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상소문을 읽어보면 퇴계가 벼슬을 사양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던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상소문을 읽어보신 명종임금은 퇴계에 대한 신뢰감이 워낙 절실하였던 만큼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임금은 곧 친필로 퇴계에게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내셨다. “이제 소문을 읽어보니 전후에 물러나려는 이유를 갖추어 기록하고 다섯가지 마땅치못한 점을 들어 오지 못하겠다고 굳게 고집하니 내가 비록 현인을 얻어 정치를 올바르게 해보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어찌 능히 그대의 뜻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내가 실로 덕이 없고 사리에 어두웠기 때문에 그대가 도를 지키고 의를 지키기 위해 과인을 도와줄 뜻이 없다하니 이는 진실로 국왕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로다. 그대는 나의 뜻을 거듭 살펴주시기를 바랄 뿐이로다.”
 임금의 친필 회신에는 퇴계를 사모하는 마음이 눈물겹도록 간절하게 나타나 있었다. 지금까지는 한사코 벼슬을 사양해 왔던 퇴계였었다. 만약 임금이 퇴계의 사퇴를 처리했다면 퇴계는 그 처벌도 달게 받았으리라. 그러나 그처럼 뜻을 굽힐 줄 모르던 퇴계도 임금의 눈물겨운 친필 회신을 받아 보고나서는 마음이 크게 달라졌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성상의 신금(宸襟)을 그토록 괴롭히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불충(不忠)에 해당된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퇴계는 성은이 망극함에 감루(感淚)를 금치 못하다가 마침내 그처럼 굳었던 뜻을 굽혀 이 해 9월에 병구를 이끌고 서울로 올라왔다. 임금은 퇴계의 배알을 받자 손을 친히 붙잡으며 크게 기뻐하였다.
 “그대가 뜻을 돌려 나를 다시 찾아 주었으니 이처럼 고마운 일이 없구려.” 그리고 즉석에서 대사성(大事成)의 벼슬을 내리며 이렇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교육은 선비들의 기풍을 교환하는 근원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을 살펴보면 선비들의 기풍이 퇴폐하여 미약함이 너무 심하오. 선비들은 기풍과 습관을 마땅히 바르게 길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박하고 방탕하기 짝이 없소. 이는 모두 과인이 불명한 탓일 것이오. 이를 바로 잡아줄 사람은 그대 이외에 또 누가 있겠소. 그대는 문장에도 능하고 덕망도 두터워 선비들의 기풍을 바로 잡아줄 사람은 오직 그대뿐이오. 그대는 나의 지극한 뜻을 헤아려 선비의 기풍을 기어이 바로 잡아주기 바라오.”

 그처럼 간곡한 당부를 하면서 퇴계에서 초피귀마개(貂皮耳掩)까지 하사하였다.
 실상인즉 퇴계는 벼슬을 받으려고 상경한 것은 아니었다. 임금의 간곡한 정리(情理)에 못이겨 직접 찾아 뵙고 사면의 허락을 받으려고 상경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임금은 퇴계를 만나기가 무섭게 크게 기뻐하며 대뜸 대사성의 벼슬을 내려주시니 이제는 옴치고 뛸 수도 없게 되었다. 퇴계는 하사품을 우러러 받들며 아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나 신은 병이 대단하와 전에도 두 번이나 선비교화의 임무를 맡은 바 있었으나 직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사옵니다. 그런데 그 중책을 또 맡기시오면 또 전과 같이 감당해 내지 못할까 크게 걱정되옵니다.”
 “그대는 덕망이 워낙 높아서 몸이 다소 불편하더래도 모든 일을 능히 잘 처리해 낼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이날 임금은 퇴계에게 술까지 하사하였다. 퇴계는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대사성의 중책을 떠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책임을 맡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책임을 맡고 나면 추호도 게으름을 피울 줄 모르는 퇴계였다. 병약한 그에게는 대사성의 직책은 너무도 과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석 달이 채 못가 병석에 눕게 되자 이 해 11월에 또다시 사퇴원을 제출하였다. 임금도 이제는 실정을 알고 사표를 수리하였다. 그러나 고향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가까이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에는 상호군(上護軍)이라는 벼슬을 제수하였다. 상호군이란 오위(五衛)의 정삼품(正三品)벼슬로서 현직에 있지 아니한 문관이나 무관에게 내리는 특별 직책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후에는 임금은 퇴계를 가선대부공조참판(嘉善大夫工曹參判)으로 승진시켰다. 퇴계는 병을 이유로 사양하려 했으나 임금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재삼 사표를 제출했지만 임금은 끝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듬해 2월에 퇴계는 벼슬을 그만 둘 결심을 굳게 먹고 휴가를 얻어 고향에 돌아왔다. 그리고 조상무덤 앞에서 분향지례를 올렸다. 퇴계가 귀향하여 직접 분량지례를 올리게 된 것은 그가 벼슬을 모면할 결심이 얼마나 확고했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퇴계는 분향을 거향하고 곧 임금에게 서장(書狀)을 올려 사임할 것을 청원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허락이 내리지 않았다. 그 때 퇴계가 고향에 내려와 분향하고 서울에 올라가지 아니하자 어떤 이가 퇴계는 선산에 분향을 칭탁하고 고향에 내려와 조정에는 올라가지 아니하니 이는 임금을 섬기는 도리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하고 은근히 비난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퇴계는 그 사실을 알고 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서찰을 보냈다.
 “옛 사람도 만부득이한 경우에는 다른 일을 칭탁하여 거취를 정한 일이 있었으나 그것은 임금님을 섬기는데 정성이 부족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본시부터 벼슬을 감당하기 어려운 데다가 병이 심하여 조정에는 돌아가지 못하겠기 때문에 고례(古禮)에 따라 분향례를 올리고 서장을 올려 사임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것이 어찌 임금님을 섬기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겠나이까.”
 2월에 사표를 올렸으나 허락이 내리지 않았고 석 달 후인 5월에 다시 사표를 올렸으나 이때에도 역시 허락이 내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 달 후인 7월에 세 번째로 사표를 올렸더니 이때에는 마지못해 공조참판의 사표를 수리하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라는 직함을 새로 내렸다 동지중추부사란 고향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누릴 수 있는 일종의 명예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임금은 퇴계의 생계를 걱정하신 나머지 그의 생계는 경상감영에서 책임지고 도와드리도록 특별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퇴계는 오래전부터 소망이던 전원생활을 60세가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는데 5년전부터 짓기 시작한 3칸밖에 안되는 조그만 도산서당이 준공된 것도 바로 이 해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