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들이 처음에 서울로 들어와 우리 백성들을 꾀기 때문에 근처 피난민들이 서로 왜놈을 이끌고 들어와 서울 장안이 왜놈과 피난민들로 꽉 찼었다. 이듬해엔 왜적들이 발작을 일으켜 밤중에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남김없이 도륙했다. 그것이 정월 24일이라 매년 이날만 되면 날씨가 흐리고 음산하다. 그것은 원혼들의 분함이 엉켜 그러한 것이다.’
 왜적들이 차츰 방침을 바꿔서 사람도 죽이지 않고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가장하는 통에 모두들 왜적속으로 드나들며 제땅에 농사지어 곡식은 적에게 갖다 바치고 심지어는 머리 깎고 잇빨에 검은물 들여 풍속마저 왜놈을 따르는 자들까지 있었다.

○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생지옥
 충무공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군량미 문제는 무엇보다도 그 원인이 계사년, 갑오년에 걸쳐서 큰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요, 또 왜적의 점령 지구는 물론이요, 전국적으로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한 것 때문에 식량의 궁핍이 극도에 도달했던 것이니 두어 가지 문헌을 통하여 그때의 정황을 살펴보려 한다.
 적병이 서울을 점령한지 2년! 전쟁으로 인해 천리땅이 쓸쓸해졌고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해 굶어죽는 자가 많았다. 명나라 총병 사태수가 길가에서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어린애를 보고 불쌍히 여겨 군중에서 거두어 기르도록 한 일이 있었다. 때마침 전라도 소모관 안민학이 피곡 천섬을 거두어 배에 싣고 왔다. 그래서 나는 솔잎가루 10분에 쌀가루 1홉씩을 물에 타서 주린 백성들을 먹였으나 그것도 사람은 많고 곡식은 적어 목숨을 건진 것이 얼마 되지 못했다는 것이 유성룡의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그 해 6월 진주성이 함락되던 때에는 도원수 권율의 군사와 의병들이 함안에 이르렀으나 성은 비었고 먹을 것은 없어 익지 않은 풋감을 따서 먹었다고 징비록에 적혀 있다.
 참으로 가엾고 무모하고 무계획 했던 것은 별문제로 하고 들판에 곡식하나 없이 그날의 고난이란 형용할 길이 없었다. 『늙은이 어린이들은 길에서 엎어져 죽고, 장정들은 도둑이 되고 그 위에 병까지 겹쳐 거의 다 죽게 되었다. 그래서 부자와 부부까지도 서로 뜯어 먹어 뼈다귀만 길가에 내버리는 것이었다.』(징비록 제2권)
 이것이 계사년의 굶주린 현상이었거니와 다음해 갑오년의 현상에 대해서는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이같이 적은 것이 있다. 『갑오년(전쟁 제3년) 4월 민간에서는 크게 곤궁해서 큰 소 한 마리 값이 쌀 3말을 넘지 못했고 가는 무명배 값이 좁쌀 몇 되 밖에 안되었으니 옷이나 그릇따위는 사는 사람이 없어 팔리지도 않았다.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기 때문에 여자나 아이들은 밖으로 나다니지도 못했고, 굶어 죽은 송장들은 주린 백성들이 서로 다투어 뜯어 먹어 뼈만 남았는데 사람의 살을 먹은 자는 며칠 되지 않아 그들도 죽는 것이었다. 참으로 한탄스럽다. 왜적이 분탕질을 치고 관청에서 빼앗아가고 그 위에 흉년이 들고 부역 무거워 백성들이 이지경까지 이르렀다.』(난중잡록 제3권)

 그 얼마나 가련하고 통탄스런 광경이었는지 그 당시 사헌부에서 올린 장계중에도 『요즘 산사람을 도살해서 창자와 골까지 빨아 먹습니다. 옛날에 사람이 서로 잡아 먹는 말이 있지만은 이렇게까지야 심했겠습니까. 듣고 보기에 너무도 참혹합니다.』(선조실록 47권)라 한 것이 있고, 또 이덕형이 임금께 아뢴 말 가운데도 『부자 형제가 서로 잡아 먹습니다. 더욱이 양주 고을 백성들은 서로 떼를 지어 도둑이 되어서는 사람을 잡아다가 먹기까지 합니다.』(선조실록 49권)라 한 것이 있다. 충무공도 해상에 있으면서 육지 안에 이같이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현상이 있는 소식을 듣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난중일기 갑오년 2월 9일 기사에 『고성 현감 조응도가 왔다. 나는 민생들이 굶주려서 서로 잡아먹는 현상을 물었다. 장차 어떻게 살아갈꼬.』라고 한 기사가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흉년과 주림의 현상이 육지의 거리에만 있고 군사에게는 미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충무공의 장계에 나타난 군량미 걱정, 굶는 사실의 보고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일기를 통해서도 이 같은 기사가 있음을 본다.
 『영남 여러배에 있는 활꾼, 격꾼들이 거의 다 굶어 죽게 되었다 한다. 참혹하여 들을 수가 없다.』(갑오 1월 19일)
 『살을 에이듯 춥다. 여러 배에 옷 없는 병졸들이 몸을 움츠리고 앉아 추워 떠는 소리는 차마 듣기 어렵다. 군량미마저 도착되지 않아 더욱더 답답하다.』(갑오 1월 20일)

