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13년 늦은 봄 어느 날 아침 임금은 경연(經筵)이 끝난 뒤에 영의정 심연원(沈連源)과 대제학 정사룡(鄭士龍)에게 이런 말씀을 반문하였다.
 “퇴계는 지금 고향에 내려가 무엇을 하고 있는고?” 영의정 심연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퇴계는 지금 예안에 내려가 도산서당이라는 글방을 열고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있다 하옵니다.”
 “음,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조정에 올라와 나를 도와 주었으면  싶은데 그 사람이 벼슬을 싫어해서 걱정이야” 임금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종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누구보다도 퇴계와 상의를 해 왔었는데 그런 때면 퇴계만이 언제나 공평하고 현명한 조언(助言)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임금은 퇴계가 가까이 있어야만 국사를 안심하고 다스려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퇴계 자신은 몸이 불편한 것을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버린 지 어언 3년이 넘지 않은가. 명종은 퇴계가 옆에 없어 고독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영의정과 대제학을 다시 둘러보며 말씀하신다. “어떻게 퇴계를 서울로 다시 불러올릴 수 없겠소?” 그러자 대제학 정사룡이 아뢴다. “퇴계를 서울에 올라오게 하려면 벼슬을 주면 될 게 아닙니까” 옆에 있던 영의정 심연원은 그 말에 즉성에서 찬동한다. “퇴계를 서울에 올라오게 하는 데는 벼슬을 내리는 방도밖에 없을 것으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명종은 고개를 좌우로 흔드시며 “벼슬이 싫어서 낙향한 퇴계가 벼슬을 내린다고 쉽사리 올라올 것 같소.” “경상감사로 하여금 퇴계를 직접 찾아가서 성상의 간곡하신 뜻을 전달하여 기필코 상경하도록 권유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명종은 영의정과 대제학의 그런 권고에 의하여 경상감사 앞으로 퇴계에게 대사성(大司成)의 벼슬을 제수할 테니 속히 상경하도록 간곡히 권유하라는 특별 분부를 내렸다.

 경상감사는 어명을 받들자 곧 퇴계를 찾아가 그 뜻을 전하면서 “만약 선생께서 상경을 안하시면 제가 어명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죄로 부득이 감사 자리를 물러나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선생은 저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이번만은 서울에 올라 가셔서 벼슬자리를 받아주셔야만 하겠습니다.”하고 간곡히 청원하는 것이었다. 퇴계는 물론 서울에 다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기가 상경을 아니하면 감사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질 것도 모르지 않았다. 경상감사가 자기 때문에 벼슬에서 물러난다면 퇴계로서는 그것도 괴롭기 짝 없는 일일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본래의 뜻을 굽힐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