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점점 나이를 먹어가도,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지지 않고 기억 속에 새로워지는 것이 있는가 봅니다. 어린 시절에 깊이 각인된 매우 감동적인 일이나, 충격적으로 슬픈 일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새록새록 추억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약 40여 년 전 고향인 상리면 척번정리 오정자(五亭子)나무와 가설극장에 관한 추억도 그러합니다. 전기불도 없고, 라다오도 귀했던 지난 시절이었습니다. 오정자나무는 나이가 꽤 많은 수백 년 된 느티나무입니다. 옛날에는 다섯 그루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한 그루 뿐입니다. 그래도 오정자 나무라고 합니다. 이 나무가 서있는 길을 ‘오정자거리’라 부릅니다. 어떤 때는 이곳을 ‘문화의 거리’라 하기도 합니다. 오랜 옛날부터 상리면의 각종 문화 행사는 거의 대부분 이 나무그늘 아래서 개최되었기에 때문에 유래된 이름입니다. 휴식과 대화의 공간인 이곳에는 해마다 봄, 가을철에는 ‘상리면민노래자랑대회(콩쿨대회)’를 비롯한 가설극장 영화상영과 민속놀이인 그네타기, 농악놀이, 농요경연대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참가하여 보고 즐겼습니다.
 문화의 거리 오정자나무는 한때 우리 민족과 함께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오정자나무와 함께 자라던 나머지 네 그루는 모두 6.25한국동란 때 폭격을 받아 불에 타서 사라졌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아무런 선전포고도 예고도 없이 불법 남침을 감행하여 이곳까지 내려온 북한 인민군 때문에 불에 타서 고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천만다행으로 이 나무만이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는 것입니다.

 이 나무에 얽힌 수난사 이렇습니다. 이 수난사는 할아버지께서 생시에 자주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얘야, 이 고목 느티나무를 오정자나무라고 부르며 이 길을 오정자거리라 한단다. 왜냐하면 옛날 옛적부터 이곳에는 이 정자나무와 비슷한 정자나무가 다섯 그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머지 네그루는 모두 6.25사변 때 폭격을 당하여 불에 타서 죽어버렸다. 3년 동안 지속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가져온 6. 25사변이 일어난 다음해 초가을 어느 날이었다. 그 날 오전 10경에 굉음을 내는 탱크 몇 대를 앞세우고 북한 인민군 200여명 이곳에 나타났다. 그들은 고성에서 감티고갯길을 넘어 신작로를 따라 왔는데 새까만 까마귀 떼처럼 보였지. 무더운 날씨에 걸어온다고 피곤했는지 나무그늘이 짙은 이곳에 잠시 집결하여 대오를 갖추고 휴식을 하는가 했더니, 호루라기소리와 함께 이내 곧 상리국민(초등)학교 뒷산으로 뿔뿔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뒤에 하늘에서 우렁찬 비행기 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미군 폭격기에서 총탄이 비 오듯이 마구 쏟아졌다. 그러자 오정자거리는 무서운 불길이 치솟는 불바다로 변했다.  잎새가 무성했던 정자나무들은 폭격으로 불타면서 기울어지기도 했다. 전망 좋은 우리 동네 앞 산속에 숨어서 바라보니 등줄기는 식은땀이 흠뻑 했고, 무섭기가 한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또다시 쿵-쿵 하며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울려 펴졌다. 그 소리는 유엔군들이 인민군 탱크가 사천, 진주 쪽으로 진격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폭탄과 폭약으로 콘크리트로 된 오산다리를 폭파시킨 소리였다. 그날 오후에 얼마나 많은 인민군들이 죽었는지, 중촌마을과 가동마을 사이의 도로변 산자락에 그날에 죽은 인민군들 시체를 거름무더기처럼 군데군데 쌓아 땅속에 파묻었는데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사람들은 그곳을 ‘썩은 디’라 부른다. 지금도 무서운 곳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은 왕래하기를 꺼리는 곳이다.”라고 생생하게 그날에 일어난 오정자나무의 수난사와 6.25 한국동란 참상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신 할아버지께서 작고하신 지가 30여년이란 긴 세월이지만, 아직도 정자나무 바라보면 할아버지 말씀과 함께 감명 깊은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일이 추억으로 되살아납니다.
  
