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미래신문
최종편집 : 2021.12.3 11:50
뉴스 피플 기획ㆍ특집 사설ㆍ칼럼 포토 학생ㆍ시민(주부)기자 독자마당
> 뉴스 > 오피니언 | 미래춘추
     
조문객의 경건함과 절 2
2021년 01월 15일 (금) 11:53:51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조문객의 경건함은 망자에 대한 절이나 상주에 대한 인사말에도 나타나야 한다.
우선 문상할 때 절하는 자세는 남자는 바르게 서서 두 손을 마주잡되 오른손이 위로 가게하고 여자는 왼손이 위로 가도록 공수하여 잡는다.

그런 다음 영정 앞으로 가까이 걸어가 꿇어앉아서  향불을 붙여 향로에 꽂고 술을 한 잔 올린 다음 일어나서 두어 걸음 물러나 일행과 같이 큰절을 하게 된다.
이때 향불만 올려도 되고 술만 올려도 되는데 상가에서는 집사(도우미)를 두어 술잔을 내려서 문상객으로 하여금 잔에 담긴 술을 퇴주 그릇에 비우게 하고 문상객이 잔을 바르게 잡게 한 다음 집사가 옆에서 술을 따라주고 이 잔을 받아서 빈소 제상에 올려놓는 일을 도아주는 것이 좋다.

만약 집사가 없다면 문상객들끼리 또는 문상객 혼자 향불을 올리고 예를 표하면 된다.
만약 다른 종교를 믿거나 몸이 불편하여 절을 할 수 없는 문상객이라면 향불이나 술 또는 국화꽃만 올리고 선채로 고개로 숙여 묵렴을 올리거나 기도를 해도 된다.
이때 상가에서는 미리 헌화 할 수 있는 국화꽃을 준비해 둔다.
향불과 술을 올렸다면 뒤로 한 걸음 물러나 큰절을 한다.

이 큰절은 계수배<稽首拜>라고도 하는데 절을 했을 때 이마를 손등에 대고 잠시 머무르는 절을 말한다.
큰절을 할 수 있는 때는 의례를 행할 때인데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때이며 평시에는 직계 혈족 간에 올리는 절이다.
남자는 예로부터 관혼상제에 침례해 왔으므로 절하는 방식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여자는 예로부터 상례와 제례에 참례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라는 정형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큰절을 올리기도 하고 평정을 하기도 하고 각양각색이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문상 때 여성이 절하는 방법이 남성과 같이 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친족이라면 망자에게 평시와 같은 큰절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여성 문상객이라면 남자들처럼 공수를 하고 바르게 섰다가 왼쪽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쪽 무릎을 가지런히 꿇은 다음 공수한 손등에 이마를 잠시 대었다가 일어서는 방식의 큰절도 가능하다.

다만 친족 직계자손이 아닌 남성, 여성 문상객은 친분에 따라 평절을 하거나 큰절을 해도 된다.
특별한 친분관계라면 큰절이 좋고 그렇지 않다면 평절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남성의 큰절과 평절 방식의 차이는 엎드린 상태에서 이마를 손등에 오래 대고 있으면 큰절이고 닿았다가 금방 떼면 평절이 된다.

그런 뒤에 문상객은 상주와 절을 하고 조위<弔慰>의 말을 주고받는다.
이때 절하는 방식 역시 친족 간이거나 친분이 두터우면 큰절을 주고받는 것이 좋고 그렇지 않다면 평절을 할 수 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로 절을 한다.

바쁜 생활 속에서 복장이나 양말 등 격식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이라도 상주의 애통한 마음을 존중하는 경건함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양장이면 가급적 검은색 정장에 검은 넥타이 차림, 양말도 검은색 계통을 신는다.
그러나 절을 했을 때 양말 발바닥의 우스은 문구나 그림이 있는 것이라면 신지 않는 것이 좋다.

향불을 올릴 때 향 한 대, 또는 세 대를 뽑아 촛불에서 불을 붙인 다음 향로에 꽂으면 된다.
이때 향불을 입으로 불어서 끄거나 불을 붙인 채 향불 위를 세 번 돌려서 꽂는 실수는 하지 않아야 한다.
술잔을 올릴 때 상가의 집사가 세 번에 나누어서 술을 따라 주면 그 잔을 향불에 세 번 돌려서 집사에게 건네준다.

만약 집사가 없다면 문상객 스스로 세 번 돌려서 바로 제상에 올린다.
술잔을 세 번 향불에 돌리는 의미는 술을 데운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촛불에 술잔을 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끝으로 주의할 점은 문상객과 상주가 주고 받는 조위<弔慰>의 대화이다.
문상객이 흔히 상주에게 하는 위로의 말은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또는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상사에 기운을 내심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 상주를 위로하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상주는 “망극합니다”, “조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 길에 오셔서 위로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등 간략한 대답을 한다.

여러 해 전에 목격한 문상객과 상주의 대화 일부이다.
문상객이 “상사에 상심이 크시겠습니다”라고 하자 상주가 “아이고 뭘요. 사람이 오면 다 가야 되는 걸요. 그래 요새 어찌 지내십니까”라고 했다.
이 상주의 대답에서 애통함이나 슬픔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고인의 종교에 따라 찬송가를 부르거나 찬불가를 부를 수도 있다.
다른 종교가 없는 상주라면 이 대화에서 부모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감정이나 태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부모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것은 철학적 자세이겠지만 그것으로 문상 예절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말은 상사에 대해서 말하되 그 상황을 성명하지 말고 물으면 간단히 대답하되 되묻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니 문상객과 앉아서 술을 마시며 잡담하지 말라는 뜻이다.
간단히 고마움만 표시하고 물러나 빈소를 지키는 것이 상주의 예절이라는 뜻으로 해석 된다.

어떤 문상객은 “그 나이면 살만큼 살았어 호상이야”라고 했는데, 이 말은 상주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다.
“이런게 인생이가. 우리도 언젠가는 다 간다. 이리 오이라 술이나 한 잔 하자” 등 이런 말을 위로랍시고 상주에게 한느 것 역시 예의가 아니다.
이런 말은 문상객끼리는 할 수 있겠지만 친상을 당한 상주에게 할 말은 아니다.

그리고 문상객이 연상이고 상주가 후배라 할지라도 상주에게 함부로 말을 낮추거나 “인생살이가 다 그러니 너도 힘내라”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상주에게는 반드시 말을 높여야 하고 건강함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문상하는 시간은 가급적 밤 10시 이전에 끝내도록 하여 하루 종일 힘든 상주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조문 예절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문상 예절은 망자와 유적의 정에 맞도록 시행하되 형식에 얽메이고 마음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형식 없이 마음만 있다고 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지난 2020년 12월 31일 발간된 제689호 15면의 조묘<祖廟> 예절은 잘못된 기록입니다. 조문<弔問>예절로 바로잡습니다.
고성미래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고성미래신문(http://www.gof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 163(2층)  |  대표전화 : 055)672-3811~3  |  팩스 : 055)672-3814  |  사업자번호 612-81-25521
등록번호 : 경남 아 00137(인터넷신문)  |  등록일 : 2011년 4월 7일  |  발행년월일:2011년 4월 20일  |  발행인ㆍ편집인 : 류정열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준현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 및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2011 고성미래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of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