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에 서 있는 나무에 대한 단상은 지족<知足>에 있다.

그러나 그 지족은 고독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고독과 지족은 상반된 것 같지만 나무는 무심하기 때문에 이웃과 다투는 일도 없다.

이것은 사랑하지 않으므로 미워하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헤어질 필요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만 여여<如如>롭다.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흔들리고 비가 오는 날엔 비로 맞으며 살면 그 뿐이다.
 

이렇게 보면 나무는 영락없이 하나의 수도자이다.

나무를 보면서 옛 선비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선비들의 작품 중 시를 중심으로 조사해 보면 매우 다양한 나무가 나타난다.

특정한 나무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버드나무, 가시나무, 배나무, 뽕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등으로 다양하게 드러난다.

이 가운데 매화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대나무는 조선조 선비들의 중요한 시률적 소재들이다.

‘사물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생각을 하는가’하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사물의 인식의 원리를 이념적 인식, 연사적 인식, 즉물적 인식으로 나누어서 이론화 한 적도 있다.
 

전통가옥의 둥근 기둥에 기대어 나뭇결을 쓰다듬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때로는 목신<木神>이 나에게 다가와 오래된 언어로 이야기를 전해 주기도 한다.

눈을 들어 집안이나 그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나무다.

단장 안에는 대추나무를 비롯해서 감나무, 무과나무, 앵두나무, 무화과나무 등이 가득하다.

집 밖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를 비롯해서 은행나무, 살구나무 등이 언덕에 줄을 지어 서 있고 탱자나무와 측백나무, 호두나무 등이 길가에 서 있다.
 

우리는 나무와 더불어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나무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나무는 많은 사람의 문화적 소재가 되어 왔다.
 

수필가 이양하<李敭河>는 ‘나무’라는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서 자라고 있고 저기에 홀로 우뚝 서 있는가를 말하지 않는다. 등성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우며 골자기에 서 있으면 물이 좋을까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得薄>과 불만족을 말하지도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 떠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만족한다. 그러나 나무는 고독하다.’

이처럼 나무는 선인들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부조리한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매화나무나 내마누 등 특정 나무를 거론할 때는 이와 관련된 문화론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나무로 범칭 될 때 그의 시각은 특별했다.

물론 구름 속의 나무, 달 가운데 계수나무 바위 틈 사이에도 나무는 자라난다.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나무이다.

건축물 자재 등 제반시설물 설치에 꼭 필요한 나무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뿌리를 박아두고 언제나 정정한 위용을 자랑할 겨를도 없이 나무는 자라나고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영하 30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항상 푸른빛을 유지하고 있다.

나무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이 같은 관점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선인들의 시에서 말하고 있다.

‘나뭇잎 사이에 햇살과 바람, 밤에는 달빛의 아름다움이 흥건하고 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의 불완전한 삶의 저편에서 이를 위로하며 완전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위의 시에서 부는 바람과 햇빛에 출렁이는 나뭇잎의 물결치는 노래처럼 풀어가는 근심, 흔들리는 나무를 통해 느끼는 사랑 등은 모두 이 같은 매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대가 다르고 사물에 대한 접근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나무는 오히려 그늘지고 투명한 것이다.

머리가 문드러져 없어지고 속이 다 타버린 나무를 보면서도 나무를 통해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깊은 뿌리가 있으며, 언제나 정정한 겨를이 올 것이다.

나무는 언제나 혼자였고 혼자였기 때문에 무리를 떠나 홀로 서 있으면서 속은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