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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한 숙종 임금
2021년 11월 19일 (금) 10:30:18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조선시대 역대 왕들 중 숙종(재위 1675~1720)은 그림을 무척 좋아한 분이다.

 
숙종은 각종 드라마에 가장 자주 등장한 임금이기도 하다.
 
숙종은 장희빈을 사랑하여 인현왕후 민 씨를 내쳤다가 나중에는 다시 장희빈을 내치고 인현왕후를 맞아드린 임금이다.
 
그리고 조선후기에 중요한 인물인 우암 송시열을 사사<賜死> 시킨 임금이기도 하다.
 
그의 시대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 다사다난 했으며 그만큼 이야기 거리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숙종이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이 잘 모를 것이다.
 
그리고 요새 흔히 영조와 정조의 문예부흥기를 준비한 임금이란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숙종이 그림을 어떻게 좋아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되면 현대인들은 조선시대의 왕 보다도 더 자유롭고 혜택을 받은 처지에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는 성리학적 이념으로 창설하여 건국되고 유지되던 시대였다.
 
성리학이란 송나라 때 새롭고 집대성된 유교를 말하는데 그 특징이 주로 형이상에 치우친 사변적 철학과 엄격한 도덕주의다.
 
따라서 성리학적 사고방식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 심지어는 예술까지도 인간의 도덕과 사회윤리의 유지에 도움이 되어야 했다.
 
따라서 성리학의 지배를 받던 조선시대에 있어서 그림도 엄격한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했으며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요즘 같은 자유로운 표현 등은 용납되지 못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많은 아마추어 문인화가들은 자신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드러내기를 싫어했으며 특히 국가의 정점에 있는 왕의 경우 그림을 함부로 좋아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숙종이 그림을 아우 좋아했으니 투철한 성리학, 도덕 이념으로 무장한 신하들의 감시를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숙종은 자주 그림을 좋아하는데 대한 비판 상소와 맞딱뜨리게 된다.
 
그 중 숙종실록에 나오는 한 예만 들기로 한다.
 
숙종 즉위 26년인 1700년 2월 27일 주강<晝講> 때 김도관, 최창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사이 공장<工匠>과 화사<畵師>가 늘 차비문<差備門>에 머물러 역사<役事>를 하는데 수은<水銀>도 많이 들인다고 들었습니다. 일찍이 선조대왕께서 황랍<黃蠟>을 들여보내라고 명하셨는데 불상에 쓸 것이라는 말이 전해지자 율곡 이이가 그것의 불가함을 극력 말하여 마침내 돌려주도록 명하셨고 인조대왕 때에도 화사에게 그림 일을 시키자 조익<趙翼>이 옥당<玉堂>에 있으면서 차자<箚子>를 올려 진달하니 인조께도 또한 가납을 하셨습니다. 이는 진실로 오는 날에 본 받을 만한 것입니다.”
 
즉 숙종이 그림 일을 화가들에게 시키자 최창대는 선조와 인조의 예를 들며 그만둘 것을 요구한 것이다.
 
선왕<先王>의 예를 들며 당당히 주장하는 말에 어떤 왕이 반대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신하들의 상소는 당시 성리학자 사고방식에서 볼 때 당연한 태도였다.
 
그래서 숙종은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신하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그림의 감계적 기능을 들며 자신을 변호하고는 하였다.
 
숙종이 송나라 휘종의 경잠도에 제한 된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두 가지 아름다움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
 
이 중에서 내가 중요시 하는 것은 백성들이 열심히 밭을 갈고 누에치는 모습을 표현한 점이며 단청<丹靑>은 부차적인 것이다.
 
경잠도란 농사일과 배 짜는 일을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농업국가였던 전통시대의 조선이나 중국의 여러 왕조에서 국가 경제의 기반을 표현한 그림으로 극히 중요시 되었다.
 
즉 단순한 감상화가 아니라 통치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천하대본<天下大本>의 중요성과 그에 종사하는 백성의 어려움을 표현한 그림인 것이다.
 
이에 비해 단청 즉 그림 자체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변명한 것이다.
 
그림을 포함한 예술의 가장 큰 효능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측면으로 답할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유이다.
 
예술은 자유로 희구하는 인간성의 표현이다.
 
반대로 인간은 예술을 통해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며 힘든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성리학적 도덕률로 빈틈없이 무장한 조선왕조를 다스리던 숙종은 과연 위와 같은 감계적인 회환관에 만족할 수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세월과 근현대 격동의 시절을 지내며 숙종이 궁중에서 소장하고 감상하던 그림들은 대부분 없어졌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남아 숙종의 그림 취미의 현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현재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건<李健>(1614~1662)의 작품의 상단에 숙종의 제화사가 적혀있는데 그 내용은 열성에 제에 실려 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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