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비록(유성룡의 임진왜란 기록)
 이 기록중 조선장수의 대 일본군 전력이해를 살필 수 있는 다음의 내용이 있다.
 임진년 봄에 신립으로 하여금 변방의 군비를 순시하게 하였다. 그가 돌아와 임금에게 보고하고 4월 1일에 나의 집으로 찾아왔기에,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변이 일어나게 되면 그때에는 마땅히 공이 군사를 이끌고 방어를 해야 하는데, 공의 생각에는 오늘의 적 형세로 보아 그 방비책의 어렵고 쉬움이 어떻겠소” 라고 물었다. 신립이 적을 대단히 가볍게 보면서, “걱정할 것 없습니다.” 고 하였다.
 내가 다시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전에는 왜병이 창과 칼 따위만을 믿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조총과 같은 훌륭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가볍게 볼 수는 없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신립이 주저하지 않고 급히 말하기를, “비록 조총을 가지고 있다 해도 어찌 쏘는 대로 다 맞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나라가 태평한지 오래 되었으므로 사졸들이 겁이 많고 나약해졌습니다. 과연 급변을 당하여 항거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수년 뒤에 군사일에 익숙해지면 난을 수습할 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 같아서는 매우 걱정이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립은 도무지 반성하고 깨닫는 기색이 없이 가버렸다.

 ○ 불타는 경복궁
 1592년 4월 14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곧바로 서울로 진격하였다. 4월 28일 충주탄금대 전투에서 믿었던 신립장군이 패하자 그날로 몇몇 신하가 피난을 반대하며 통곡하자 선조는 “가지않고 마땅히 경들과 더불어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라고 다짐하였지만 피난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또한 도성의 사대문을 닫은채 백성들이 피난 가는 것을 금지시켰지만 백성들은 밤마다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나갔다. 가족들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곳곳에 도적이 나타나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였다.
 임금이 궁궐을 떠나려 할 즈음 도성 안의 간악한 백성들은 내탕고에 들어가 보물을 다투어 가져가기도 했다. 이윽고 임금이 떠나자 노비들 중 일부는 장예원과 형조 관아로 달려가 불을 질렀다. 이 두 곳에는 노비들의 문서가 있기 때문에 태워 없앤 것이다. 또한 텅 빈 도성으로 침입한 왜군은 궁궐 창고의 귀중품은 모두 노략질했고 조.명 연합군에게 쫓겨 도성에서 퇴각할때는 궁에 불을 질렀으니 이때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세 궁궐이 일시에 불타 버려 각종 보물과 서적 그리고 고려사를 비롯한 역사 기록등이 남김없이 사라졌다. 전쟁은 조선왕조가 2백년 동안 이룩해 놓은 서울의 문화유산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 선조의 피난
 4월 30일밤, 선조는 궁궐을 빠져 나왔다. 국왕의 피난은 조선왕조가 세워진 후 2백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호위하는 군사들이 모두 도망가는 바람에 궁문의 자물쇠조차 채우지 못하고 종치는 사람들도 도망하여 시간도 알 수 없었다. 밤은 칠흙같이 어둡고 비가 내려 지척을 구분할 수 없었다. 종묘와 사직, 신주판을 받들고 도승지 이항복이 촛불을 잡고 앞을 인도하였는데 임금과 동궁은 말을 타고, 중전들은 가마를 탔다. 궁인들은 모두 통곡하면서 걸어서 따라갔는데, 이때 호종하는 사람들의 수는 100명도 되지 않은 초라한 행렬이었다.
 날이 새기는 했으나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백제관에서 점심을 먹는데 임금과 왕비의 반찬이 겨우 준비될 정도였다. 그러나, 동궁에게는 반찬조차 없었다. 또 길을 재촉하였으나 날이 저문 데다 비마저 쏟아져 앞뒷길을 분간할 수 없어 밤이 되어서야 동파역에 이르렀다. 장단부사가 임금의 저녁상을 준비하여 올리려고 하는데, 호위하던 하인들이 난입하여 음식을 모두 먹어버렸으니 수령은 책임질 일이 두려워 도망쳐 버렸다. 임금이 장차 개성으로 향할 때에는 따라왔던 경기도 군졸들마저 모두 도망친 상태라 출발도 못하다가 서흥부사 남억이 도착하여 겨우 호위하여 떠날 수 있었다.

 ○ 이조참의 이정암
 5월 2일 한성이 함락되고 5월 18일 임진강 전투에서 조선군이 패하자 황해도 지방에는 감히 일본군에 대적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의 수령과 장수가 도망하니 일본군이 마음대로 날뛰면서 방화와 약탈을 감행했다.
 이조참의 이정암은 몇몇 의병장들과 함께 5백명의 군사를 이끌고 연안성으로 옮겨 지키게 되었다. 이때 이보다 열배나 많은 구로다의 일본군 5천여명이 연안성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몇몇 사람이 대적할 수 없음을 말하면서 이정암에게 피하자고 하였다. 이에 이정암은 “마땅히 한번 싸워 죽음을 사양치 않아야 하겠거늘 어찌 구차스럽게 목숨을 아끼리오.”하였다. 구로다가 직접 지휘하는 일본군은 나흘동안 밤낮으로 줄기차게 공격하였다. 마침내 일본군이 성을 기어오르려 하자 이정암은 장작을 쌓아 올린 다음 화약을 장치하고, 성이 함락되면 일본군에게 죽느니 불에 타 죽겠다고 하였다. 이에 성안의 남녀노소가 죽기 살기로 싸워 적을 물리쳤다.
 이정암은 조정에 적이 28일에 성을 포위하였다가 2일에 물러갔다는 승전보를 올렸다. 이 보고를 접한 조정의 뜻있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적을 물리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공을 알리지 않고 물리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며 극찬을 했다.

