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의 정치는 주로 궁궐 안에서 이루어졌다.

궁궐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던 만큼 일반 백성들이 임금의 모습을 보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의 임금이 전혀 궐 밖 출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종묘나 사직 등 국왕이 백성을 대신하여 기도를 드리는 장소도 궁궐 밖에 위치하고 있었고 선왕, 선후의 능을 살펴보기 위해 또는 매 사냥을 보기 위해 궁궐 밖으로 나서기도 했다.

임금이 궁궐 밖으로 나가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할까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임금은 나라님이었고 임금 행자의 모양새는 나라의 체모와 관계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준비와 사행에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다.

임금 행차의 모양새는 나라의 체모와 관계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준비와 시행에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했다.

임금이 한 번 움직이면 수천에 이르는 군사들이 수행했고 구경 나온 백성들까지 모두 합하면 만여 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모이게 되었다.

당시 동원된 군사들에게는 밥도 먹여주지 않았으니 임금이 밖으로 나가고 밖에서 날이라도 지새게 되면 그 고충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하여 신하들은 임금이 타당한 사유 없이 궁궐 밖에 나가는 것에 반대했고 선정을 베푼 위대한 통치자를 지향했던 조선의 임금들은 궁궐 밖으로 나갈 합리적인 명분을 만들던가 아니면 궁궐 안에서 지내야 했다.

물론 이도 저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나다니다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 같은 이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시기 별로 출궁의 명분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고 시기 별로 각기 달랐던 출궁의 실체를 살펴보는 일은 백성들의 눈에 비친 각기 다른 임금의 이미지를 추적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의 임금들 태조<太祖>와 태종<太宗>과 같은 임금은 궁궐 밖에서 지내는 일이 더 많았다.

사실 수도 한양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수도로서 가능하게 된 것이 태종 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궁궐 안팎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 할 수도 있다.

또한 무인 출신이었던 태조와 손에 형제의 피를 묻히고서 왕의 자리에 올랐던 태종의 기질 상 궁궐 안에서 편히 있는 생활이 맞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집현전 학사를 중심을 유교적 통치 질서를 확고하게 세운 세종<世宗>의 경우에는 어떠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살펴보면 세종 대에 궁궐 밖으로 나선 경우가 상당히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세종 초기에는 상왕<上王>으로 있었던 태종<太宗>의 거처가 수강궁<壽康宮>, 낙천정<樂天亭>, 풍양궁<?壤宮> 등으로 다양했으며 세종 또한 상왕을 뵙기 위해 자주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친정<親政>을 하게 된 통왕 5년 이후에도 출궁 양상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세종이 궁 밖으로 나선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데 사당을 위해 동교, 서교, 남교 등으로 나간 것이 매해 거동의 70~80% 정도로 차지하며 기타 중국 사신을 영접하거나 잔치를 베풀기 위해 모화관이나 태평관으로 거동한 일이 그 다음으로 많다.
 

임금이 사냐하는 주목적은 종묘에 올릴 희생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지만 사냥은 군사훈련도 겸하였기 때문에 군사들의 격구나 활쏘기, 새로 개발한 무기의 성능을 보기 위한 거동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동왕10년 무렵부터 농사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 근교에 거동하는 경우도 나타나지만 사냥이나 군사훈련 등을 보기 위한 거동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횟수이다.

세종은 고질병인 안질 등의 치료를 위해 온양, 이천, 충청도 청주 등의 온천이나 초정에 행차했고 35~70일 가량 머물렀다.
 

세조<世祖>의 경우에도 이러한 양상은 지속되었다.

동왕 5년에 사냥과 관무재를 위한 거동이 각각 8회에 이르렀고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행차는 3회에 머물렀다.

동왕 6년에는 황해도와 평안도를 순행<巡幸>하였고 8년에는 군사훈련을 위해 강원도 일대에 거동하였고 오대산 상원사에서는 관음보살이 현신하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세조의 경우 많은 거둥을 중전과 함께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렇게 임금의 궐 밖 거동의 대부분이 사냥과 군사훈련을 위한 것으로 채워지던 양상은 성종<成宗> 대를 거쳐 중종<中宗> 대에 이르면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성종 대에서는 우선 사냥의 횟수가 절반 정도 줄었고 신하들도 임금의 거둥이 신중해야 함을 들어 사냥을 위한 행차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대신 농사의 형평을 살피기 위한 거둥이나 조상을 배알하기 위한 능행,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先農祭>나 친경<親耕> 등 민생을 돌보는 임금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거동은 조금씩 늘어난 양상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