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8년 태종은 엄청난 정치적 선택을 했다.

14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던 맏아들 양녕대군을 왕세자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함으로써 장자상속의 원칙을 대신에 택현<擇賢>의 논리로 선택한 것이다.

양녕대군이 부친인 태종에게 계속 불신을 안겨주었기에 그렇다 치고 충녕과 함께 태종의 사랑을 받았던 호령이 둘째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왕위를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태종이 충녕을 후계자의 재목감으로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효령대군은 왕위에 대한 미련을 일찍 접었다. 그리고 평생을 불교 진흥에 힘을 기울였다.

승유억불정책으로 불교가 탄압받던 시절 효령대군 만큼 불교 중흥과 불사의 창건에 힘을 기울인 왕자도 없었다.

효령대군을 기억하게 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장수이다. 91세(1396~1486)까지 살았다.

왕 중에는 영조가 83세라는 장수를 누렸는데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요즘으로 치더라도 매우 장수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권력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고 불교라는 대안을 찾으며 마음을 편하게 했던 것이 장수의 비결이 아니었을까.
 

효령대군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태종과 어머니 원경황후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태종이 효령과 충녕이 조석으로 드나들며 “혼정신성<昏定晨省>하였는데”라고 표현한 것이나 변계량이 “효령대군은 온화하고 문명한 자질을 가진데다가 효제와 충실의 행실이 독실하며 숭고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을리 하지 않고 자신의 몸가짐을 겸손하게 하여 털 끝 만큼도 교만한 기색이 없으니 그처럼 훌륭할 수 없다”라고 표현한 데서 효령의 인물됨을 잘 알 수 있다.
 

1418년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 준 이후에 상왕이 된 태종은 중국 사신의 접근과 같은 중요한 국가 행사에 효령대군을 꼭 배선시켰다.

왕인 세종 또한 불교에 깊은 관심을 보인 형의 행동을 크게 질책하지는 않았다.

효령이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효령대군은 문종 이후 세조, 성종 때에도 왕실과 국가의 원로로서 최대의 예우를 받으며 일생을 보냈다.

효령대군의 삶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91세라는 이례적인 장수이다.

조선 역대 왕의 평균 수명이 48세인 점을 고려하면 효령의 장수는 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효령의 이례적인 장수는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불교에 심취하여 전국의 명산을 두루 돌아다닌 것에서도 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국정 스트레스로 삶이 단축된 세종의 왕의 길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불교 관련 일을 하면서 편안한 여생을 누린 효려대군의 왕자의 길이 현대인들이 지향하는 삶의 길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효령대군은 1396년(태종5)에 태연 조선 전기의 왕자이며 이름은 보<補>, 초명은 호<祜>,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걍<蓮江>이다.

태종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다

1407년(태종7) 효령군에 봉해지고 1412년 효령대군으로 진봉<進封>되었다.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인 예성부인과의 사이에서 6남 1녀 측실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고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6대 왕에 이르기까지 존경을 받았다.

불교를 숭상하고 선가<禪家>에 적을 두면서 많은 불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효령대군의 존재로 인해 조선전기 불교가 일정부분 보호를 받고 진흥된 바가 크다.

효령대군의 파란만장한 삶을 성종실록의 줄기에 가장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성종실록에 정리된 효령대군의 줄기에는 그를 칭송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불교에 대해 맹신한 점을 강하게 비판되어 있다.

이보는 불교를 심하게 믿어서 머리 깎은 사람들의 집합 장소가 되었으며 무릇 중외의 사찰은 반드시 수창<首唱>하여 이를 영건<營建>하였다.

세조가 불교를 숭신하여 중들로 하여금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다닐 수 있도록 하였으니 반드시 이보의 권유가 아닌 것이 없었다.

‘이보는 밖으로 청렴한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탐욕이 많아 거짓 문계<文契>를 만들어 남의 노비를 빼앗은 것이 매우 많았는데 죽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여러 아들들이 재산을 다투어 화목하지 못하였다’라고 한 ‘성종싱록’의 기록이 대표적이다.

효령대군은 특히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불교의 중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1429년(세종11) 관악사<冠岳寺>를 건축하고 약사여래사, 미륵존상, 삼층석탑을 조성하였고 월출산 무위사를 중건하였고 만덕산 백련사를 중건하였다.

1432년 한강에서 7일간 수륙재를 개최하였고 1434년 4월에는 화암사 중수를 하였고 1435년에는 회암사에서 불사를 개최하였고 그리고 5월에는 홍천사리탑을 건립하였고 이 외에도 효령대군을 불교 경전의 언해 사업에 적극 앞장섰다.

이처럼 조선조 전기에 불교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효령대군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418년 형님인 양녕대군이 아버지 태종과의 불화로 세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동생인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던 날 효령대군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에게도 분명이 왕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효령은 능력 있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후계자 경쟁을 포기하고 자신이 평소 관심을 가졌던 불교에 귀의하면서 한평생 보냈다.

성종 때까지 여섯 명의 임금을 보내면서 장수하여 왕실의 주요 행사에서는 최고 어른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속 있는 생을 보냈다.

장수와 더불어 건강하고 평안한 삶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의 100세 시대에 효령대군은 중요한 멘토로 여겨진다.

효령대군의 삶의 자취가 남아 있는 역사적 공간들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