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찬 시인은 1938년 12월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가려리에서 출생했다. 그가 태어나던 시기는 일본 군국주의치하의 비참한 생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성중학교를 거쳐 당시로써는 인근 시,군에서 명문이었던 경남항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요즘의 대학에 버금가는 육군갑종 장교로 군(軍)에 입문하였다. 자유수호란 미명 아래 1960년대 베트남전에도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그는 사선(死線)을 넘나들었다.
 그러했던 탓인지 그는 칠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러기에 반공강연회와 사회활동에도 노익장을 과시한다. 또한 그의 올곧은 기상도 엿보인다. 그러한 그가 본 비평가에게 지난 현충일을 앞둔 며칠 전 자신의 시 <구멍 난 철모>에 대해 비평(평론)을 해달라는 청이었다. 그러나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뻘에다 대선배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서울특별시 중구가'까지 작사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시인이기에 주눅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며칠간 고민 끝에 그러함을 떠나 일천하지만 문학평론가의 입장에서 비평코자 한다.

 <구멍 난 철모>란 시제(詩題)에서부터 이 시의 흐름을 대충 파악하게 한다. 먼저 전문을 싣는다. 그리고 자유시(自由詩)인 본 시를 편의상 6연으로 나눈다.

포연이 쓸고 간/ 비무장 지대 깊은 계곡/ 주인 잃은 구멍 난 철모 하나//
비바람 긴 세월/ 아무도 없는 외로움/ 애잔한 전쟁의 상처만/ 그 주인의 운명 알려주는/ 커다란/ 탄흔 속에/ 야생화 함께 하고 있네//
소총 한 자루에 의지해/ 적과 싸웠던 철모의 주인은/ 수많은 호국 영령 중 한분//
풍전등화 위기에 놓인/ 조국 지키기 위해/ 처절한 전장의 한 복판//
태극기 가슴에 품고/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 온 몸으로 받아 안으며//
꽃다운 젊음 바쳤으니/ 그 불멸의 군인정신/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한 편의 시는 시인이 사물을 보고 그 사물을 인식하는 국면이다. 그것은 그 사물과 시인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자인 그가 시를 통해 자전적 편력과 미래세대를 향한 국가관을 심는다. 시인은 일제 암흑기에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고, 열세 살부터 3년간에 걸친 한국전쟁을 겪었다. 그가 태어난 고향에도 북한 공산군이 짓밟았다. 그도 전쟁 중에 학도병이나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갈 뻔했던 나이였다. 용하게도 살아남은 그는 그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난 후 장교로 군에 입문한다. 구국의 일념과 세계평화 사수란 명제하에 조국을 사수하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한다.

 "포연이 쓸고 간/비무장 지대 깊은 계곡/주인 잃은 구멍 나 철모 하나" 세계 유일무이한 비무장 지대를 누가 만들었던가. 1차적 책임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만큼 힘이 없었기에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同族傷殘)이란 고통을 안았다. 이러함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동족간에 서로 빼앗고 빼앗는 전장에서 한반도의 젊은이들이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어 쓰러져 갔다. 빗발치는 포탄이 귓전을 때리는 속에 적을 향해 응사하던 병사는 유탄을 맞았다. 깊고 깊은 능선에 포연(砲煙)만 남긴 채 정적이 흐르는 철모의 주인공은 군번이라도 있는 병사였을까. 아니면 펜 대신 총을 잡은 이름모를 학도병이었을까.
 이러한 1연에서는 1967년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비목:碑木>과 비슷한 흐름이다.  그러나 분명 같은 시는 아니다. 1939년 충북 충주 태생으로 서울시립대 교수와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한명희는 ROTC 2기로 1960년대 강원도 화천에서 군복무 시 녹쓴 철모와 비석이 아닌 비목을 보고는 이 시를 썼다. 국민들이 애송하는 가곡을 탄생시킨 그는 시인보다 한 살 아래로 같은 시기에 초급장교로 근무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필연일까 둘은 고대삼국간에 결전장이었던 한강을 사이에 두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시의 대상이 현실인 이상, 시는 현실의 인식이다. <구멍 난 철모>나 <비목>이란 시의 기저(基底)에는 같은 시대 젊은이로서 군의 체험이란 게 도사리고 있다.

 그런 후 시적 화자는 외로움을 표하고 있다. 공산주의에 맞서 산화하였음에도 조국은 초개와 같이 던진 주검을 수습하지 않았다. “비바람 긴 세월/ 아무도 없는 외로움/...,” 어찌 외롭지 않을 수가 있으랴. 죽어서도 고이 눈을 감았으랴. 단지 이름모를 야생화가 용감했던 이름모를 병사만을 기억했을 뿐이다. 그리고 야생화는 그 주검의 친구가 되었다. “...,그 주인의 운명 알려주는...,”에서 적절치 못하거나 틀린 표현은 아니나, 관형격 조사를 탈락시켜도 무방함에도 굳이 붙인 것이 이채롭다. 이들의 주검을 수습해야 할 1차적 책무를 가진 조국은 이러한 호국영령들을 홀대했었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너무나도 늦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에서라야 ‘국군유해발굴감식단’을 창설하여 이러한 호국영령들의 유해를 찾고 있다. 그러했기에 내가 지켜낸 조국을 원망했을 영혼이었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