○ 도원수 권율 원균에게 출전 명령을 내리다.
 충무공을 걸어 넘어뜨렸던 그 그물이 이번엔 원균의 머리 위에 덮씌워졌다.
 낮 도깨비 갑첩 요시라의 그물이었다. 정유년 두 번째의 큰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난데없이 요시라가 또 나타나, 역시 잘 속아 넘어가는 경상우수사 김응서에게 와서 지난날 충무공을 넘어뜨리던 꼭 같은 수법으로 『아무날 일본군이 바다를 건너올 것이니 원균을 시켜서 바다로 나가 맞서 싸우도록 하시오.』하고 꾀었던 것이다.
 5월 13일 체찰부사 한효순이 우리 해군의 병력을 조사하여 조정에 보고한 것이 3도 진중의 전선은 130여척이요. 격군은 1만3천2백명이였던 모양이다.(선조실록 88권)
 6월로 접어들면서 도체찰사 이원익과 도원수 권율은 김응서의 보고를 받고, 서로 합의한 끝에 원균에게 명령을 내려 모든 전선을 총 집결시켜 한편으로는 한산도 앞바다를 지키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전선을 이끌고 바다로 나가 왜적이 들어오는 길을 끊어 막으라고 했다. 그러나 원균은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자기가 부산으로 나가기에 앞서 육군이 먼저 중간에 있는 안골포의 왜적들을 공격한 다음에야 출동하겠다는 심산으로 장계를 올리기까지 했다. 충무공의 난중일기에 『도원수가 내게 원균의 일을 말하되, 통제(元均)의 일은 말할 수가 없소, 조정에 안골포, 가덕도를 모조리 무찌른 다음에 수군이 나가 토벌해야 한다고 했으니 그게 무슨 심사겠소. 밀고 나가지 않겠다는 뜻에 불과한 것이요. 그러므로 내가 사천으로 나가서 3도 수사들을 독촉하여 진격하도록 할 예정이요. 통제사는 내가 지휘할 것까지도 없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정유 6월 19일)
 그러나, 이때는 그 기사 내용대로 3도 수사들에게 출전을 독려했을 뿐, 아직 원균을 불러 곤장을 때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때 도체찰사는 종사관 남이공을 한산도로 들여보내어, 원균을 끌고 나오게 했다. 마침내 3도 전선 90여척을 이끌고 바다로 나갔다. 심지어 남이공은 원균의 배에 같이 타고 있었다.(선조실록 89)

 먼저 안골포에 이르러 접전했었고 그 길로 가덕도를 향해가다가 도진의홍과 고교통증의 강력한 적들을 만나, 부산으로 나가지 못하고 돌아서 거제 칠천도로 왔었는데 이번 출동에서 보성군수 안흥국과 평산포 만호 김축이 적탄에 맞아 전사한 것은 여간 큰 손실이 아니었다.
 충무공은 초계 우너수 진중에서 이 소식을 듣고 통탄했었다. 권율은 원균의 행동에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원균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직접 곤장을 쳤던 것은 7월 2일이었다.
 그는(원균) 자의건 타의건 바다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군사들은 한산으로부터 종일토록 노를 저어 오느라 쉬지도 못했고 또 기갈이 심해서 배를 운전할 수 없었다. 여러 배들은 앞서락 뒤서락 나갔다. 이때 부산으로 새로 들어온 왜적선은 1천여척이었고 그들은 싸우지 않고 우리 수군을 지치게 이리저리 끌고 도망만 다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기만 기다렸다. 밤이 깊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자 원균의 배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방향을 잃어버렸다. 원균은 간신히 남은 배를 수습하여 가덕도에 이르렀다. 군사들은 갈증이 심해서 서로 다투어 배에서 내려 물을 마시는데 그것을 본 왜적들은 갑자기 섬속에서 달려 나와 덮치므로 우리 수군들은 이 싸움에서 4백여명이 희생되었다.
이때의 실황이 일본측 기록인 정한위략에도 4백여명이라는 숫자까지 똑같이 실려 있다. 그들의 기록에는 그 섬에 있던 왜장이 고교직차와 축자광증이었음을 밝혀 두었다. 그런데, 난중잡록에는 이 패전을 가덕도에서 거제 영등포에 와서 당한 것으로 적었는데, 그것은 잘못 기록한 것이다. 원균은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거제 칠천량으로 왔다. 여기서 7월 15일밤 적의 기습을 받는 데서부터 원균의 마지막 운명은 결정을 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원균의 마지막 전투에 대한 중대한 문제점이 생겨난다. 그것은 원균이 과연 어디서 죽었느냐는 그 지점에 대한 단정이다. 지금까지 연구발표된 모든 기록들은 한결같이 거제 칠전량싸움에서 패전하여 거제 상륙하여 죽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원균의 죽은 곳은 거제 땅이 아니라 고성땅 추원포(춘원포) 지금은 통영군 광도면 황리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첫째, 우리는 이때의 전투 상황을 적어 놓은 가장 신빙할 수 있는 표준 문헌이 무엇이냐는 그것부터 결정지어야 하는 문제점이 남아 있다. 이때의 전투상황을 적어놓은 문헌과 그것의 기사 내용들은 대개 다음과 같다.
 
