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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
2019년 12월 13일 (금) 13:21:30 고성미래신문 gofnews@naver.com

   
▲ 제명수 재단법인 성균관 전 부관장
청학동은 경상도 하동군 지리산에 위치한 계곡이다.
조선태조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가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청학동에서 며칠 유숙다가 청학동의 산세에 감동했다고 한다.
지리산에 둘러싸인 명산이라고도 했다.
그러한 조건으로 명당 터로 좋은 인재가 많이 나고 곡식이 넉넉한 풍요로운 땅이면서, 마시면 장수하는 샘물이 이곳 저곳에 있어 백 오육십살까지 족히 살 수 있는 땅이라고 했다.
그리고 운이 들면 많은 성씨들이 번성발전하는 터이다.


하지만 어리석거나 의심이 많은 사람은 이 땅에 들어와 살 수 없고 덕을 쌓고 선을 행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이상형의 땅이다.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언도 천운이 다가오는 어느 때가 되면 귀인이 나와 공경, 재상, 명사, 현인군자를 배출하고 이곳에 이주하여 살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흥하는 땅이라고 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무릉도원을 제일명당으로 꼽고 있는 반면 청학동은 오늘의 사람들이 찾아보고자 하는 제이명당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중국인, 일본인, 미국인들이 청학동을 방문하고 있다.


한국의 선비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청학동이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아늑하고 절묘한 청학동의 모습이 한때 황폐화 되어 사람이 기거할 수 없는 폐허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현인군자와 제자 가인들이 관광으로 방문한다.
하오니 하동의 청학동은 세계적인 명승지로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조선조 말기에서 근현대로 이어지는 세상의 급격한 변화 속에 살아가기 힘들었던 사람들을 명당으로서의 천하제일, 명산으로서의 청학동에 찾아들도록 이끌었다고 상상하는 생각은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선비들이 찾아 나섰던 땅이 바로 이 청학동이다.
한때 독립 운동가들이 피난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말기에 혹독하기만 했던 생계유지에 어려움으로 인해 사람들에게는 깊은 산속에서의 츩 뿌리와 도토리를 채취해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했던 곳이 청학동이다.

물론 지리산 청학동만이 군자나 선비의 은신처는 아니었을 것이다.
청학동 지도는 청학동의 존재여부를 시각적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지금까지 청학동 인근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는 청학동도는 그 수가 적지 않다.

청학동도는 다수가 악양, 청암, 화계 일대에 거주하는 고성 채 씨, 청암 노 씨 집안일가의 피난지로 전해지는 것들이다.
그들 일가는 청학동도를 도선이나 무학대사가 그렸다고 믿는다.
그러나 청학동도를 제작한 경위는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고 집안에서 이어온 것들이다.

청학동도를 비기에 나오는 지형지세 지도 속에 그려 넣은 것이 다대수이다.
청학동도는 지리산 인근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이 다가올 재난을 피해 새로운 피난처를 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명줄을 이어 줄 가보로 중하 여길만한 비도<泌圖>였던 셈이다.
청학동도는 비기에서 언급된 청학동을 실제로 찾아가기 쉽도록 도면으로 그린 것이다.

발견된 청학동도를 살펴보면 현재의 청학동의 위치와 지명이 기입되어 있거나 유사한 인근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비기에 언급된 백운산이나 삼신봉과 같은 지명과 풍수상 뇌파상문이나 석정과 같은 위치가 있고 어떤 것은 지금의 청학동의 인근의 묵계, 학동, 불지와 같은 지명도 들어있다.
또 진주에서 몇 리 떨어진 곳이라고 현존하는 지명에서 상대적인 거리까지 표현된 지도도 있다.

아마 이 청학동 지도는 지리산 인근의 사람들에게 청학동의 위치를 추측하는 자료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청학동 지도에 나와있는 청학동의 위치는 세석평전에서 삼신봉 사이에 비교적 높은 개활지, 영신봉 아래 대성골 쌍계사의 불일폭포 인근지역, 악양 뒤편 청학이골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 위치가 분명하거나 정확하게 표시된 것은 드물다.

지도를 소지한 사람들은 지금도 비결을 믿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청학동이라 믿고 살아가기도 한다.
비결과 함께 지리산 남쪽 인근에서 자주 발견되는 청학동도는 사람들이 청학동으로 살러 들어간 직접적인 증거였음이 분명하다.
가족단위나 성 씨 별로 찾아든 소수의 이기자들 또는 집단적으로 청학동 이주자들이 많아졌다고 미천야록에 나타나 있다.
매천은 조선말기의 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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