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세상이 무섭다. 무언가 잔뜩 헝클어진 느낌이랄까.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없어 보인다. 그저 바로잡을 시기를 놓쳐 버린 이 뒤늦은 각성이 안타까울 뿐이다. 도대체 웬 엄살이냐고 차라리 엄살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들에 마음과 머리가 복잡한데 모르긴 해도 꼭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초등학생을 성폭행하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연인이 연인의 목숨을 빼앗고 친구가 친구를 죽이는 범죄도 종종 일어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을 폭행하고 제자를 올바른 길로 계도해야 할 스승이 감정에 따라 제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기도 한다. 이러니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과는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고 천 냥 주고 이웃 사고, 석 냥 주고 집산다는 옛 현인들의 교훈에 의하여 이웃의 형편을 걱정하고 헤아리던 그 베풂과 나눔의 인정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예(禮)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효(孝)와 의(義)를 강조하고 예의(禮義)절목을 중시했던 민족이 우리 국민이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간 집상(執喪)하였고 살아 계실 때와 똑같이 조석(朝夕)으로 상식(上食)을 올리며 슬피 곡(哭)을 한 민족이 우리였다. 그 예(禮)가 너무 지나쳐 조선조 순조때는 나라 살림이 휘청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소위 예송논쟁(禮訟論爭)이라는 것인데 효종의 어머니인 조대비가 돌아가시자 그 복상기간을 두고 남인과 노론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예라는 것이 너무 지나쳐도 불편하겠지만 요즘처럼 너무 없어도 사회 혼란을 야기(惹起)시킨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야박하고 삭막(索莫)하게 만들어 버렸을까. 오히려 지나쳐 너무 가격해 보이던 그 예의 풍속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세계가 우리를 부러워한다는데 한강의 기적이라며 우리의 경제성장을 놀라워하고 한류라며 우리의 대중문화에 다들 환호하고 있다는데 정작 우리가 지키고 자랑하고 싶은 미풍양속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개발도상국에서는 우리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부러워하며 모델로 삼고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지 않은가. 그들에게 우리의 미풍양속까지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사회의 원칙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던 우리의 모습은 전파를 타고 삽시간으로 세계에 방영됐었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던지 외국인들은 그런 것이 어디서 왔느냐는 그들의 물음에 코리아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그들은 손뼉을 치며 대한민국을 부러워한다. 한국이 4강 신화를 일구어 낸 것은 강하고 단련된 민족이라고 대한민국 응원의 박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듯 우리의 예의 범절을 세계에 소개한다면 그 빛나는 명성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얼마전 모 대학교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사기죄(詐欺罪)라는 사건(事件)이 전혀 없는 태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때문에 사기라는 죄목이 생겼다 하니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었지만 내 마음으로는 참 많이 쓸쓸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자각하고 각성하여 타인을 배려하고 예의를 갖춰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게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 구성원 전체가 경쟁에 내몰리면서 집단으로 재물 중독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과도한 공부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시한 폭탄처럼 뛰고 굴며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하루가 다르게 뛰는 물가에 걱정만 늘어져 인상이 펴질 날이 없다. 또, 교사들은 대학 진학률에 예민해져서는 목청높여 아이들을 다그치기 일쑤다. 그러니 곳곳에서 경기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타인의 일은 모른 척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니 어찌 밝고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더 잘 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우리의 정말 소중한 예절을 잃어버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에 한번이라도 예의를 실천한다면 세상이 다시 예절 바른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