1. 조경남의 기록『밤중에 적들이 온라도, 옷내도로 우리 배들을 기습해 왔다. 이튿날 새벽에 우리 복병선들이 불타자 원균은 크게 놀랐다. 아침에 적선이 우리배들을 에워싸고 대포를 빗발치듯 쏘므로 당적할 수 없었다. 원균은 육지로 올라갔으나 적병이 따라와 원균을 죽였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도 죽었다. 장병들의 죽음은 이루 셀 수 없었다.』(난중잡록 3권)
 
2. 유성룡의 기록 『이날 밤중에 왜선이 습격하자 원균의 군사는 크게 패했다. 원균은 후퇴해 해변에 이르러, 배를 버리고 언덕에 올라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고 소나무 아래 앉아 있었고 좌,우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가버렸다. 원균은 여기서 죽었다고 하고 혹은 달아났다고 전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길이 없다.』(징비록 1권)

3. 도원수 권율의 기록 『신의 군관 최영길이 한산도로부터 막 돌아와 하는 말이 원균은 죽음을 면하여 진주로 갔다고 합니다.』(선조실록 90)
이 기록 역시 상륙장소가 어디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고 다만 엉뚱하게도 원균이 진주로 갔다고 적었는데 중용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김식의 기록이다.

4. 김식의 기록 『선전관 김식이 한산도 사정을 조사하러 갔다가 돌아와 임금께 들어와 아뢰되 15일밤 10시에 왜선 5, 6척이 갑자기 급습해 와서 우리 전선 4척을 불 질러 전부 타 버리자 우리 장병들은 허둥지둥 배를 부려 가까스로 진을 쳤습니다. 새벽이 되자 왜선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들이 닥쳐 서너 겹으로 에워싸며 형도 근처에 끝없이 깔리므로, 고성땅 춘원포로 물러났는데, 적의 형세는 대단했고 우리 전선들은 전부 불타고 깨어졌으며 모든 장수와 군졸들도 불타 죽고 빠져 죽고 모두 다 죽었습니다. 신은통제사 원균과 순천부사 우치적과 함께 몸을 뽑아 육지로 올라왔는데, 원균은 늙어서 걷지를 못하고 갑옷마저 벗고 칼만 차고 소나무 아래 우두커니 앉아 있었고, 신이 달아나다 돌아보니 왜놈 6,7명이 칼을 휘두르며 언제 벌써 원균이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원균의 생사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경상우수사 배설과 안골포 만호 등은 겨우 살았으나 우리 배들 불타는 연기는 하늘을 덮었고 무수한 왜적들이 한산도를 향하여 내려갔습니다.』(선조실록 90)

 이 기록이야말로 내가 가장 포준 문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다른 모든 기록은 뒷날 들은 대로 써놓은 것일 뿐 부정확한 문헌들임에 반하여 이 사람의 기록은 그가 직접 원균과 행동을 같이 했던 체험 기록이라 가장 정확하고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지금도 춘원포(지금의 황리) 주변 동네에서 구전으로 전해져온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소나무 밑에서 왜놈에게 처형당한 목없는 장군 엉규이 무덤이라고 하며 지역 주민인 김해 김씨 김원도씨(작고) 부인 배수자씨(59세)에 의해 매년 제물을 마련하여 향화를 올리고 있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