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의 선비는 그 사회의 정당성을 수호하는 양심이요 시대의 방향을 투시하는 행동과 지성이었으며, 세상 사람이 본받아야할 인격의 모범이자 기준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선비정신의 구체적인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단정적으로 내리기는 쉽지 않다.

선비의 사전적인 의미는 학식이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지칭 하는 말이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은 사상적으로 유교적 이념을 규현하려는 인격체였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관이나 가치관, 세계관, 우주관 등은 전반적으로 주지의 성리학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선비정신의 원형을 조선시대의 성리학에 기반한 전통 유교사상에서 찾는다면 본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조선 초기에 성리학은 고려말 절개를 지킨 정몽주를 추존하였고 절개를 굽히지 않은 길재의 학통에서 선비의식을 강화시켜 나갔기 때문에 선비정신의 핵심 덕목으로 당연히 절의<節義>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이미 사림파들이 정치의 주요세력으로 부상함으로써 퇴계 이후에는 선비의 주요덕목이 도학<道學>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즉시대적 환경의 변천에 따라서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중시한 덕목이 절의에서 도학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가 선비정신을 계승하여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할 때 어디에 그 초점을 두어야 할지 다소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서 고려말 주자학을 도입할 당시의 선비들은 선비정신의 원류로서 어떠한 덕목을 중시하였는지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땅에 최초로 주자학을 도입하여 학국 선비정신의 혼을 심은 회현안향은 불교중심의 이념체계와 세계관을 성리학 중심으로 변화시켜 고려말 개혁의 흐름과 조선개국의 정신적 바탕을 제공하였으며, 장기간의 무신정권과 몽고의 침탈로 인해 무너진 국자감 등 교육시설의 재건과 제도정립에 진력하여 학문을 일으키고 인재를 양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란과 외세의 침탈, 그리고 불교의 부패, 무속의 범람 등으로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고려 말기에 성리학적 윤리질서의 실천을 통한 인성회복을 강조하였다.

그는 국자학의 여러 학생들에게 일러주는 글에서 성인의 도는 일상생활 윤리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 실천윤리를 효<孝>, 충<忠>, 예<禮>, 신<信>, 경<敬>, 성<誠>의 여섯 가지 덕목으로 요약하여 제시하였다.

그는 유교의 성리학적인 면을 수용하되 우주론적인 이기<理氣>보다는 당시 원나라 학풍을 지도해 온 허형<許衡>의 윤리 실천적인 주자학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실천윤리로서의 유교적 덕목 가운데 효와 충을 제일 앞에 두고 그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따라서 우리가 선비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실천하고자 할 때에는 안향이 제시한 실천윤리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여기서는 우선 그가 제시한 여섯 가지 실천 윤리 가운데 유교의 보수성과 전근대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충효사상이 어떻게 선비정신으로서 현대적으로 계승되고 실천될 수 있을까에 대한 방안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효<孝>는 자녀가 부모에게 사랑과 공경을 토대로 두고 행하는 행위이다.

공자도 효를 모든 덕행의 기본이자 교화의 근원이라고 하였듯이 유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가 도덕규범의 기초이고 나아가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최우선의 가르침으로 인식되었다.

효는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세계 여타의 종교에서도 모두 중시하였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인류가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그런데 유교에서의 효는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생활윤리라고 하였다.

공자는 오늘날의 효란 “잘 봉양할 수 있는가를 말하는데 개와 말도 모두 다 사람의 기름을 받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개와 말을 기르는 것과 구별하겠는가”라고 하여 효는 부모에 대한 공경의 마음가짐을 품고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단순히 부모를 물질적으로만 어려움이 없도록 넉넉하게 잘 모시는 것은 참된 효행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집안의 가축을 기를 때에도 먹이를 주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봉양이 효를 행하는 기초적인 바탕의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가짐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효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