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미래신문
최종편집 : 2022.5.27 11:06
뉴스 피플 기획ㆍ특집 사설ㆍ칼럼 포토 학생ㆍ시민(주부)기자 독자마당
> 뉴스 > 오피니언 > 기고 | 미래춘추
     
사육신<死六臣>
2020년 12월 04일 (금) 14:02:52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조선의 수양대군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이르켜 불의의 실권을 장악하고 주공<周公>이 되었다고 말했다.

 
주공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던 무왕<武王>의 동생으로 무왕의 아들 성왕이 어린 나이에 왕으로 등극하자 조카인 그를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다졌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공자도 그를 지극히 존경하였다.
 
“주공이 꿈에 보이지 않으니 이제 그만인가 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처럼 수양대군은 주공이 되고자 했지만 결국 되지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럴 생각지 없는 지도 모른다.
 
믿었던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멀고 험악한 영월로 쫓겨난 소년 왕 단종은 자신의 억울한 심적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원통한 새 한 번 임금의 궁을 떠난 후 외로운 몸 그림자만 푸른 산 가운데 있네. 밤마다 잠들고자 해도 잠들지 못하고 해마다 한을 풀고자 해도 풀 수가 없네. 소리 끊긴 새벽 봉우리 남은 달은 희고 피 흐르는 듯한 봄 계곡엔 낙화가 붉어라. 하늘은 귀가 먹어 슬픈 하소연 듣지 못하고 어찌하여 근심스런 사람의 귀만 밝은가”
 
수양대군의 조카인 단종<端宗>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자 사육신<死六臣> 성상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흥부, 류성원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의<義>로운 죽음을 당하였고, 그 가족들도 모조리 죽었으나 남자만 골라서 죽이고 여자들은 살아남아서 관청의 여종 또는 사대부의 종으로 삼았다.
 
그런데 박팽년의 처와 그의 몸종은 함께 경상도 대구 감영에 관비로 배치되었다.
 
팽년의 처와 그 종이 모두 잉부였는데 같은 시기에 출산했다.
 
박팽년의 처는 아들, 그의 종은 여자아이를 출산하였는데 이를 관청 몰래 바꾸어 양육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사육신 중에서 유일하게 박팽년의 후손만이 이 세상에 생존하고 있다.
 
대구 대보사<大譜社> 사장 박도규<朴道圭>를 비롯한 전국에 수 천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조선조 때 죄인에게 형벌을 가할 때 죄인의 처형은 물론이고 그 아들 및 손자까지 남자에 한하여 처형(사형)하였다.
 
그 반면에 그 가족 여자들에게는 죽이지 않고 관청의 종(노비) 그리고 대가집 몸종으로 배치하였다.
 
성삼문의 절명 시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금강산) 제일봉에 낙낙장송이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 청청하리라
박팽년의 절명 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단종) 행한 일편단심이야 가시 줄 있으랴
고성미래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고성미래신문(http://www.gof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 163(2층)  |  대표전화 : 055)672-3811~3  |  팩스 : 055)672-3814  |  사업자번호 612-81-25521
등록번호 : 경남 아 00137(인터넷신문)  |  등록일 : 2011년 4월 7일  |  발행년월일:2011년 4월 20일  |  발행인ㆍ편집인 : 류정열
청소년보호책임자 : 한태웅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 및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2011 고성미래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of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