 나섰다. 북방에서 우회하여 항우의 배후로 돌아 포위망을 구축하는 작전이었다.
 이 때 한신은 20만의 적과 만나게 된다. 이에 비해 한신의 군대는 불과 1만, 게다가 오합지졸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상적으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한신은 적의 보루 앞에 흐르는 강을 등지고 포전하였다. 그것을 바라본 적은 병법의 정석도 모르는 촌놈이라면서 비웃었다.

 적은 당연히 위압적인 태도로 공격해 왔다. 한신의 군대는 강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도망갈 수가 없다.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길 밖에 없었다. 전 장병이 일체가 되어 전투를 벌이다 어느덧 적의 대군을 무찔러서 기막힌 승리를 거두었다. 싸움이 끝난 후 부하장수들이 “병법에는 산을 등지고 물을 앞으로 하여 싸운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싸움은 물을 등지고 싸웠는데도 큰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도무지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하고 물었다.
 한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 이것도 훌륭한 방법이라네. 그 증거로 자신을 사지(死地)에 들 때 비로소 살아날 수가 있다고 병서에도 있지 않은가. 그것을 응용한 것이 이번의 배수진이다. 어쨌든 우리 군대는 오합지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생지(生地)에 둔다면 제각기 흩어져서 해체될 우려가 있지. 그래서 일부러 사지에 몰아 넣었던 거야.”
 장수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미칠 바가 못되는 듯합니다.”하면서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사지란 죽음 이외에는 길이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손자병법도 병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게 하기 위해서는 사지에 두라고 되어 있는데 한신의 배수진은 바로 이를 응용한 것이다. 정석에서 빗나간 것처럼 보여도 실은 병법의 정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정석을 머리속에 확실히 넣어두고 그것을 임기응변으로 적절히 사용한데에 한신의 천재성이 있다.

 한신 이상으로 유방의 승리에 공헌한 자가 소하라는 재상이다.
 그는 한신과는 달리 한번도 전쟁에 나간 적이 없다. 언제나 후방에 남아서 나라의 경영을 맡아 전선에 있는 유방에게 병력과 물자를 계속 보급해 주었다. 유방은 잇달아 패하면서도 전선을 재정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소하의 활약에 힘입은 바가 컸다. 후방근무라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공성(攻城)과 야전의 공적에 비하면 화려함도 없고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러나 유방은 전후의 농공행상에 있어서 이 평범한 활동을 공적 제1위로 인정하여 그 노고를 후하게 보상해 주었던 것이다.
 소하가 공적 제1위로 인정받을 때 역전의 장수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저희들은 목숨을 걸고 제1선에 나가서 많은 자는 100회나 전투에 참가하고 적은 자는 수 십회나 싸움을 했습니다. 공적에 다소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모두 성을 공격하고 땅을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소하 그 분은 한번도 싸움터에 나가본 적이 없이 오로지 책상위에서 문서만 만들고 있었을 뿐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저희들보다 높이 평가받는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에 유방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사냥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알고 있습지요” “그러면 사냥개를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 사냥을 할 때 짐승을 쫓아가서 물어 죽이는 것은 사냥개이지만 사냥개의 목에 맨 사슬을 풀어주고 지휘하는 것은 사람이야. 말하자면 자네들은 도망가는 짐승을 죽였을 뿐으로 공적으로 볼 때 사냥개의 공적에 해당되네. 그러나 소하는 자네들의 사슬을 풀어주고 지휘한 셈이므로 마땅히 인간의 공적에 해당하는 거야.”
 이 말에 쟁쟁하던 장수들도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고 한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훌륭한 보좌역이 있어야 한다. 유방에게 있어서 그 보좌역에 해당하는 자가 소하였다. 그는 최후까지 꾸준히 충실한 보좌역으로서 생애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