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의 맏아들 이름은 준(寯)이요, 맏며느리는 봉화금씨(奉化琴氏)로 그 지방에서는 서슬이 푸른 양반가문의 딸이었다. 퇴계 선생은 맏며느리를 맞아올 때 상객(上客)으로 사돈댁에 갔다가 금씨문중 사람들에게 혹독한 냉대를 당한 일이 있었다. 혼인 예식이 있을 때 상객에게 대해서는 사돈댁 사람들이 모두들 융숭하고 조심스럽게 접대하는 것이 당시 사회에서 일반 통례이지만 퇴계 선생의 경우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금씨문중 사람들은 한 사람도 얼씬하지 않았다.  오직 주혼(主婚)한 사람만이 상객을 맞아 주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금씨 가문은 봉화 지방에서 떵떵거리며 계계승승 살아온 세도가였던 관계로 그들은 문벌도 지체도 없는 퇴계 선생 가문과 통혼하는 것을 문중에서 모두 반대해 왔기 때문이었다. 다만 주혼 혼자만이 우겨서 퇴계 선생과 통혼을 했으므로 금씨문중에서는 상객인 퇴계 선생을 얼굴조차 대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 퇴계 선생은 이미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禮文館) 검열(檢閱)을 지낸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근본을 따지고 보면 퇴계 선생 육대조(六大祖) 때 아전(衙前)을 지냈을 뿐이었다. 게다가 퇴계 선생 자신도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설사롭게 자라난 사람으로 봉화에서 토반(土班)으로 세도를 부려오는 금씨문중으로 보면 아주 보잘것 없는 집안이라고 넘볼 수도 있었다. 생각을 그처럼 혹독하게 무시해 버린 원인이 바로 그 점에 있었던 것이다.
 퇴계 선생이 그런 눈치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기색을 추호도 나타내지 아니하고 주혼에게 어디까지나 예를 갖추어 대하였다.
 거기까지도 좋았다. 퇴계선생이 혼인 예식을 끝내고 사돈댁을 막 떠나오자 신부집에서는 일대 난장판이 벌어졌다. 금씨네 일가 친척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서 주혼자에게 공격을 막 퍼부었던 것이다.

 “우리 가문의 규수를 어느 명문가엔들 시집을 못 보내겠기에 하필이면 이 황과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의 며느리로 준다는 말이오. 그런 사람이 금씨네 집안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있었다는 것만도 우리로서는 가문을 더럽힌 셈이요. 그가 앉았던 마루를 물로 말끔히 씻고 대패로 깨끗하게 밀어버려야만 하겠소.”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대청마루를 씻고 대패로 깨끗하게 밀어버리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금씨 일가는 사돈에게 대한 모욕이 그렇게도 심했었다. 그와 같은 사실이 퇴계 선생 문중에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이번에는 퇴계 선생 문중에서 크게 분개하며 모두들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퇴계 선생은 평소와 추호도 다름없이 어디까지나 침착한 어조로 문중 사람들을 이렇게 달랬다.
“사돈댁에서 무슨 일이 있었거나 우리로서는 관여할 바가 아니다. 가문의 명예란 문중에서 떠든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니오, 남들이 헐뜯는다고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이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나도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 가문은 사돈댁 가문보다도 형편없는 가문이라는 증거가 될 것이 아니겠느냐. 더구나 사돈댁의 귀한 따님인 우리 며느리가 얼굴을 들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 내 며느리를 보아서도 아무 소리 말고 물러들 가거라.”
이리하여 퇴계 선생 가문에서는 사돈댁의 모욕을 일체 불문에 부치게 되었고 퇴계 선생께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 며느리를 극진히 사랑하였다.

 이에 며느리 금씨부인은 시아버님의 넓은 도량에 크게 감동하여 어느 집 며느리보다도 시아버님을 한평생 높이 받들어 모셨고 후일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유언까지 남겼다.
 “시아버님 생존시에 내가 시아버님을 모시는데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었다. 그래서 사후에도 다시 시아버님을 정성껏 모시고 싶으니 내가 죽거든 나의 시체는 반드시 아버님 묘소 가까운 곳에 묻어 주도록 하여라.”
 그 유언만 보더라도 금씨부인이 시아버지인 퇴계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었음을 알 수 있으려니와 퇴계 선생 가문에서는 유언에 따라 금씨부인을 퇴계 선생 무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묻어 주었다.
 퇴계 선생의 묘소는 안동시 도산면 건지리 남쪽 언덕 위에 있고 지금도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하나의 무덤이 있는데 그 무덤이 바로 퇴계 선생의 맏며느리였던 금씨부인의 무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