 ○ 평양성 전투
 조선군 8천명과 명군 4만명이 연합하여 평양성에 있는 약 1만5천명의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전투는 1593년 1월 6일부터 사흘동안 치열하게 밤낮으로 전개되어 마침내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이 평양성 전투는 일본의 주력과 조.명 연합군이 한판 승부로 힘대결을 벌인 싸움으로 이후 일본군은 후퇴와 수세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1천2백85명을 목을 베었으며 조선인 포로 1천15명을 구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평양성을 되찾음과 이어서 개성은 물론 평양, 황해, 경기, 강원등 4도를 아울러 회복하게 되었다. 이 무렵 함경도의 일본군 가토부대도 정문부의 공격을 받아 패전을 거듭하다가 개성까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한성으로 퇴각하였다.
 처음 조선에서는 일본군이 명나라를 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였다. 이에 명나라 조정에서는 조선이 일본과 합세하여 자국을 공격하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하여 상당기간 파병을 망설였다. 그러나 조선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데다 만약 일본이 명으로 쳐들어 올 경우 심각한 피해가 일어날 것을 고려하여 마침내 파병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일본이 조선의 국경을 넘어 명나라로 들어서게 되면, 명이 전쟁터가 되어 자기네에게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조선 땅에 나아가 전쟁을 하는 것이 그 피해의 확산을 줄이자고 결정되었다. 그리고, 조선에 군대를 보내면 거기에 따르는 군량미를 조선측에 부담지울 수 있는 점도 고려되었다. 명분상으로도 조선에 원군을 파병하여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을 살리고 천조의 영향력을 확고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명은 조선에 파병하여 평양성을 탈환하고 일본군을 수세로 몰아 강화교섭에 끌어들이게 되었다.
 조선에 주둔한 명군의 피해도 막심하였다. 우선 명군의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해 그나마 어려운 식량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또, 명의 장수가 조선의 장수를 발로 차면서 꾸짖는가 하면, 군량미를 제대로 대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선 대신들에게 곤장을 치기도 하였다.
 명의 이여송은 자신의 말이 조총 탄환에 맞았다하여 선조의 말을 빼앗았으며, 의주에 있는 선조의 행궁을 안주로 옮길 것을 강요하여 거역할 수 없게 하였다. 또, 평양성 탈환 직후 이여송은 조선에 글을 보내 “나라가 없게 된 조선으로 하여금 나라를 갖게 하였는바 만약 협조가 충분하지 않으면 철군하여 다시 나라를 잃게 하겠다.”는 협박을 서슴치 않았다.

 ○ 선조대왕의 교서
 4월 30일 한성을 버리고 의주로 옮긴 선조는 이듬해 10월 1일에야 한성에 되돌아왔다. 이 무렵에는 일본군의 기세도 한풀 꺾여 남쪽지방에서 농성하는 정도였다. 선조가 한성으로 돌아오기 전 9월에 교서를 내려 백성들에게 당부한 일이 있다.
 이 교서는 모든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한글로 되어 있다. 제목은 ‘백성에게 이르는 글’이라 하였고 백성들을 회유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왜적에게 잡혀간 백성의 죄는 묻지 않는다. 왜적을 잡아오거나 포로가 된 백성을 데리고 나오면 신분을 따지지 않고 벼슬을 시켜준다. 명나라와 조선의 배가 합세하여 왜국으로 쳐들어갈 계획도 있으니 그전에 백성들은 서로 연락하여 왜적의 손에서 빨리 빠져 나오라.’는 등의 내용이다.

 ○ 강화회담
 1593년 4월 일본군이 한성에서 철수하여 경상도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명과 일본사이의 강화회담이 본격화 되었다. 도요토미는 이때 일곱 개 항의 조건을 제시하였는데, 명나라 공주를 일본의 후비로 삼을 것이라든가, 조선 팔도 중 사도를 일본에 할양할 것이라든가 등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당시 교섭을 맡았던 심유경과 고니시는 어떻게 하든지 강화를 성립시키기 위해 양측의 명 황제와 도요토미를 속여가면서 추진하였다. 그래서 심유경은 일본측의 조건을 숨기고 명 황제로부터 도요토미를 일본국왕에 책봉한다는 글을 가지고 8월달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토미에게 이 책봉문을 바친다.
 도요토미는 명나라에서 보내온 글을 읽어보라고 지시하는데 이에 앞서 고니시는 글을 읽을 승려에게 도요토미가 싫어할 부분을 빼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 승려는 이를 따르지 않고 그대로 읽었는데, 특히 ‘그대를 봉하여 일본국왕으로 삼는다.’는 부분을 읽자, 도요토미는 안색이 변하면서 크게 화를 낸 나머지 책봉문을 집어 던져버렸다. 도요토미는 마침내 조선과 명의 사신을 돌아가게 명령한 뒤, 다시 침략할 뜻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정유재란이 발발하게 되었다. 책봉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운을 받들고 이으시는 황제께서는 성스럽고 어질며 널리 움직이시니 무릇 천지간에 존경하고 친하지 아니한 자 없도다. 제왕의 이름이 널리 퍼져서 장차 바다 끝 해뜨는 곳까지 미치려하니 복종치 아니한 자 없다.
옛 우리 황실의 선조께서는 사방을 경영하시여, 임명문서를 널리 부상의 땅에까지 내리시고 귀한 돌로 만든 큰 인장을 보내시어 진국의 영광을 베푸셨다. 뒤이어 파도 물결이 일어나면 그 파도를 다스리는 임무를 맡기셨다. 이 융성한 때를 맞이하여 마땅히 이 법도를 이어야 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