 오정자나무가 감명 깊은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가설극장 추억 때문 입니다. 
 전기불도 없고, 라다오도 귀했던 지난 40여전, 이곳에는 자주 가설극장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그때 들은 가설극장 영화 선전방송은 오래토록 기억됩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소개합니다. “향토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상리면민 여러분! 오늘도 무더위 속에서 농사일 일하시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언제나 여러분을 사랑하는, 화성문화사, 고성읍 가야 극장에서는 농사일에 땀 흘리시는 여러분의 노고를 미약하나마 위안코자 본 가설극장을 설치하였습니다. 장소는 문화예술의 거리 척정마을 오정자나무 그늘 아래입니다. 여러분을 모시고 상영할 예정 기간은 7일간입니다. 향토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처녀, 총각들께선 저녁밥 일찍 잡수시고 손에, 손잡고 본 가설극장까지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을 재촉하여 이곳까지 왕림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을 모실 영화는 손수건 없이는 도저히 감상하시지 못할 감동의 영화,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75미리 ‘홍도야 울지 마라’를 상영하겠습니다. 오늘 밤 상영할 영화  ‘홍도야 울지 마라’ 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지도 모릅니다. 만사를 제쳐두시고 왕림하시어 감상하여 주시면 합니다. 홍동의 애닮은 삶은 눈물 없이 감상하기 어려우니 오실 때는 반드시 손에 손에 손수건을 꼭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화질 좋고 음향 좋은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75밀리 화면이 여러분의 심장을 압도하고 심금을 울릴 것이오니 꼭 관람하실 것을 다시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향토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상리면 면민 여러분!
 본 화성문화사 문화의 거리 오정자나무 거리에 설치한 가야극장 가설극장에서는 여러분들의 왕림을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향토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상리면민 여러분의 고된 농사일 피로를 덜어드리고자, 심금을 울려주는 주옥같은 노래, ‘영화의 주제곡 홍도야 울지 마라’ 와 함께, 고 남인수 가수가 열창한 ‘추억의 소야곡’, ‘애수의 소야곡’을 비롯한 흘러간 옛 노래를 유성기를 통해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일손을 놓으시고 감상하시면서 피로를 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선전 방송이 끝나면 웅웅거리는 발전기 소음 소리가 섞인 유성기 쇠나팔스피커 통해서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라는 홍도야 울지 마라 영화 주제곡을 시작으로 “다시 한 번 그 얼굴이 보고 싶어라/ 몸부림을 치며 울며 떠난 사람아/ 저 달이 밝혀주는 이 창가에서 이 밤도 너를 찾아 이 밤도 너를 찾아 노래 부른다....” 남인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울려 퍼지면 마음은 뭉게구름처럼 붕붕 떠서 하늘로 마구 날아가지만, 관람료가 없어 친구들과 애태우던 추억의 문화거리였던 오정자나무 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멋진 정자도 지어지고, 근년에는 고성농요전수관도 건립되어 해마다 세계 여러 국가의 전통 민속공연장이 되었습니다.
 “향토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처녀, 총각들께선 저녁밥 일찍 잡수시고 손에, 손잡고 본 가설극장까지 한 걸음 한 걸음씩 발을 재촉하여 왕림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을 모실 영화는 손수건 없이는 도저히 감상하시지 못할 감동의 영화,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75미리 ‘홍도야 울지 마라’를 상영하겠습니다. 오늘 밤 상영할 영화  ‘홍도야 울지 마라’ 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지도 모릅니다. 저녁밥 일찍 잡수시고 본 가설극장까지 먼 길 한 걸음 한 걸음 재촉하시어 본 가설극장까지 왕림해주기 바랍니다.” 라고 선전하던 구수한 변사의 목소리가 묻어 있는 추억의 오정자나무야, 우리 민족의 뼈저리도록 아픈 수난사와 온갖 풍상을 겪고 지켜보는 오정자나무야! 형제 잃고 상처입은 아픈 역사와 기억은 세월 속에 묻어두고 울울창창(鬱鬱蒼蒼) 영원하여라. 너의 나무그늘로 세계문화의 꽃을 활짝 피워라!

 ▶ 참고사항
 흔히 느티나무를 정자나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나무는 정자(亭子) 주위에 많이 심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통상적으로 느티나무는 기목, 괴목, 당산나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ㆍ 기목(祈木)은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오래된 느티나무를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ㆍ 괴목(槐木)은 괴상하고 이상하게 생긴 오래된 느티나무를 말합니다.
 ㆍ 당산목(堂山木)은 오래된 나무를 신령스럽게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동제지내는 나무를 당상목, 당목 또는 동제목(洞祭木)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