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조선시대 서원에 대한 우리의 상식은 아직도 피상적인 이해의 선을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그때 풍기군수 주세봉이 처음 백운동서원을 건축하였고 퇴계 이황의 노력에 의해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으며 그 후로 전국에 널리 서원을 건축하게 되었다.

서원의 근본 목적은 학문이 출중하여 그 뛰어난 학문과 지식을 널리 보급하여 글 모르는 민생들을 충분히 교육시켜 문학과 국가를 창조하는데 전력을 경주하여 후세에 널리 전할 수 있는 대학자를 위해 그 제자들이 힘을 모아 건립하고 춘추로 제향하는 곳이 서원이다.

그러나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당쟁을 유발하는 당론<黨論>의 지원지요 백성을 착취하는 지방양반의 소굴이 됨으로써 각종 병폐를 불러일으키다가 결국 조선조 말엽 대원군의 정책으로 서원 회철령에 의해 철폐되고 말았다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어서 대원군이 취한 여러 정책 중에 개혁으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것이 서원철폐라고 옛날 어느 책을 읽어보고 안 것이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조선시대 서원은 한 시대를 주도하던 사회세력이 사림의 본거지였다.

사림이란 사<士> 곧 선비의 집단으로서 본래의 일반적인 문사나 지식인층을 가리켰다.

그런데 16세기인 성종, 중종 이후에 들어오면서는 율곡 이이가 마음 속으로 삼대<三代>의 고도<古道>를 그리워하고 몸으로는 유행<流行>에 힘쓰며 입으로 법언<法言>을 말함으로써 공론은 가진 자라고 정의하였듯이 옛 성현의 가르침을 믿고 그것에 의거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에 대한 철저한 단련과 덕성의 함양에 힘쓰며 일상의 사회생활과 정치활동에서 고도<古道>에 나타난 의리의 실천과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그 대상이 보다 분명해지면서 범위가 좁아졌다.

같은 문자라도 과거 응시를 위해 진부하게 경전의 구절이나 암송하고 화려한 시구<詩句>의 문체와 시장<詩章>에 힘쓰는 무리는 더 이상 사림의 범주에 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록<利祿>을 탐내어 위인지학<爲人之學>에 힘쓰는 그들은 심성이 바르지 못한 소인배로 간주되어 군자를 지향하는 사림에서 배제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주도해 나간다는 집권세력이나 무슨 연대 등으로 불러지는 시민단체들 또 0년대 민주화투쟁에 몸 바쳤다는 숫자로 표시되는 세대들의 오만과 독선만큼이나 자기합리화에 급급한 도덕자연<道德者然>하는 형태와는 좋은 대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서 형성되는가.

아비가 양반이면 그 자식이 그대로 양반이 되는 것과 달리 사람은 부형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전의 학습을 통한 각고의 노력과 철저한 자기수향 및 극기<克己>와 같이 다듬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존재였다.

성문<聲門>에 뜻을 둔 초보의 유생을 가다듬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교가 필요하다.

그래서 조선 국가는 서울에 성균관 지방에 향교를 두었다.

그러나 과거 준비 위주로 운영되는 이들 관학에서 몸과 마음을 갈고닦으며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수행은 바랄 수 없었다.

사림의 양성을 위해서는 별도 학교가 있어야 했다.

바로 이것이 조선에서 사림이 대두하던 시기에 서원이 출현하였던 배경이 된다.

이 때의 사림계를 대표하던 퇴계 이황의 서원론과 보급운동이 함께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퇴계는 그의 정치 목표를 유학의 이상적인 정치모델인 삼대<三代>의 지치<至治>를 현실에 다시 구현하는 데 두었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인심을 바로 하는 데서부터 비롯되며 백성을 바른 길로 가도록 가르치는 교화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이 덕을 닦고 성현의 가르침을 힘써 실천하는 것과 함께 향촌 사회에서 교화를 담당할 주체인 사림을 양성하고 훈련 시켜야 했다.

퇴계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도장이 바로 서원이라 하였다.

이러한 논리적 근거 위에서 그는 마침 풍기군수에 임명됨을 기회로 우선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 안에 그 존재를 널리 선양하기 위하여 몇 년 전에 주세봉에 의해 세워진 백운동 서원에 대한 사액과 국가의 지원을 요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성현의 가르침을 담은 경서<經書>를 배우고 익히며 실천을 통해 몸을 닦는 내적인 수양공간으로서의 강당 서재와 사림의 사묘<祠廟>를 서원건물의 기본구조로 정식화하고 원규<院規>를 지어 서원에서의 학습활동과 제반운영 방안을 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