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윗사람이 근엄하게 말씀하실 때 불쑥 불쑥 질문을 던지지 마라는 말이다.
모두 예 할 땐 그냥 예라고 말하란 뜻이다.
위에서 시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남들은 앞으로 가는데 혼자 뒤돌아가거나 하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속담이다.
그러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며 은연중에 협박하는 것도 같다.
이 속담은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부모세대가 자주 해주던 말이다.
이 속담을 듣고 자란 사람이 자기주장, 자기의견, 자기논리, 자기생각을 갖고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싶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해도 안될 일을 위해 헛심 쓰지 말라는 속담이다.
이는 불가능하고 무모해 보이며 도저히 승산이 없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실제로 계란을 가지고서 바위를 부수라면 도대체 몇 개의 계란이 필요할까?
이 속담은 거대한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가 그에 대항하는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장애인들의 투쟁을 비하하고 무시할 대 곧 잘 쓰인다.
역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청년에게 부모세대들이 하던 말 가운데 하나다.
“아무리 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니 잠자코 살아라”고 말하곤 했다.

‘인부족 세부족’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 숫자도 모자라고 세력도 모자란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따르라는 말이다.
독재 권력에 대항하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자식들에게 부모들은 “인부족 세부족이다 그냥 참아라”라며 설득했다.
참으로 패배주의를 심어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인부족 세부족이니 더 많이 모이고 더 크게 단결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치밀하게 싸우라고 말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못생긴 며느리 제삿날 병난다’, ‘저녁 굶은 시어미 상 처삼촌 묘 벌초 하듯 한다’는 속담들도 특정 부류의 사람을 비하하거나 인격적 모독을 안겨준다.
이런 속담이 자주 회자되다 보면 전통적 가족관계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귀머거리 삼년이요. 벙어리 삼년’이라는 속담도 과거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옥제된 말이다.

시집간 며느리가 3년 동안 들어도 못들은 척 할 말 있어도 없는 척하며 지내야만 비로소 시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말이니 얼마나 가혹한가.
시어머니의 입장만 두둔하는 낙은 관념이다.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 라는 속담도 오늘날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속담들이다.
그런데 이런 속담들의 대부분은 여성들 스스로 여성을 비하하여 사용한 것이라 하니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적은 남성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속담은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서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윤색되고 포장되면서 지혜와 용기, 그리고 관용과 같은 미덕을 담고 있다.
속담에는 그 민족의 특성이나 정신, 생활양식 등이 반영되어 있어 한 민족의 역사나 종교, 풍속, 사회구조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속에 누렇게 잘 익은 가을 들판의 벼논에 듬성듬성 섞여 있는 피처럼 양반 계급과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릇을 하는 못된 속담이 섞여 있다.
여성을 비하하고 특정 직업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속담들이 제법 섞여 있다.
우선 생각나는 몇가지를 적어봤는데 찾아보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러한 속담들은 우리 삶을 지혜롭게 하고 웃음 짓게 하기 보다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짜부라뜨리고 상상의 날개를 꺾어버려서 체제에 순응하기만 하는 순치<馴致>된 인간들을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