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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로 아까운 생을 마감한 남이 장군
논설위원 심상정
2012년 10월 26일 (금) 11:24:39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이시애 난을 평정하고 세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남이장군은 어릴 때부터 지략과 용맹이 출중하였으나 자중자애하고 사려 깊지 못한 그의 성격 때문에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아까운 생을 마감하고 만다.
 남이장군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길가에서 놀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보자기로 싸맨 상자를 지고 가는데 상자위에 흰 분을 바른 귀신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따라갔으나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남이가 이상히 여겨 그 뒤를 따라가 보니 그 귀신은 당시의 재상이고 세도가인 권람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 집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재상의 막내딸이 죽어간다고 했다. 남이가 말하기를,
 “내가 들어가면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에 처음에는 의심하다가 외동딸의 생사가 급했던지라 들여보내 주었다. 방으로 들어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분칠한 귀신이 딸의 가슴에 걸터앉아 목을 옥죄고 있었다.  그런데 남이를 본 귀신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죽어가던 딸은 다시 살아났다. 남이가 밖으로 나가면 귀신이 다시 들어와서 목을 조이고 방으로 들어오면 귀신은 도망가고 하기를 거듭하다가 남이의 지략으로 귀신을 완전히 쫓아내어 딸이 살아났다.
 당시 좌의정 벼슬에 있던 권람이 그 일이 있은 후 점쟁이를 불러 남이를 사위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점쟁이가
 “그 사람은 반드시 죄를 얻어 죽을 운명입니다.”
 하고 딸의 명운에 대해서는
“따님은 운이 짧고 자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복을 누리며 잘 살다가 화를 보지는 않겠으니 사위를 삼아도 좋으리이다.”하였다.
 권람이 점쟁이의 말대로 사위를 삼았더니 남이가 열일곱에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사납고 용맹하기로 당대에 당할 자가 없더니 북쪽의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북쪽 오랑캐를 칠 때도 선봉장이 되어 일등공신이 되었다. 이 때 돌아오면서 사나이 기상이 넘치는 시를 한수 읊조린다.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하고 두만강수음마무(豆萬江水飮馬無)하여
남아이십미국평(男兒二十未平國)이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리오
백두산 돌에 칼을 갈고/ 두만강 맑은 물은 말에 먹여/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훗날 누가 있어 대장부라 할까/
 세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젊디젊은 스물여섯 나이에 병조판서에 오른 남이는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고 남에게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려 깊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옛 공신들을 무시하고 뻣뻣하게 구는 남이를 곱게 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하자마자 남이는 좌천되었고 세조에게 함께 총애를 받았던 유자광의 모함으로 아까운 운명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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